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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라 Jan 23. 2021

효도 안 하고 사랑하면 안 되나요?

어린이문화유산해설사 첫번째 이야기

추운 겨울  맨 몸으로 강의 얼음을 녹이려고 한 왕상


왕상은 중국 위나라 사람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 병에 든 어머니가 물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자 강으로 달려갔다. 강이 너무나 단단하게 얼어 있어서 도저히 얼음을 깨뜨릴 수가 없자 옷을 벗고 맨 몸으로 강에 누워 체온으로 얼음을 녹이려고 했다. 그러자 하늘이 감동하여 얼음이 갈라지면서 잉어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수원에 살던 최상저가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음을 맞이하였다. 그때 그의 아들 최루백은 15살의 나이였다. 최루백은 호랑이를 찾아가 "나의 아버지를 죽인 너를 용서할 수 없다"라고 큰 소리로 꾸짖자 그의 기백에 놀란 호랑이는 꼬리를 말며 엎드렸다.

효자 최루백/경기문화재단

이 두 이야기를 듣고, '아! 나도 부모님께 효도해야지!', '저 사람들은 대단하구나! 난 저 정도까지는 아니더라고 부모님께 효를 다해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전통시대 효의 이야기를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개인의 행복 추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사회의 가치와 멀리 있다.

전통사회의 효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부모와 집안을 위해 자식이 '희생'해야 하고, 자식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금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런 희생에 대해 사회는 상을 주고 칭찬함으로써 가짜 효자를 부각하고 있다. 아이가 호랑이를 맞서 이긴다거나 물고기가 스스로 얼음을 깨고 나오는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를 통해 효를 가르치는 것도 문제지만, 아이가 호랑이를 찾아가거나 얼음판에 알몸으로 눕는 등의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가 효도일까?라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과연 그 행위가 부모를 기쁘게 하는 것일까, 슬프게 하는 것일까?

부모들은 자식에게 흔히 이야기하지 않는가? 

"나한테 잘하려고 하지 마라. 네가 잘 되는 것이 효도다"

사실 <효경>에서도 우리 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몸을 잘 보전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고 나와있다.


효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어버이를 잘 섬기는 일', '부모에 대한 공경을 바탕으로 한 자녀의 행위'라고 되어 있다. '효'라는 유교적 어휘는 현대사회의 가치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그럼 우리는 '효' 대신 어떤 말을 사용할 수 있을까?


송충이를 깨문 정조


세계유산 화성에서 보통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가치가 3가지가 있다. 화성 건축의 과학성, 정조의 애민정신, 정조의 효심이다. 정조의 효심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야기가 '정조의 송충이 이야기'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 주변에 소나무를 많이 심었는데 송충이로 인해 피해가 심했다. 그래서 정조가 송충이 한 마리를 잡아 이빨로 깨물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솔잎을 갉아먹고 있던 송충이가 땅으로 우수수 떨어졌다는 그 이야기다. 이런 '야사'를 바탕으로 효를 이야기하는 것이 교육적인 것일까?

세계유산 화성이 있는 수원은 '효원의 도시'임을 강조한다.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화성으로 옮기고, 자주 들러서 '효'를 다했으며,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환갑잔치를 수원에서 성대하게 치렀기 때문이다. 

사실 혜경궁홍씨의 환갑잔치는 단순히 자식으로서 부모에 대한 효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임금으로서 백성들에게 '충'을 강조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였다. 임금은 백성의 어버이이니 부모께 효를 다하듯 임금께 충성을 다하라고 이야기하는 대국민, 아니 대백성선전행사이다. 임금 또한 한 명의 자식으로 부모께 이렇게 효도하니 이 행사를 보고 잘 배워서 부모께 효도하고 나아가 임금께 충성하라는 것이다.



수원화성에 오는 초등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초등학교 3학년은 사회 시간에 '우리고장'을 배운다. 1-2학년에는 '나, 가족, 학교, 동네'를 배우고, 4학년은 '경기도'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광역자치단체, 5학년과 6학년에서는 우리나라와 세계지리를 배운다. 

그래서 수원화성에 오는 학생단체 관람객들을 이렇게 분류할 수 있다.

수원화성에 오는 초등학교 3학년은 대부분 수원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이다. '우리고장 수원'을 배우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에 오는 초등학교 4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경기도의 초등학교 학생들이다. 4학년에서 '경기도'를 배우기 때문이다.

수원화성에 오는 초등학교 5, 6학년 학생들은 전국에서 온다. 세계유산 화성과 실학이라는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수원화성'을 배우러 오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수원화성을 방문하는 수원의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은 주로 '화성행궁'을 방문한다. 화성 건축의 과학성이나 정조의 애민정신보다 정조대왕의 '효심'이 3학년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조대왕의 '효심'을 이야기 하기에 적절한 곳이 혜경궁 홍씨의 생신잔치를 벌인  화성행궁이다.


멀리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효 말고 사랑이라고 말하면 안 되나?'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정조의 정치적 행위를 행위 그대로 '효심'으로서 보여주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자신이 할 수 있는 온갖 궁리를 다해 어머니의 생신잔치를 계획하고 실천한 '사랑'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안 될까? 또는 구분해서 가르치면 안될까?

진정한 의미로서의 '효'는 그런 것 까지 다 포함하는 이야기야라고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효'가 전통사회를 지탱하기 위한 정치적 언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다. 효 말고 사랑이라고 하자.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 또한 부모를 사랑한다. 충분하지 않은가?


세계유산 화성 안에 위치한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6학년 아이들과 열심히 공부해서 저학년 동생들과 화성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어린이문화유산해설사'활동을 하고 있다. 6학년 아이들이 3학년 아이들과 화성행궁에 가서 정조의 '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니, 정조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정조의 정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활동과 직접적인 이야기들은 다음 이야기에서 나눠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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