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운동하면 인생이 달라져요? 01. 하체비만의 부심이 부서지던 날
오후 1시, 거하게 밥을 먹고 돌아와 자리에 앉은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 오늘 피티 가는 날인데 너무 많이 먹었다... 오늘 인바디 확인하는 날인데 조금만 먹을걸'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머리로만 죄책감을 느꼈고 눈앞에 있던 음식은 이미 다 먹은 후였다. 배가 부르면 부를수록 오늘의 운동이 얼마나 강도 높을지 두려워졌고 퇴근 시간이 오기까지 꺼지지 않는 배를 느끼며 초조하게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그리고 오후 7시, 나는 피티 샵에 도착했고 선생님에게 빠르게 이실직고를 시작했다. "제가 저번 주부터 사실 많이 먹었어요. 운동 2주 쉬는 동안 분명 리셋이 되었을 테니 선생님! 우리 다시 시작해요!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그렇게 변명을 가득 담아 작은 외침을 중얼거리며 인바디를 기계 위에 올라갔다.
일단 몸무게는.. 오케이! 늘지 않았다! 그대로야!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기계에 달린 팔을 간절한 마음으로 붙잡고 체성분이 분석되길 기다렸다. 매번 인바디를 잴 때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온몸에 힘을 주면 근육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팔의 근육량은 아주 미미하게 움직이다 멈추었고 다리의 근육량도 달리는듯 하다 금세 멈추었다. 하지만 바로 그 아래서 체지방률은 멈출 생각 없이 쭉쭉 앞으로 치고 나갔다. '체지방 짜증나ㅠㅠ!!! 제발.. 제발 평균만 초과하지 말아라'라는 마음으로 온몸에 더욱 힘을 주어 보지만! 평균과 평균 초과 사이에 간당간당하게 멈춰 섰다. 그렇게 나는 오늘부터 하체비만에 이어 마른 비만이라는 새로운 별칭을 하나 더 얻게 되었다.
피티 선생님은 내 몸이 아닌 종이를 살펴보며 지난주의 나를 낱낱이 분석하기 시작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고 있을 때, '지난주보다 물은 많이 먹었고, 근육이 조금 올랐네요!'라고 말하는 선생님은 고강도 운동의 두려움에 떨던 나에게 한 줄기 빛을 내려주셨다. 너무 믿을 수 없는 나머지 나는 종이를 두 손으로 들어보았고 놀랍게도 먹은 것에 비해 지방은 찌지 않았고 근육은 미세하게 늘어나 있었다. 운동을 하고 나면 먹어도 살보다 근육이 더 많이 늘어난다더니! 그간 10회의 피티를 대충 하지는 않았었나 보다. 야호!
그래 일단 시작이 좋았다. 잠시 생리 때문에 기껏 해놓은 운동이 모두 리셋되었지만 이 정도 시작선이면 해볼 만했다! 선생님께 (지키고 싶지만 쉽지 않은) 식단을 다시 점검받고 잔뜩 거만해진 어깨를 내밀고 운동을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오늘은 오래간만에 하체를 하는 날이었다. 사실 하체비만인이 가질 수 있는 아주 작은 자부심은 나름 하체에 지방만큼 근육이 좀 많다는 점이다. 왜냐면 대부분의 하체비만들은 다리를 얇게 만들기 위해 하체 운동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체비만의 이상한 부심은 힙런지 앞에 힘 없이 무너졌다. 일단 나의 체형에 대해 먼저 설명하자면 골반 전방 경사가 있다. 쉽게 말해 가만히 서있을 때 어깨는 구부정 배와 엉덩이는 앞으로 다리에 힘은 하나도 없이 서있는 자세다. 한 마디로 골반을 앞으로 쭉 내민 자세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처음부터 이런 자세는 아니었다. 어릴 때 항상 이런 포즈로 서있던 날씬한 친구가 너무 어른스러워 보이고 이뻐 보였는데 나도 모르게 그 자세를 따라 하다 보니 습관이 되어 몸에 굳어버린 것이다. 역시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한다. 그 덕분에 배는 더 나와 보이고 다리는 더 짧아 보이고 엉덩이는 실종된 지 오래였다.
이런 체형은 운동할 때 최대 단점이 오리궁둥이가 잘 안 되는 거다. 골반을 접어 엉덩이를 내밀고 등을 살짝 드어가 곡선을 만드는 바로 그 '힙 런지' 자세가 정말 안 나온다. 골반을 접으면 허리가 풀어지고 허리와 골반을 접으면 무릎이 앞으로 튀어나간다. 몸은 분명 하나로 연결되어있다고 들었는데 내 몸은 예외인 게 아닐까?! 결코 연결 동작이 되지 않는다. 자세 하나를 잡으려면 "골반을 접고.. 엉덩이를 내밀고.. 무릎을 뒤로 밀고 중심을 잡고.. "중얼거림이 끝나지 않는다. 특히 나처럼 운동신경이 없다면 운동 자체를 빨리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 오래 걸린다.
선생님은 어떻게든 나의 자세를 잡아주시기 위해 노력해주셨지만 나는 30회를 하면 1-2회 정도면 제대로 된 자세로 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생님은 포기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은 고강도 반복으로 '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나는 정말 후덜덜 다리를 떨면서 힙 런지를 배웠다. 지금 함께하는 피티 선생님의 최고의 장점은 주먹으로 몸을 눌러가며 자세를 잡아주시는 것인데 정말 효과가 좋다. 주먹 하나면 끝난다.
그렇게 힙런지 자세를 클리어하고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바로 무릎에 밴드 끼고 운동하기.
사실 무슨 운동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신체 어디든 밴드를 끼는 순간부터 모든 운동이 어려워진다. 이번에 나는 무릎에 밴드를 끼고 레그프레스를 하게 되었다. '레그 프레스' 말 그대로 다리로 밀어내는 운동이다. 근데 이게 또 왜 어렵냐! 그냥 힘으로만 밀어내는 거라면 할 수 있겠지만! 여기도 오리궁둥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오리궁둥이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 앞 허벅지가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또 누운 자세에서 혼돈의 상태에 빠졌다. 아니 몸이 왜 이러지? 내 주먹으로 때려도 보고 힘을 줬다 빼기도 해 봤지만 쉽게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한 번 혼란에 빠지게 되면 되던 동작도 안되고 몸이 맘대로 안 움직이기 시작한다. 몸이 각자 삐걱거리기 시작하고 몸과 머리 사이에 갑자기 광활한 우주가 생겨나 신호를 아무리 보내도 전달되지 않는다. 몸치라면 절대 공감할 거다. 절대 시간을 끌려는 건 수작이 아니란 말이다!
오! 오리궁둥이가 드디어 된 건가? 드디어 됐나?!
알아보는 방법은 쉽다. 다리를 들어 올릴 때, 힘을 빡 주었을 때, 아랫배가 빵빵해지고 앞 허벅지가 아프지 않으면 된 거다! 사실 초반 10개 세트 할 때는 앞 허벅지가 아팠지만 (자세가 잘못된 걸 알았지만) 빨리 끝내고 싶어 말을 하지 않고 꾹 참아봤지만 곧 터질 것 같은 허벅지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시 자세를 잡고 밴드를 양옆으로 최대한 밀어내며! 다리가 무너지지 않고! 엉덩이가 무너지지 않게! 비명 지를 힘도 남기지 않고! 힘겹게 세트를 모두 끝내고서야 나는 레그 프레스 위에서 엉덩이를 부여잡고 누워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에 엉덩이와 나만 남겨진 것처럼 강렬한 존재감을 엉덩이에서 느끼며 그날의 피티는 끝이 났다. 엉덩이의 존재감에 밀려난 내 다리는 나비처럼 제멋대로 좌우로 팔랑거렸고 지방을 태우기 위해 올라간 러닝머신 위에서 허우적거리며 한 시간을 걸었다. 하체비만이지만(?) 하체에는 근육이 좀 있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나는 그날 정말 무너졌다. 내 하체이 있던 근육은 근육도 아니었던 것이고, 그저 서있기 위한 최소한의 근육이었을 뿐인 것이었다. 하긴 매번 3일 정도 하고 말고를 반복한 다리에 근육이 붙을 리가!
하지만 그래도 피티를 배우며 바뀐 점이 하나 있었다. 내가 다리를 보며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는 점이다. 내 다리의 둘레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지만 일단 부기가 엄청나게 빠지고 종아리가 나만 알 수 있는 만큼만 얇아졌다(부종이 워낙 심했어서 압박스타킹도 새로 샀다. 압박 스타킹은 꼭 발등을 덮는 것을 사야 한다. 이유는 유튜브 참고). 바지가 헐렁해졌고 사이즈가 줄었다. 여전히 통통한데 셀룰라이트가 정리되고 살이 올라붙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놀라운 점은 바지 사이즈가 아니었다. 여태까지 '다이어트 = 하체 살 빼기'로 인지되던 나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다리가 뚱뚱해 보이는지, 살이 빠졌는지를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냥 '오늘 운동을 잘했을까? 내일 다리에 자극이 올까? 오늘 별로 안 움직여서 부종이 좀 있나?'가 내가 내 다리에 대해 생각하는 전부였다. 운동을 하면 겉으로 보이는 몸에 더 집착하게 될 줄 알았다. 아니, 여태까지는 집착했다. 하지만 그건 제대로운동을 해서가 아니라 조급한 마음이 만든 집착이었다. 나는 지금 운동 자체를 압박감과 스트레스가 아닌 즐거움과 성취감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 인생이 달라진다는 말을 반신반의했다. 애초에 처음 피티의 목적은 다이어트가 90%였지만 이제는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직은 인생이 바뀌려는 기미조차 보이지 않지만 거울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던 '나'는 완벽히 사라졌다는 것을 느낀다. 여전히 뚱뚱하지만, 여전히 지방이 가득한 내 다리지만 이제 다리를 보면서 '나는 왜 이런 저주받은 하체를 가졌을까' 고민하고 자책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재등록한 30회 중 1회가 끝났다. 1인 탈의실에 들어온 나는 아주 살짝 땀이난 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오늘은 내 스스로가 멋있다고 느꼈다. 살 빼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제대로 된 운동을 하고 싶어 욕심내는 내 모습이 좋았다.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1시간의 운동 하나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