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스토너..뭐가 있더라? 넌 무엇을 기대했나?
어느 모임 게시판의 글.
"스토너처럼 살고 싶네요."
"저의 최애 책을 이렇게 소개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전 스토너보다 조르바 쪽입니다."
이 무슨 외계어인지! 그래서 결심했다. 읽어보기로.
이 책은 '스토너'라는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갑자기 슬론이 아주 멀게 보였다. 연구실의 벽들도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스토너는 자신이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질문을 던지는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말이십니까?"
"정말이지" 슬론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학생들이 느끼기에 슬론 교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격이 너무 커서 그 간격을 좁히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사람이었고, 대부분이 학생들이 그를 싫어했고, 그는 학생들을 비꼬면서 즐거워하는 태도로 응수했다.
하지만 2학년 영문학 개론 시간에 스토너에게 경멸의 시선을 던졌던 슬론 교수는 졸업을 앞둔 스토너에게 미래를 제시한다. 스토너 자신조차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때에...
자신도 모르는 자신을 어떻게 아느냐는 스토너의 질문에 슬론 교수는 대답한다. "사랑이야..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책에 나와 있지는 않지만, 슬론 교수가 직설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거겠지?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은 알아. 이것이 사랑인지, 욕심인지, 아니면 한 때의 호기심인지... 자네는 사랑일세. 나도 그랬거든" 하지만...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은 알고 있다. 이렇게 까지 말하지 않아도 된다. 금방 그 의미를 알아챌 수 있을 테니까. 사랑은 그런 거니까.
농사를 버리기로 결심한 스토너. 부모와의 삶을 거부한 그의 눈에 마음 깊이 울고 있는 부모의 모습이 보인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까?
"죄송합니다. 저는.... 하지만 진심으로 당신을 다시 만나러 오고 싶어요. 당신이 허락해주신다면 자주,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 그녀가 말했다. "뭐'"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들이 하나로 얽혀서 무릎 위에 놓여 있고, 손마디가 하얗게 변해 있었다. 손등에 아주 희미한 주근깨가 나 있는 것이 보였다.
스토너가 말했다. "뭔가 잘 안되네요. 그렇죠? 죄송합니다. 당신 같은 분을 만난 적이 없어서 제가 자꾸 서투른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혹시 당신을 곤란하게 해 드렸다면 용서해주십시오"
첫눈에 사랑에 빠진 스토너.
한 번도 여성을 사귀어본 적도, 사랑해 본 적도 없는 스토너. 하지만, 파티에서 만난 그녀에게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데이트 신청을 한다. 그도 서투르고, 그녀도 서투르다. 서툴러서 풋풋하다.
사랑을 하면 이렇게 된다. 내 행동이, 내 감정의 표현이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라고 자꾸 생각하게 만드는 것. 좋아하는 마음이 내 행동을 괜히 미안하게도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의 시작이다.
그는 인기 있는 교수였다. 학생들은 강의가 없는 시간에 그의 책상 주위에 모여 북적거릴 뿐만 아니라 복도에서도 그를 졸졸 따라다녔다. 그가 가끔 학생들을 자신의 연구실로 초대해서 현악 4중주 음반과 대화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알려졌다. 월리엄 스토너는 그와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슬론 교수가 죽고 로맥스라는 교수가 부임해왔다. 로맥스 교수는 외모는 누구가 싫어할만한 흉측했으나 특유의 발랄함과 위트, 냉소, 자존감을 가진 사람으로 스토너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다. 스토너는 그와 어울리고 싶으나 로맥스는 냉소한다.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대하는 것은 자신이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을 때 즐거운 도전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 한계를 극복하는지조차 모를 때 힘들기만 하다.
그가 강의 내용에 완전히 몰입한 나머지 자신이 무능력은 물론 자기 자신과 눈 앞에 있는 학생들까지 잊어버리는 경험을 종종 했다. 완전히 열정에 사로잡혀서 대개 강의의 지침서로 삼던 강의 메모마저 무시해버린 채 말을 더듬기도 하고 손짓을 동원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런 감정의 폭발이 신경에 거슬렸다. 자신이 영문학이라는 주제를 너무 친숙하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서였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에게 사과를 했다. 하지만 강의가 끝난 뒤 학생들이 그를 찾아오기 시작하고 과제물에도 조심스러운 애정과 상상력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그는 기운을 얻어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는 일을 해보기로 했다. 문학, 언어, 정밀하고 기묘하며 뜻밖의 조합을 이룬 글 속에서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자를 통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그는 마치 위험하고 부정한 것을 숨기듯 숨겨왔지만 이제는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 대담하게, 종내는 자랑스럽게.
스토너는 환히 빛이 났다.
아니, 사실 아내로부터 미움을 받는 스토너, 부모님까지 돌아가신 후 그는 더욱 힘들어졌다.
하지만, 장인어른이 죽고 나서 아내가 친정에 가자 딸인 그레이스와 너무나 충만한 교감을 이룬다. 그는 그레이스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의미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그것은 곧 자신의 학문과 교육에도 영향을 준다.
이제까지 슬론 교수나 책에 의해 억눌렸던 그의 학문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그의 감성은 활짝 꽃이 핀다.
어떤 일을 할 때 나 역시 저럴 때가 많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 대담하게, 종내는 자랑스럽게...
하지만, 삶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그의 아내 이디스가 돌아와 그레이스와 떼놓고, 학문을 방해하였다. 그는 가정 속에서 불행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학문을 사랑하고, 탐구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의 강의를 듣고 싶어 하게 되고 그 이전 학기부터 예약하지 않으면 그의 수업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인기강사가 된다. 이때 등장한 로맥스 교수다. 로맥스는 분명 스토너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스토너를 보며 내가 스토너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를 사랑하지 않는 아내와의 관계, 답답한 듯한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보며 울화가 치밀다가 그가 딸과의 교감을 통해 세상을 향해 열려가는 모습을 보며 쾌감이 들었다. 다시 그의 아내의 등장으로 그레이스와 스토너가 불행해지자 가슴 한쪽이 터질 것 같았다. 아내 이디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스토너의 모든 것을 망치려고 할 때 나도 모르게 가슴 한쪽이 답답했다. 하지만, 딸 그레이스를 통해 교육자, 연구자로서의 모습을 발견한 그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에 가슴이 떨렸다. 하지만, 세상에 만만한 일은 없는 것. 로맥스의 제자인 워커가 스토너의 세미나에 억지로 참석하면서 첨예한 갈등이 일어난다.
앞으로 이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까?
하루 종일 스토너가 되어 기뻤다가 슬펐다가 답답했다가 화났다가 안심하다가 마침내 불안해졌다.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스토너의 삶이 보여주는 모습이 '나'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묘하게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으며 스토너가 되었다가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가... 시점이 묘하게 엇갈리며 집중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불안하게 곤두선 마음만이 원고를 건드렸다. 하지만 점차 단어들이 강력하게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더욱 주의 깊게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빠져들었다. 그는 처음으로 되돌아갔고, 글을 따라 그의 시선이 흘러갔다. 그래, 그렇겠지. 그는 혼잣말을 했다. 그녀가 세미나 발표 때 말했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배열되어서 그 자신도 어렴풋하게 엿보기만 했던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상에. 그는 놀라움에 차서 혼잣말을 했다. 종이를 넘기는 그의 손가락이 흥분으로 가늘게 떨렸다.
스토너.. 아! 스토너!!!
학문에 대한 열정과 교육에 대한 신념이 강한 스토너!
하지만, 이미 작가의 복선이 있었던 학문이라는 것은 출세를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하는 로맥스는 스토너를 철저히 고사시킨다. 그리고 똑같은 이기심으로 방관하는 사람과 힘 없이 권력에 따르는 방관자들..
하지만, 스토너는 캐서린을 만난다.
캐서린이 원고를 그에게 주고 갔을 때 그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내내 그 원고를 읽지 못한다. 빠져 들 것이라는 것을,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무의식 중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나이 마흔셋에 윌리엄 스토너는 다른 사람들이 훨씬 더 어린 나이에 이미 배운 것을 배웠다. 첫사랑이 곧 마지막 사랑이 아니며, 사랑은 종착역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것. 두 사람 모두 수줍어하면서 천천히 조심스럽게 서로를 알아갔다.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다가 물러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에게 억지로 자신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나 역시 이렇게 살아왔으므로...
잠시라도 스토너의 행복을 보고 싶어 100페이지도 넘는 분량을 단숨에 읽었다.
스토너는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그 사랑은 너무나 온전하였으며, 서로를 존중하는 사랑이었으며, 열정적이었다.
스토너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잠시 있기를 멈추고, 그 충만한 행복을 즐겼다.
그러나, 마흔셋의 스토너여!
나는 안다. 이것이 끝이 아닌 것을.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이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생기는 순간이며, 그래서 불행이 성큼 다가온다는 것을.
스토너의 그다음 불행을 주는 복선이 여기저기 깔려있으므로...
그래서 스토너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읽은 다음 잠시 멈춘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스토너여! 지금 행복을 마음껏 누리기를, 그래야 그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음이다.
새벽 아침, 안개가 자욱하다. 자욱한 안개를 달리며 내내 스토너에 대한 안타까움을 지울 수가 없다. 아니 내가 살아온 삶을 계속 떠올리며 삶이란 참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는 사랑을 원했으며, 실제로 사랑을 했다. 하지만, 그 사랑을 포기하고, 가능성이라는 혼돈 속으로 보내버렸다. 그는 또한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지만, 거의 평생 동안 무심한 교사였음을 그 자신도 알고 있었다.
언제나 알고 있었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캐서린과의 헤어짐까지는 참아줄 수 있었지만, 딸 그레이스에 대해 아내 이디스의 독선을 막지 못한 것은 화가 났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 역시도 어쩔 수 없음을.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걸까?
마지막 20쪽은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 나보다 나이 들고 병든 스토너. 그의 마지막이 어떠할 것이라는 것이 뻔하게 느껴졌으므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고,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마저 잘 들리지 않을 때 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하지만, 스토너! 사람은 유한한 존재고 삶에 옳은 답이란 없다. 수없이 많은 정답과 그만큼 많은 오답이 있을 뿐이다. 삶은 과거가 아니라 항상 현재의 연속이다. 과거에 묶여 현재를 힘들어하고, 미래를 위해 현재를 박제하는 것에 대해 나는 동의할 수 없다.
항상 현재를 살자. 나중에 치기 어린 판단이나 행동이었다고 생각될 지라도 그게 현재는 정답이니까. 과거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만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니까.
하지만, 스토너! 당신의 삶을 존중한다. 당신의 삶 역시 또 하나의 정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