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자철화포도원숭이무늬항아리 속의 상징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초등학교 교실에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담임선생님이 “한 친구가 전학을 왔어! 많은 것이 낯설 테니 친하게 지내고 이것저것 잘 알려줘! “라고 말씀하신다. 그럼 선생님이 나간 후 교실에 남은 전학생과 그 교실의 아이들은 갑자기 친해질까?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 친해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급식도 같이 먹고, 수업시간에 같이 떠들다 혼나기도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면서 친해진다. 물론 그 학급에 붙임성이 좋은 친구가 있거나 전학생의 성격이 아주 원만하다면 그 시간은 줄어들 것이다.
그럼 문화유산과 친해지려면?
그렇다면 비슷한 이야기를 해보자.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박물관에 간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 몇몇 사람들이 이 앞에서 몇 시간을 가만히 쳐다본다는 –앞에 가서 아이들에게 “ 이 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그 귀함은 비교할 수 없는 정말 귀한 보물이란다. 너무나 아름답지 않니?”라고 설명한다. 과연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씀대로 그 문화유산을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문화유산이 아름답다고 아이들이 느끼기 위해서는 그 문화유산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아이들의 시선에 맞춘 것이어야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상설전시장 1층 ‘역사의 길’은 체험학습 단체가 차지하고 있다. 문화유산 앞에서 크게 떠드는 것은 다른 사람의 관람을 방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체험학습단체의 교사들은 학습지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에 굳이 문화유산 앞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복도 한쪽 구석에 앉아 활동지에 들어갈 정보를 열심히 설명한다. 그리고 아주 잠깐 그 문화유산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잠깐 그 앞에 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면 국보 83 호니, 어느 시대의 문화유산이니, 반가사유상의 뜻이 뭐니 하는 정보를 열심히 전달한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고 하는데 아는 것은 있으되 보이는 것은 없다. 이러한 전달 방식은 오히려 아이들과 문화유산을 더욱더 멀게 만든다.
박물관에서 문화유산 교육의 핵심은 얼마나 그 문화유산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가라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이것을 '문화유산과 친해지기'라고 표현하고 싶다.
친해지는 방법은 많이 있겠지만 오늘 이야기는 감각을 통한 체험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박물관에서 문화유산에 대한 체험은 단지 시각을 통한 체험이겠지만, 조금 더 구체성을 통해 시각을 확장한다. “ 불상이 꼬고 있는 다리는 오른발일까, 왼발일까? 뺨 쪽에 다가가 있는 손가락은 닿아 있을까, 떨어져 있을까? 오른손의 손가락은 어떤 모양으로 굽혀서 볼에 갖다 대고 있을까? 앉아서 보았을 때 반가사유상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눈은 감고 있을까, 뜨고 있을까? 이 불상은 옆이나 뒤쪽에서도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는데 뒤로 돌아가서 보았을 때 찾을 수 있는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등의 시각적인 관찰이다. 그런 이후 ’ 따라 해 보기‘이다. 똑같은 자세-여기는 관찰한 내용을 모두 집약한다. 발의 위치와 손의 모양, 약간 고개를 숙인 모습, 알 듯 모를 듯한 미소까지-를 만들어 친구들과 사진을 찍어보는 것이다. 전시실 바깥에 나가 의자에 앉아 찍는 아이들도 있고, 제법 그럴듯한 미륵보살의 미소를 띠는 아이들도 보인다. 손가락 하나하나의 각도라던가 머리를 숙인 각도를 정확히 표현하는 아이들도 있고, 옷 주름을 표현하기 위해 점퍼를 허리에 묶는 아이들도 있다. 이런 활동을 친구들과 하다 보면 반가사유상과 친구를 번갈아 계속 바라보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 나누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반가사유상의 세부적인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오래도록 관찰하게 된다. 이 활동이 끝나면 아이들은 알게 모르게 이 문화유산에 대해 친숙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미륵보살의 이야기를 펼친다. ” 이 불상의 이름은 미륵보살이란다. 이 미륵보살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면 모든 사람들이 고통이 없는 세상이 오는데... 어떤 세상이냐? 땅에는 심지 않아도 과일과 곡식이 저절로 열리고.... “
원숭이가 항아리를 들고 웃고 있는 이유는?
조금 더 쉽게 해 보자. 즐겨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표정 따라 하기’다. 위 사진은 먹물을 담는 그릇, 묵호이다. 그런데 그냥 그릇이 아니라 원숭이 한 마리가 아주 재밌는 표정을 지으며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고 있다. 이 청자 그릇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 이 원숭이와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이 원숭이 청자항아리 옆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 미션은 어떨까? 이 미션은 처음에는 부끄러워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 명이 이를 드러낸 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제대로 해내는 순간, 모두 웃음이 터진다. 그리고, 더욱더 비슷한 표정을 찍기 위해 원숭이의 웃음을 보다 자세히 관찰하고 경쟁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똑같은 웃음’을 짓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도 보여드리고, 며칠이 지나도 친구들과 그 사진을 보며 자신이 더 똑같다며 낄낄거린다. 이 미션은 아이들과 박물관이나 답사를 다니며 실패한 적이 거의 없는 방법이다. 이 곳 외에도 우리나라 궁궐 금천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창덕궁의 금천 다리에 있는 서수들과 함께 표정 짓기 미션, 고궁박물관에 있는 경희루 연못 출토용과 함께 메롱 하는 사진 찍기 미션이 아이들이 무척이나 즐거워한 활동이었다. 이러한 활동을 하다 보면 굳이 교사가 이 문화유산을 자세히 관찰하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똑같은 미소를 지으라는 하나의 미션만으로도 한 문화유산을 오래 바라보고, 그 문화유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싫어하면서도 좋아한 원숭이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사실 ‘원숭이’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원숭이’를 검색해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내용이 시경을 인용한 ‘원숭이에게 나무 오르는 것을 가르치지 말라, 그것은 더러운 진흙 위에 다시 더러운 진흙을 붙이는 것과 같다’라는 것이다. 뜻은 나쁜 사람에게 나쁜 일을 가르치면 안 된다라는 것이니 원숭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다. 원숭이는 사교적이고 모방의 재주가 뛰어나며 감각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운이 산만하고 지속성이 모자라니 그 특징이 진중함을 미덕으로 아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싫어할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비들이 사용하는 묵호를 원숭이가 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한자어에 있다. 제후를 나타내는 제후 후(帿)와 원숭이 후(猴)가 발음이 같아 원숭이가 과거급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공부란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이다. 조선시대에 양반집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글공부를 해서 아주 적은 숫자의 사람들만이 과거에 합격한다. 그 합격자들의 평균 나이가 30대 중반이다. 매일 공부를 해야 했던 선비들에게 먹물 항아리를 든 원숭이가 이빨을 드러내 웃으며 말하는 것 같다. “난 재주가 많고 제후를 상징하니 내가 주는 먹물로 공부하면 반드시 과거에 합격할 거야. 힘들어하지 말고 나처럼 한번씩 웃어봐. 다 잘 될 거라니까”
나는 이렇게 익살스러운 문화유산이 좋다. 일본과 중국의 문화유산들은 너무나 진지한데 비해 우리의 문화유산은 진지한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재밌게 표현되어있다. 과거 합격을 위해 공부의 어려움을 겪는 선비들을 위해 원숭이가 웃어주고, 경회루라는 목조건물을 화재를 막기 위해 연못에 넣어놓은 용은 메롱을 하고 있다. 궁궐로 들어오는 온갖 나쁜 것을 물리치기 위한 창덕궁 금천의 서수는 해맑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래서 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 원숭이의 씨익~미소를 아끼고 사랑하며, 아이들이 그 미소를 지으며 조상들의 그 지혜를 배우기를 바란다.
그릇 하나에 품은 소망은?
그럼 여기서도 원숭이를 한번 찾아볼까? 포도넝쿨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휘익 날렵하게 날아오르는 원숭이를 찾을 수 있는가? 국보 93호인 백자철화 포도 원숭이 무늬 항아리이다. 이름이 너무 길다고 어려워하지 말자. 백자이니 흰 그릇이고 철화는 철화라는 안료를 사용했다는 것이며 원숭이와 포도무늬를 그린 항아리라는 뜻이다. 원숭이의 저 날렵한 모습을 무늬로 만든 것은 과거에 합격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포도를 그린 것은 포도가 알이 많으니 자손이 번성하는 것을 기원하는 것이다. 포도만 그린 것이 아니라 포도넝쿨을 그린 것은 넝쿨이라고 하는 것이 엉키고 엉켜 끝없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니 자손 번성과 부귀가 집안에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항아리 하나에 욕심이 너무 많지 않냐고?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시험을 잘 보고 싶을 때 박물관에 가서 원숭이를 보도록 하자.
항상 하는 말이지만 혹시 아나? 도자기 속 원숭이가 여러분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지.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