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十五年 春正月 作新宫室 儉而不陋 華而不侈; 온조왕 십오 년 봄 정월에 새로이 궁실을 지었으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
이 말은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금동대향로, 서원이나 사찰, 조선의 궁궐 등을 자주 비유하면서 백제의 궁궐뿐 아니라 우리 문화를 표현하는 대표적인 말이 되었다. 나도 개인적으로 이 말만큼 우리 문화를 잘 표현한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으면서' 도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유산이란 무엇 일 까는 어렵다.
이 글을 다르게 조합해보면 검소하면서도 화려함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누추하지 않으면서도 사치스럽지 않아야 한다.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우리 문화를 잘 표현하는 말이라고 했지만, 오늘은 개인적으로 청자를 통해 이 말을 살펴볼까 한다. 문화유산을 바라보는 것도 하나의 기호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화려함과 검소함, 그러면서도 누추하지 않음을 갖춘 것이 청자가 아닐까 해서다. 사치스럽지 않음은 우리나라 청자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중국 청자의 사치스러운 문양이나 다른 나라의 도자기와 비교한다면 검소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첫 번째로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청자죽절문병이다. 리움에 있는 이 문화유산은 사람의 눈을 끄는 압도적인 미가 있다.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아, 이런 것을 명품이라고 하는구나"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항아리 입술 부분(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선의 부드러움과 너무나 자연스럽게 한줄기에서 두 줄기로 갈라지는 매끄러움은 감탄스럽기만 하다. 유홍준 교수가 금동대향로를 설명하면서 명품은 멀리서 보았을 때 아름답고, 가까이 보면 더더욱 아름다우며 실용성까지 있다고 했는데, 이 청자죽절문병도 그렇다.
비색의 투명함과 균일함, 대나무의 마디가 가지는 세로와 가로의 자연스러운 조화..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이 아름답다. 사치스럽지 않고 누추하지도 않으면서 단순미를 가지면서 화려하다.
청자죽절문병/국보 제 169호/리움
두 번째는 청자연화문표형주자다. 역시 리움에 있는 도자기다. 다른 것보다 개구리가 너무 앙증맞게 귀여워서 눈길이 확 쏠린다. 저 도자기를 만든 도공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만큼 저 개구리는 정말 잘 만들어있다. 이 개구리는 주자의 뚜껑과 연결하는 실을 묶어두는 곳이다. 실용성과 심미성의 조화가 완벽하다. 청자에 개구리를 만든 이유는 개구리가 알에서 올챙이, 개구리로 변하는 생태적 특징 때문에 신성한 동물 또는 왕을 상징한다. 늙도록 자식이 없어서 하늘에 기도를 하던 부여왕 해부루가 연못의 돌 밑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개구리 모양의 아이를 발견하여 자식으로 삼았다는 금와왕의 이야기도 그 상징성으로 나온 이야기이다. 왕, 즉 권력과의 상징이다 보니 선비들이 사용되는 연적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다. 개구리가 학자들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은 '움츠렸다가 뛰는' 개구리의 행동양식이 학자들이 때를 기다리며 학문을 갈고닦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삼국유사를 보면 선덕여왕이 개구리가 우는 것을 보고 백제군사가 있음을 알아채고 물리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개구리가 예언적인 능력을 지닌 신성한 동물로 생각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개구리뿐 아니라 연꽃을 안고 있는 동자의 모습도 천연덕스러우면서 예쁘다. 동자와 연꽃은 둘 다 순수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검붉은 연꽃잎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으며, 손잡이와 물이 나오는 주둥이의 선도 무척 아름답다.
청자진사연화문표형주자/ 국보 제 133호/리움
세 번째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참외모양병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청자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꼭 이 청자는 보고 온다. 좌우 대칭도 맞지 않고, 화려한 그림도 없고, 기린 향로 등과 같은 화려한 모양이 아니나 이 청자가 가지는 단순하지만 질리지 않는, 사람을 끄는 미감이 있다. 복제품을 사놓고 그것도 좋아서 한참을 바라본 적도 있다. 좋은 것은 보면 볼수록 더 좋다는 말을 떠올리게 만든 청자다.
좋아한다면 잘 설명할 수 있을 텐데, 이 청자 앞에 사람들을 데리고 가면 "좋지 않아요? 참 좋은데.."라는 말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이유를 생각할 필요 없이 그냥 좋다.
청자참외모양병/ 국보 제 94호/ 국립중앙박물관
<화이불루 검이불치>라는 말을 생각하며 제일 먼저 떠올린 도자기는 첫번째로 이야기한 청자죽절문병이다. 또 뭐가 있을까 해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청자 2개도 함께 이야기를 해보았다. 생각해보니 리움을 학급 아이들을 데리고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교사연수나 모임에서는 함께 많이 갔었는데 말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아이들을 데리고 리움에도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