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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Jan 24. 2021

하고 싶은 말과 해야 할 말

어린이문화유산해설사 두 번째 이야기

세계유산 수원화성 안에 위치한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6학년 아이들과 열심히 공부해서 저학년 동생들과 화성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이문화유산해설사'활동을 하고 있다. 

2020년에는 큰 꿈을 품었었다. 이 학교에서 계속 해오던 '어린이문화유산해설사'활동을 확대하는 것이다. 전국에서 수원화성에 오는 많은 학교 단체들을 대상으로  어린이문화해설사들이 수원화성을 안내하는 활동을 하는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런 계획을 세운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이 문화유산 해설을 위해 1학기, 2학기를 통틀어 80시간 이상을 공부했다. 답사를 하고, 책을 읽고, 미리 놀이를 해보고, 문화유산 해설자료를 쓰고, 해설 연습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잘할 수 있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다. 내가 가르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문화유산 해설을 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모둠별로 해설을 준비한다. 3-4명으로 이루어진 모둠이 역할을 나누어 준비를 한다. 서로 도와주면서 해설을 준비하는 모습이 참 예쁘다.

교실에서 미리 친구들을 대상으로 해설 연습을 하는데, 그 많은 시간을 노력했지만 그 전날까지도 친구들 앞에서 제대로 말을 못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모둠 내에서 친구들이 도와주면 되기 때문이다. 학교 운동장에서 각기 해설을 맡은 저학년 동생들을 데리고 화성 행궁으로 향한다. 6학년 아이들도 아이인지라 이 녀석들만을 데리고 가면 차가 다니는 길에서 뛰지 말라느니, 친구들과 크게 떠들지 말라느니 등의 잔소리를 하게 되는데 이 때는 이럴 필요가 없다. 시키지 않아도 동생들에게 잔소리는 데리고 가는 6학년들의 몫이다. 그리고, 마치고 난 뒤 선생님에 대한 무한 존경심을 표현한다.

여기서 정말 재밌었던 것 하나!(2019년의 일이다)

친구들끼리의 해설 연습에서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하지 못한 아이 한 명이 있다. 아이들 앞에 서면 머릿속이 하얗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6학년이지만 구구단을 제대로 외우지 못하기도 한 아이였다. 이 아이가 동생들에게 걸어가면서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들어보니 그럴듯하고 동생들도 초롱초롱 눈빛을 빛내며 듣고 있다. 큰 감동이었던 것이 그곳은 자신이 해설을 계획한 장소가 아니라 일단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오면서 모둠의 다른 친구가 해설하기로 한 곳이다. 모둠끼리 자주 연습했으니 자신이 맡은 부분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이 맞다. 이 아이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마침 집에서 할머니와 동생을 대상으로 밤새도록 연습했다는 연락을 듣기도 했기에 폭풍 칭찬을 해주었다. 

가끔 이런 아이들이 있다. 동학년 친구들보다 쉬는 시간만 되면 저학년 동생들과 노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사회성 등 발달이 조금 늦은 아이들이다. 그래서 친구들과 놀면 스트레스를 받고 동생들과 놀면 편안함을 가진다. 6학년의 문화유산해설사활동은 이런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높여주는 활동이기도 하다. 해설을 받는 아이들에게도 좋지만 해설을 하는 아이들에게 더욱 도움이 되는 활동이다.

정작 자신이 맡은 부분은 너무 긴장을 해서 제대로 못하고, 적어 온 것을 교과서 읽듯이 해서 옆에서 몰래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언제나 그렇다. '해야 할 말'은 못해도 '하고 싶은 말'은 한다. 그러면 충분하다.

2020년은 코로나 19로 6학년 아이들과 화성은 몇 번을 걸었지만, 어린이 문화유산 해설사 활동은 하지 못했다. 그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앞의 글에서 수원의 3학년 아이들이 화성행궁에 현장체험학습으로 많이 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아래 글은 어린이문화유산해설사들과 함께 궁리해서 만든 해설자료다.

해설자료를 제작해서 주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보는 것이 아니라 매년 달라지기는 한다.

<정조 임금님의 말! 말! 말!>이라는 3학년 아이들이 정조가 했던 말과 행동을 알아보고, 정조 임금님의 말과 행동을 따라 해 보는 활동으로 구성하였다. 


정조 임금님의 말 따라 하기 첫 번째!
여기는 어딜까? 신풍루라는 곳이에요. 화성행궁의 정문이에요. 정조 임금님은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61세 생신잔치를 이 곳 화성행궁에 왔어했어요.  어머니 혜경궁 홍 씨의 생일잔치를 위해 화성에 왔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그때  신풍루에서 정조 임금님이 무엇을 했을까요?  (신풍루사 미연도 그림을 보여주며) 맞아요. 엄마의 생신을 다 함께 축하하기 위해 이곳에서 쌀과 소금, 그리고 죽을 나누어주었지요. 정조 임금님은 여기 보이는 신풍루 2층에서 백성들이 죽을 먹고 쌀을 가지고 가는 모습을 보셨어요. 그리고 신하들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전하는 지도 지켜보았지요. 정조 임금님은 어떤 말을 하셨을까요? 
“ 이렇게 쌀과 죽을 나누어주는 것은 다 우리 어머니의 생일이라서 그렇도다. 다 함께 감사하고 축하해다오” 
신풍루 앞에서 정조 임금님이 되어 이 말을 해 볼 사람! 
참! 어떤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주었을까요? 가난한 백성들과 가족이 없어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고아나 나이 든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어요.


정조 임금님의 말 따라 하기 2
일반 백성이든 신하든 함부로 왕을 만날 수 없었어요. 왕은 만나려면 최소 3개의 문을 지났어요. 행궁은 임금님이 궁궐에서 나왔을 때 임시로 머물던 처소지만 임금님이 계신 곳에 가려면 3개의 문을 지나야 합니다.
첫 번째 문이 신풍루였어요. 이 곳 봉수당 오기 전에 2개의 문을 더 지났어요. 좌익문과 중양문이에요.중양문을 지나 도착한 이곳은 어딜까요? 봉수당이에요. 이곳에서는 혜경궁홍씨의 생일잔치가 벌어진 곳이에요. 이 그림을 볼까요?(봉수당진찬도를 보여주며)  이곳에서 정조 임금님은 생일을 축하드리며 엄마에게 큰 절을 하였단다. 그러고 크게 외쳤어. 무슨 말을 하였을까? 너희가 정조 임금님이었으면 무슨 말을 했을까?
“생신 축하드려요” “오래오래 사세요” “건강하세요” 그래, 그런 말들이었겠지. 정조 임금님은 그런 뜻을 담긴 말씀을 하셨어.
 그 말이 무언가 하면“천세 천세 천천세”였어. 사람들은 몇 살까지 살지? 보통 사고가 없는 한 80살이나 90살쯤까지 살지? 천세 천세 천천세라는 말을 천살까지 사세요라는 말이니 아까 친구들이 말한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세요라는 말과 비슷하지.
한번 따라 해 볼까? " 천세 천세 천천세“ 정조 임금님이 이 말씀을 하시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따라 했단다. ”천세 천세 천천세“
이렇게 인사가 끝난 다음 이 그림에 있는 것처럼 각각의 자리에 앉아 생일 축하잔치를 구경하였답니다.
자.. 정조 임금님이 되어 따라 해 볼까? 정조 임금님이 되어 이 말을 해볼 사람? 다른 친구들은 신하가 되어 따라 해야 해요.
정조 임금님이 되어 활쏘기
바로 이 곳이 정조 임금님이 활을 쏘던 곳이에요. 저 앞에 화살의 과녁판이 있었겠지요. (득중정어사도를 보여주며) 이 그림을 보면 알 수 있지요.
정조 임금님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활을 쏴도, 걸어가면서 활을 쏴도 다 목표물을 맞출 수 있는 실력이었다고 해요. 낮에는 30발을 쏘아 24발, 또 30발을 쏘아 28발을 맞추었다고 해
밤에는 10발을 쏘아 5발을 맞추었다고 해.
정조 임금님이 활을 쏘던 저 자리에 올라가 멋지게 활 쏘는 흉내를 내 볼 친구 있나요?  그 멋진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줄게요.
정조 임금님의 자리 찾기
이곳은 낙남헌이라는 곳이에요. 여기에서는 2가지 행사가 있었어요. 어떤 행사가 있었는지 기억나요? 이곳에서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합격증을 주기도 했고 노인들을 불러 잔치를 열어주었지요. 그때 정조 임금님은 어디에 앉아 계셨을까요? 맞아요. 저기 건물 안에 임금님이 앉는 의자를 놓고 그 의자에 앉아 그 두 가지 행사를 보셨답니다. 정조 임금님이 앉았던 그 자리에 직접 앉아보면 좋은데 올라가지 말라고 적혀있네요
그런데 방방도라고 하는데 방방의 뜻은 무엇일까요? 뛰는 방방이 아니라 과거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합격증을 나누어주며 축하하는 자리라는 뜻이에요.
이날 과거시험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어머니가 오래 사시기를 기원하는 글’을 적는 것이었어요. 여러분들도 부모님이나 가족이 오래 건강하게 사시기를 기원하는 한마디를 적어봅시다.
정조 임금님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
이 곳은  정조 임금님의 초상화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에요. 
가리키고 있는 곳에 도르래를 보세요. 어떤 쓰임새를 가지고 있을까요? 보기에서 답을 찾아보세요
맞아요. 제사를 지낼 때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햇빛을 피하기 위해 천막을 설치하기 위한 천막을 달 때 사용했어요. 낙남헌방방도나 봉수당진찬도를 보면 이렇게 천막을 쳤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궁이 쪽으로 가서) 이 것은 무엇일까요? 방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아궁이예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초상화가 있는 건물에 왜 아궁이가 있었을까요?(대답을 들은 후) 여러분들의 생각처럼 정조 임금님의 아들이었던 순조 임금님은 비록 아버지의 초상화지만 겨울에 추위 속에 두지 않도록 아궁이를 설치한 효심을 보였어요.

2019년에 해설을 한 6학년 아이들은 그 이전 연도에 6학년 선배들의 설명을 들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내용을 기억하는 것보다 그때의 온전한 따뜻함과 노력을 기억한다. 평소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던 언니, 오빠들이 눈을 반짝이며 자신들에게 설명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자신들도 6학년이 되어 그 반짝이던 눈을 후배들에게 보여준다. 교육이 이정도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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