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모님께서 췌장암 2기 진단을 받고 항암 치료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소식은 순식간에 처갓집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말은 아꼈지만, 각자의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걱정이 조용히 쌓여갔습니다.
치료 초기부터 장모님의 몸은 급속도로 쇠약해졌습니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빠지고, 근육과 살이 빠지면서 식사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병원 면회 때마다 야윈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가족들은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으시는 그 마음이, 더 깊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장모님은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어른’이 아니었습니다.
두 아이를 봐주시고, 저와 아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지지해 주신 분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외할머니 품에서 자라났고, 저희 부부는 장모님 덕분에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자리에 계시지 않자, 일상의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아이들은 묻습니다.
“할머니는 언제 다 나아?”
저는 늘 “금방 좋아지실 거야”라고 말하지만, 마음 한쪽은 조용히 저려옵니다.
그 무렵, 우연히 허지웅 작가의 『살고 싶다는 농담』을 다시 펼치게 되었습니다.
림프종 투병기를 담은 이 책은, 화려한 방송인의 이미지 뒤에 숨어 있던 고통을 조용히 풀어냅니다.
그는 병을 드러내기보다, 그 고통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고백이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에게 건네는 손처럼 느껴졌습니다.
“삶의 바닥에서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 문장을 읽고 책장을 덮었습니다.
해가 지면 달이 뜨고, 다시 해가 떠오르듯.
그 단순하고도 위대한 자연의 순환이, 삶의 지속을 증명해 주는 듯했습니다.
또 하나, 책 속에서 깊은 울림을 주는 문장을 만났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히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바꾸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죠.
그런 것들을 억지로 바꾸려 하다 보면, 더 깊은 고통 속으로 빠져듭니다.
장모님의 치료를 지켜보며 저는 이 문장의 뜻을 조금씩 이해해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바꿀 수 없는 병이라는 현실 속에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삶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태도 하나가,
가족 전체에게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우고 있습니다.
허지웅 작가는 말합니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어. 그러니 버티며 살아.”
책을 덮으며 저는 조용히 숨을 고릅니다.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그 말 한마디가
어쩌면 오늘을 지탱해 주는 가장 단단한 문장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