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준비가 없어도 가능한 박물관교육 방법 첫번째

미술관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어!

by 랄라라

경사상위표리(經史相爲表裏)

경전과 역사, 즉 철학과 역사는 서로 겉과 속을 이룬다는 말이다. 더 쉽게 풀이하자면 경전과 역사는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이다, 즉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이다.

역사이면서 철학을 가지지 못한다면 의미 없는 지식의 나열이며, 그것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거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철학이 역사처럼 실제적인 내용을 담지 않는다면 이야기들의 나열로 누구에게도 설득력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박물관이 의미 있는 교육장소라는 것은 대부분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박물관에서의 교육이 교육자의 철학을 담고 있지 못하다면 단순히 의미 없는 지식의 나열일 뿐이기에 박물관 교육을 계획하는 대부분의 교사나 학부모는 많은 부담을 가진다.

박물관은 어른이든 아이든 사전 지식이 없다면 많이 불편한 곳 중의 하나이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무척 어울리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은 단순히 지식의 양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아무런 준비나 사전 지식이 없어도 의미 있는 박물관 교육방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시장 입구 리플릿 하나면 된다


오늘 소개하는 방법은 내용이 아닌 교육방법적인 측면이다.

우선 부모의 입장에서 이야기해보자.

자녀들과 박물관에 방문한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리플릿을 집어 든다.

리플릿에는 그 박물관의 주요 문화유산 사진이 들어있다. 아주 짧은 설명이 나와있기도 하고, 박물관에서 그 문화유산의 위치가 지도처럼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말한다.

"보물 찾기를 해볼까? 리플릿에 나와있는 사진을 니 얼굴과 함께 찍어와!"

간단한 상품, 저녁 메뉴 선택권이라든가 약간의 용돈을 제시해도 좋다.

10명 중 8-9명은 리플릿에 유물 사진을 보고 냅다 뛰어들어간다. 그리고 몇 바퀴를 돈다. 박물관의 규모와 상관없이 생각보다 어렵다. 대부분 찾았지만 꼭 몇 개는 못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이제 리플릿이나 전시실 앞에 있는 지도라는 것을 본다. 이때 학습이 발생한다.

박물관은 각 전시실로 구분되어 있다. 전시실의 기준에 따라 구분되어 있다. 시대로 구분되어 있기도 하고, 주제에 따라 구분되어 있기도 하다. 청자실, 백자실 등의 재료 구분이라던가, 동아시아실 등의 특정 지역 구분이라던가, 민속생활실 등의 주제 말이다. 리플릿에 표시된 유물을 찾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자연스럽게 왜 전시실이 어떠한 주제로 구분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부모는 잠자코 뒤를 따라만 다니면 된다. 그리고 추억이 담길 사진을 찍어주면 된다. 자녀가 2명 이상이라면 서로 사진을 찍어줄 것이고, 혼자라면 셀카를 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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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이 두 꼬맹이들에게 처음 이 활동을 시켰을 때 찍은 것이다. 리플릿의 유물 사진만 보고 무작정 몇 바퀴 뛰어다니고, 서로 이쪽으로 가자 저쪽으로 가자 근거 없이 투덜대더니 어느 순간 리플릿을 펴놓고 의논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보물'을 다 찾고 난 아이들에게 한 가지 질문만 하면 된다.

"오늘 찾은 보물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해볼까? 그리고 그게 왜 마음에 들었을까?"

조그만 여자아이는 반달돌칼이 마음에 든다고 했고, 그 이유는 예뻐서라고 했다. 꼭 그 유물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된다. 왜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와 이름 정도만 알아도 된다. 그때 이후로 박물관에 갈 때마다 이 아이는 반달돌칼을 찾았다.


두 번째로 이 아이들을 박물관에 데려갔을 때는 리플릿을 주자마자 바닥에 주저앉아 이 문화유산들이 어디쯤에 있을지를 예상하여 표시해놓고 움직였다. 아직 어려서 그 예상과 추론이 맞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나름의 활발한 토론이 볼 만했다. 세 번째 박물관에 데려갔을 때는 그 예상이 거의 틀리지 않았다. 매번 처음 가보는 박물관이지만 예상이 거의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나름 박물관의 전시 주제를 추론하여 이해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대부분의 박물관 리플릿은 대표 문화유산을 제시할 때 그 위치를 지도로 표시하고 있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교사가 학생들을 인솔할 때도 리플릿만 있으면 될까?


리플릿을 활용한 박물관 교육방법은 최소 3-4번을 했을 때 그 효과가 무척 크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학교에서 현장체험학습으로 박물관에 학생들을 데리고 갈 때도 이 방법을 사용할 수 있을까?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다면 나는 수학여행을 포함하여 일 년에 10번도 넘게 가니 이 방법을 사용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보통 1년에 1-2번의 현장체험학습을 진행하고, 그중 박물관은 거의 가지 않거나 1번 정도 가게 된다. 이 때는 별로 효과가 없지 않겠냐고?


5학년 아이들 6개 반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단지 리플릿에 있는 문화유산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오는 문화유산과 시대에 맞는 문화유산 찾기로 바꿨다.

그리고 놀이적인 요소를 갖추기 위해 조금만 바꿨다

예를 들자면 사진만 주고 찾기, 설명만 주고 찾기, 부분 모습만 주고 찾기, 여러 문화유산을 합쳐 주제에 맞는 것 찾기( 용 5마리 찾기, 물고기 3마리 찾기 등) 등의 활동이다. 문제 순서도 적당히 1층과 3층을 오갈 수 있도록 배열했다. 난 로비에 가만히 앉아있고, 아이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바쁘게 다녔다. 아이들이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중간중간 나를 찾아오도록 활동지를 설계해놨기 때문에 볼펜 하나 들고 사진 찍어온 것을 확인하고 싸인만 해주면 되었다. 다른 선생님들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나 혼자서도 여유롭게 아이들의 활동을 다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날의 모습은 바로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다. 150명에 가까운 모든 아이들이 동시에 우르르 일단 전시실로 몰려갈 때, 나의 의도에 맞게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전시공간과 전시 주제를 살펴보는 저 아이들.. 흐뭇했다. 이 활동은 모둠별 활동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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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보여주는 모습과 교사의 마음가짐


이러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교사들은 주로 고민한다.

'내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무엇인가 설명을 해주어야 하지 않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 그 아이들을 찾아 뭔가를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교육이란, 특히 문화유산교육은 그러한 마음을 참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문화유산교육은 의미 없는 정보의 나열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평소 교실에서 이런 자발성을 키우는 교육이 잘 이루어져 있고, 협동학습의 경험이 많으면 그 효과는 클 것이다.


아이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위 사진처럼 처음부터 아주 바람직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들어가자마자 직원에게 다가가 이 문화유산이 어딨냐고 물어보는 아이들도 있고, 땀을 뻘뻘 흘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전시실을 몇 번이고 도는 아이들도 있다. 그 모든 것이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거의 찾지 못한 모둠에게도 실패의 경험이 학습이며, 학습은 이 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경험을 바탕으로 교실에서 또다시 학습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미술관이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어

이렇게 이야기를 했지만,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마음 한 편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뭔가 알고 있으니 저런 활동도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래서 마지막으로 준비했다.

몇 년 전 가족과 함께 일본에 방문한 적이 있다.

오사카 시립미술관에 갔었는데 미술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당연히 일본 화가들의 미술은 더더욱 모른다. 더구나 난 일본어도 전혀 모른다. 리플릿을 봐봤자 무슨 내용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럴 때 구글 번역기로 열심히 번역해가며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는 있겠다. 하지만, 난 다른 방법을 택했다.

한 전시실마다 아이들과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 하나씩을 고르게 했다. 나도 함께 골랐다. 그리고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이유를 이야기했다. 누구의 작품인지, 어떤 화풍인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지만 2시간 가까이 깔깔대며 자신만의 해석을 하면서 재밌게 관람할 수 있었다.

그렇게 관람을 마치고 나왔는데 아이가 말했다.

"미술관이 이렇게 재밌는 곳인지 몰랐어!"

이 아이는 올해 경기도박물관이 잠깐 문을 열었을 때 내가 함께 가자고 하니 선뜻 따라나섰다. 난 사실 물어보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안 따라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놀랐다. 그래서 물어봤더니 몇 년 전 일본에서 미술관 갔던 기억이 좋게 남아있었던 것이다. 박물관에 가자고 하면 안 갔을 텐데, 경기도박물관의 특별전시 '경기 별곡: 민화, 경기를 노래하다>라는 민화 전시를 보러 가다니 함께 간 것이었다. 경기도박물관에서도 욕심내지 않고 보고 싶은 몇 가지만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왔다.


그다음은?

내용이 아닌 방법적인 측면에서 박물관 교육 방법 중 하나를 이야기해보았다.

다음번 이야기는 역시 별다른 준비 없이 관광안내지도를 활용한 유적지 답사를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관광안내지도로 미션도 하고, 게임도 한 경험을 다음 이야기로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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