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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Nov 29. 2020

읽기만 하면 초등학생도 이해되는 창덕궁 이야기 1

정조 임금님과 세계유산 

정조 임금님과 관련 있는 세계유산은 정치를 펼쳤던 창덕궁, 군사와 상업의 중심지로 만들고자 했던 화성, 아버지에 대한 효심을 알 수 있는 조선왕릉인 융릉이 있습니다. 여기의 글들은 초등학생들과 이 세 곳의 문화유산을 방문하고자 하는 부모님과 후배들에게 문화유산을 가르쳐 주기 위해 선배(6학년)들이 어린이문화유산해설사 활동을 할 때 참고로 할 수 있도록 쓴 글입니다. 비슷한 활동을 하려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터질 듯한 엉덩이는 왜?



터질듯한 엉덩이의 소유자는 누구일까요? 또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몇 년 전 아이들과 함께 ‘박물관에서 놀자’를 할 때의 모습입니다.
이 아이는 당시  3학년 아이이며, 이 곳은 창덕궁 인정전입니다.
인정전에서 200년 전의 그림인 동궐도의 인정전과 지금의 인정전을 비교하여 차이점을 찾고 있습니다.
3학년이긴 하지만 이 미션 자체는 어려울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단지 이 차이점이 있는 이유에 대해 아이들과 얼마만큼의 수준으로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것에 대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이 미션에 푹 빠져서 처음에는 잘 못 찾는 듯하더니 제가 생각한 2가지 이외에도 수십 가지를 찾아냅니다.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바로 그다음 미션은 과거시험을 보기도 한 장소여서 아이들에게 인정전으로 삼행시를 지어 대통, 통, 불통 등 점수를 주었습니다. 아이들의 생각이 너무 기발하여 한참 웃었습니다. 재밌었는지 한 번으로 부족해 여러 번 적더라고요.

이때 참여한 아이들은 여러 번 '박물관에서 놀자'에 참여해서인지 힘들어하면서도 활동에 열중하고 있네요.

박물관에서 놀자 자료/ 수원 모아재에서 개발한 창덕궁 활동지


곧 수능입니다.

창덕궁에서 살았던 임금 중 한 분인 숙종 때 나온 실제 과거문제!

조금만 바꾸어서 수능 독도 문제로 내어도 별로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지 않나요?

"울릉도가 멀리 동해에 있는데 강원도에 속해 있다. 바닷길이 멀고 험해 섬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현재 비어 있다. 요즘 일본인이 죽도(竹島)라 부르면서 백성들의 어로 활동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우리 입장을 설명해도 (일본은) 들을 생각이 없다. 어떤 사람은  장수를 보내 점거해 지키자고 하고, 어떤 사람은 혼란을 만들지 말고 일본인의 왕래를 허용하자고 하는데, 국방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생각해 자세히 나타내도록 하라."


창덕궁은 무엇을 하던 곳이죠?


그럼 우선 창덕궁에 대해 알아볼까요?

창덕궁은 무엇을 하던 곳이죠? 네 임금님과 관리들이 모여 정치를 하던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곳 말고도 조선의 궁궐에 대해 더 알고 있는 곳이 있지요? 어디가 있을까요? 참고로 조선의 궁궐은 5군데였습니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경희궁, 덕수궁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궁궐을 많이 만들었을까요? 임금님은 나라의 주인이시니 별장을 만든 걸까요? 궁궐이 여러 곳인 이유는 전쟁이나 화재 등  사용하던 궁궐을 사용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하여 여러 개를 만들어 둔 것입니다.  조선초에는 경복궁, 창덕궁이 있었고 창덕궁 바로 옆에 창경궁을 만들어서 총 3개의 궁궐이 있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궁궐은 경복궁입니다. 주로 큰 행사나 정치가 이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두둥~ 큰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 사건 이후로 경복궁에서 지금 우리가 있는 창덕궁이 가장 중요한 궁궐이 됩니다. 어떤 사건이었을까요? 와우~ 잘 맞췄네요. 임진왜란입니다.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던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불타요. 그때 창덕궁도 같이 타버립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궁궐을 다시 지어야 했을 때 나라가 너무 어려워서 둘 다 다시 짓지는 못합니다. 그때 다시 짓기로 결정한 궁궐은 창덕궁과 창경궁입니다. 경복궁을 제치고 창덕궁을 짓기로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복궁의 기운이 좋지 않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덕궁 인정전
임금님들이 가장 사랑한 궁궐, 창덕궁


창덕궁은 임금님들이 가장 사랑한 궁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님이 머무신 궁궐이기도 합니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어떤 차이가 있었을까요? 경복궁은 정도전을 포함한 신하들이 설계했다면, 창덕궁은 왕(태종)의 의도에 따라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경복궁은 임금이  일하기에만 편하게 설계되었다고 해요. 임금님의 침실인 건물과 일하는 건물이 바로 옆에 있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좁은 지역을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해야 했지요. 

하지만 창덕궁은 일하는 건물인 인정전이나 선정 전을 왼쪽 밑으로 모아놓고 후원을 크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임금님들이 경복궁보다 창덕궁을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창덕궁은 조선의 궁궐 다섯 곳 중 유일하게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궁궐이 유교의 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으면서도 자연과 건물이 조화롭게 잘 어울리도록 건설을 했기 때문이랍니다.

창덕궁 후원 입구의 규장각

그런데  유교의 정신이란 무엇일까요?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창덕궁 건물들의 이름을 통해서도 창덕궁이 유교의 정신에 따라 건설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건물의 이름만으로도 임금님과 관리들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고자 했는지 알 수가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저기 멀리 보이는 인정전은 창덕궁의 가장 중요한 건물로 임금님이 신하들과 나랏일을 돌보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벌이는 곳입니다. 이 곳 이름의 뜻이 어진 정치를 펼치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어질다는 것은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펼친다는 뜻이지요.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바로 그 옆쪽에는 인정전과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선정전이 있습니다. 선정이란 백성들에게 많은 것을 베푼다는 뜻입니다. 즉 창덕궁 여러 건물들의 이름은 임금님과 신하가 백성들을 잘 살 수 있도록 정치를 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돈화문 앞에서 어머님을 기다리는 정조 임금님

바로 앞에 보이는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임금님이 큰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가르친다라는 뜻이며, 정조 임금님이 어머니의 생신 장치를 하러 화성으로 행차할 때 미리 나와 어머님을 기다리고 있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220여 년 전 정조 임금님이 저 앞에서 어머님을 기다리고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세요. 정조 임금님은 새벽에 일어나 할머니 정순왕후에게 인사를 드리고 7시도 되기 전인 이른 아침 돈화문 앞에서 어머니가 나오시길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이쪽으로 보이는 돌다리는 금천교라고 합니다. 임금님이 계신 궁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나쁜 마음을 모두 깨끗이 씻고 가라는 의미가 있지요. 이 다리는 1411년에 세워졌어요. 와.. 몇 살인지 계산해보세요. 무려 700살이 넘는 조선 궁궐에 남아있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돌다리이에요. 이 금천교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달리 조금 북쪽으로 옮겨졌어요. 시간이 지나 자동차가 궁궐에 드나들면서 궁궐 입구가 바뀌면서 이동했다고 하네요.

이 다리를 지키는 동물들을 보세요. 중국이나 일본처럼 험악한 얼굴로 있지 않아요. 웃음기 가득한 표정이지요? 지난번 '원숭이가 묵호를 들고 웃는 이유는'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아이들이 옆에 서서 똑같은 표정을 지어 사진 찍기를 해보세요. 정말 재밌는 표정이 나온답니다.

신문고가 설치되었던 진선문

금천교 너머에 있는 진선문이라는 문을 알아볼까요? '임금님께 바른말을 올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임금님을 만나기 전 말과 행동을 바로 하여 올바른 정치로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지요. 그런데 이 진선문에는 신문고가 설치되어 있었다고 해요. 신문고가 무엇인지 아는 친구 있나요? 맞아요. 백성이 억울한 일이 있을 때 이곳에 있는 북을 쳐서 임금님께 알리는 것이지요. 그럼 임금님이 그 억울한 일을 해결해주고요. 그런데,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백성들이 궁궐의 정문인 저 큰 돈화문을 지나서 저곳 진선문까지 가서 신문고를 울릴 수 있었을까요? 신문고 제도는 그것을 만든 목적만큼 일반 백성들이 자신의 일을 알리는데 많이 활용되지 못했다고 해요.

거기에 반해 정조 임금님은 격쟁과 상언이라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였습니다. 기네스북에도 올라도 부족함이 없는 정조 임금님의 상언과 격쟁은 다음번에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임금이 정치를 펼친 인정전과 선정전

인정전은 이름 뜻이 뭐라고 했지요? 맞아요. 이 곳에서 임금님이 백성들을 위해서 어진 정치를 펼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인정전 앞의 마당이 무척이나 넓지요? 이 넓은 마당에 여러 비석처럼 생긴 돌이 서 있습니다. 그 돌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그 돌의 이름은 품계석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벼슬의 높낮이에 따라 그 품계석 앞에 서는 것입니다. 동쪽에는 문관이 서쪽에는 무관이 서는데 임금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마주 보고 있다가 임금님께 절을 함으로써 행사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바닥을 잘 보세요. 바닥의 돌이 반듯하지 않고 약간 울퉁불퉁하지요? 왜 그럴까요? 오래되어 닳아서 그렇게 되었다고요. 아니에요. 다시 한번 생각해보세요. 

국가의 행사를 할 때 너무 반듯하게 돌을 만들면 햇빛이 반사되어 너무 눈이 부셔서 일부러 그렇게 만들게 만들었답니다. 그리고 신하들은 비단이나 가죽으로 된 신발을 신었는데 너무 매끈하게 만들면 비가 올 때 미끄러져 넘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자금성 태화전 앞 박석/경복궁 박석과 달리 자연미가 없는 인공미가 가득하다.


이제 동궐도에서 인정전을 찾아볼까요?

동궐도는 동쪽에 있는 궁궐을 그린 지도라는 뜻이에요. 경복궁이 가장 중요한 궁궐이어서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지도이지요.

지금의 인정전과 동궐도의 인정전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한번 찾아보세요.

잘했어요. 지붕마루에 자두 꽃문양이 있지요? 원래 대한제국에서는 자두 꽃을 왕실의 문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궁궐 건물에 저렇게 문양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귀족 가문들이 자신의 상징 문양을 저렇게 표시한다고 합니다. 일본이 조선왕실을 일본 천왕 밑에 귀족 가문처럼 취급하기 위해 저렇게 만들었다고 해요.

또 다른 차이점도 찾았군요. 문살의 색깔이 다르지요. 지금 현재 인정전의 문살은 노란색입니다. 예부터 노란색은 황제만 사용할 수 있는 색이었습니다. 이 동궐도를 그릴 때는 황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황색을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종 임금님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가 되어 고종황제가 된 후 인정전 문살은 황색이 되었습니다. 이것 말고도 많이 있어요! 한번 찾아보세요!


아까 선정 전의 이름 뜻은 무엇이라고 했지요? 그래요 백성들을 위해 선한 정치 즉 착한 정치를 펼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인정전이 국가의 큰 행사를 하는 곳이라면 선정 전은 평소 임금님이 머무시면서 나라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고, 신하들과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공부도 하시는 곳입니다.

이 곳이 다른 곳과 다른 특이한 점을 하나 찾아볼까요?

맞아요. 기와가 다른 곳과 다른 색깔이에요. 청기와입니다. 청기와를 만드는 것은 다른 기와를 만드는 것보다 몇 배나 많은 들었기 때문에 쉽게 만들 수 없는 건물이라고 하네요. 지금 현재 대통령이 살고 있는 건물이 청와대이지요. 청와대는 푸른 기와집이라는 뜻입니다.

청기와 얹은  선정전
청와대

정조 임금님이 정치를 펼쳤던 창덕궁 이야기 첫 번째는 여기까지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곧...


아! 마지막으로 승정원과 언관에 대해 알아볼까요?  왕의 옆에 항상 대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답니다. 누구였을까요? 맞아요. 비서입니다. 비서가 있어서 임금님의 명령을 다른 신하들에게 전달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비서를 승지라고 불렀습니다. 승지들이 머물던 곳이 승정원입니다.

또,  임금님이 임금님으로서의 역할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감시하고 올바른 행동을 하도록 이야기를 하는 직업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언관이라고 합니다. 이 언관들은 매일 대청이라는 곳에 모여 임금님의 말과 행동을 토론하고 임금님께 그 내용을 올려 임금님이 바른 행동과 말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위에서 청와대 사진도 본 김에 대통령에게 편지를 써봅시다!

박물관에서 놀자 자료/ 수원 모아재에서 개발한 창덕궁 활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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