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 공간의 철학—"있을 법한 것"의 이미지 2
'있을 법한 것'은 어떤 존재론적 지위를 갖는가? 바르트의 명제를 AI 이미지에 적용하면, '이것이 있었다'는 '이것이 있을 수 있었다'로, 혹은 '이것이 있을 법하다'로 변형된다. 확실성은 확률성으로 대체된다. AI가 생성한 얼굴은 누구의 얼굴도 아니면서 모든 얼굴의 복합체이다. 그 얼굴은 푼크툼을 가질 수 없다. 찌를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 찌름의 근거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를 현실태(energeia)와 가능태(dynamis)로 구분했다. 사진은 현실태의 기록이다—'이것이 있었다'는 현실태의 과거형이다. AI 이미지는 가능태 자체의 이미지이다. '있을 수 있는 것'을 보여주지만, 그것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가능태가 가능태인 채로 시각화된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가능 세계' 개념을 빌리면, AI의 잠재 공간은 가능 이미지들의 공간이다.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신에게는 최선을 선택하는 목적이 있었지만, AI에게는 목적이 없다. 있는 것은 확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