길을 잃은 자들의 횃불

by 주나

영화 <하얼빈>을 보고 나왔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영웅이라고 불리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독립투사들도 취약한 모습, 지혜롭지 않은 모습, 수치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같은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전장에 나가고, 폭약과 총기를 구해 식민지배의 원흉을 암살하는 임무가 그들에게 운명적이어서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냉혹한 현실 속 마주하는 매 순간이 외롭고 불안한 결정이 아니었을지 생각한다. 힘든 상황에 굴복하거나 무너지기도 하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한 발씩 나아가는 모습에 오히려 먼발치에서, 역사책 위주로만 접했던 영웅들에 대해 더 거리감이 없어졌달까.


동시에 학부 교양 수업 중 가장 재밌게 들었던 신화 수업 종강 날에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가 생각났다. 우리가 말은 않고 있지만 각자 갖는 고민의 무게는 경중을 따질 수 없을 것이고, 두려움은 같을 것이라고. 좋든 싫든 인생이라는 바다에 던져져 항해를 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오디세우스 같은 영웅 아니겠냐고. 대단히 미안하지만 앞으로 여러분의 인생은 학교 밖을 나가면 더 어둡고, 힘들 것이라며 웃픈 이야기도 해주셨다. 끝에 가면 다 같이 죽는다는 이야기도. 그렇지만, 그럼에도 신화 같은 이야기를 지어서라도, 글과 말로 힘을 얻고, 희로애락을 충분히 겪으며 모험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독립운동가들의 지속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당연히, 조국을 위한 일이지만, 춥고 배고픈 상황에 전쟁 트라우마나 포로로 잡혀 고문을 받는 고통까지 겪는다면, 과연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시작하게 했던 동기를 잠시 외면하고 포기하고 싶어 졌을 것 같다. 일말의 희망, 일말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을 것 같다.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렴풋이 짐작하자면 독립운동가들은 너무 멀게 보이는 독립이라는 미래를 위해서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동지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조금씩 미래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에 더 집중하지 않았을까.


영화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겸허해진다.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 갑자기 현실이 벅차거나, 억겁의 층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세상에 나 혼자 떨어져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때마다 이 글을 기억해야겠다. 오히려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게 만드는 건, 그저 하루에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잘 살아내는 것이라고.

매거진의 이전글널뛰는 마음 내버려 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