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회장님께 첫 보고를 드리는 날이었다.
회의실에는 대표이사님, 사업본부장님들, 그리고 팀장님들이 모두 자리해 있었다. 길거리에서 전단지를 나눠주고 고객 집을 방문하며 제품을 판매하던 내가, 3년 만에 이런 자리에 앉아 있다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회사는 부족한 나에게 이렇게 큰 기회를 준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했다. 사실 내가 한 부분은 나의 열정을 태워 회사의 상승기류에 태운 것 빼고는 없었다. 실력은 부족했으나 운이 작동을 한 것 이다.
언제나 그랬듯, 모든 것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진 않는다. 현재 처한 사업부의 매출 저하로 인해 회의실의 긴장감은 극에 달했다.
회의 중 회장님께서는 "학교와 회사의 차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셨고, 이어 "회사는 잘못하면 집에 갈 수도 있다"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남기셨다. 그렇게 회의는 끝났다.
그 후 두 차례 더 보고를 드렸지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매출 개선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고, 매출 하락의 하향 곡선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공황장애가 찾아왔다. "사업부가 없어진다"는 이야기와 "회사를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나를 점점 옥죄었다. 터널에 들어가면 숨이 막히고 핸들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증상이 반복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계속 움직여 핸들을 붙잡고, 속도를 줄이며 겨우 터널을 빠져나오곤 했다. 가족과 차를 타고 이동할 때, 사고 나는 상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더불어 회사에서 나의 길과 방향성이 보이지 않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때마다 팀원들의 반발과 거부감에 부딪혔다. 이 모든 것이 점점 나를 더 불안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어느 날, 답답한 마음에 새벽 아침 밖으로 나가 천천히 걸어보았다. 그렇게 며칠을 걷다 보니 조금씩 몸에 변화가 느껴졌다. 기분이 상쾌해졌고, 하루하루 웃음이 늘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매일 일찍 일어나 출근 전까지 1~2시간씩 계속 걸었다. 1시간 정도 걷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이 가라앉고, 2시간쯤 걸으면 모든 생각이 멈추며 몸이 공기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느낌이 들었다.
숲이 우거진 트레킹 길을 걷는 동안 새소리와 자연의 기운이 저를 조금씩 치유해 주었다. 자연 속에서 걷는 동안 고민과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떠올랐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이 큰 도움이 되었다.
"왜 이렇게 힘든가?"라고 스스로 물었을 때, 대부분의 불안이 먼 미래에 대한 걱정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 그리고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불안의 정체였다.
불안은 "미래를 살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지금 눈앞의 일들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작은 일들을 하나씩 해결하다 보니, 점차 업무가 진행되었고 많은 일들은 작은 눈덩이들이 쌓여 결국 큰 문제들이 해결했다. 걱정했던 많은 일들은 사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
걷기와 함께 책을 다시 손에 들기 시작한 것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경영, 기획, 마케팅, 회계 등 현장에서 부족했던 지식을 책을 통해 조금씩 채워 나갔다. 이를 통해 다른 팀의 업무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그들과의 소통과 공감도 점점 늘어났다.
책은 나에게 나침반처럼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덕분에 이전에 나를 적대시하던 사람들도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도움을 주는 이들이 생겨났고, 업무와 인간관계에서 점점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6개월 후, 걷기와 책 읽기를 통해 공황장애라는 친구를 녹여내면서, 회의 자리에서도 점점 초연해질 수 있었다. 이후에도 작은 파도와 큰 파도가 몰려왔지만, 그런 순간들이 결국 지나가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낡이 밝으면 어제의 일들은 과거로 흘러가고, 새로운 과업들이 찾아온다. 그게 다였다.
이러한 생각들을 반복하며, 불안정했던 공황장애도 점차 안정되었고, 신입 팀장으로서의 하루를 다시 웃으며 보낼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