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가져야 하는 것은 자발성이다. 아무리 재밌는 놀이라고 하더라도 억지로 시켜서 한다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두 번째는 공정한 경쟁을 가져야 한다. 공정한 경쟁이라 함은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경기나 시합적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규칙이 잘 지켜져서 상대와 나에게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우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아무리 지고 있더라도, 또는 실력이 부족하더라고 희박한 확률에 가진 운에 의해 역전을 할 수 있어야 놀이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가지를 더 덧붙이자면 위의 특징을 가지면서 규칙이 단순할수록, 놀이의 시간이 5분 이내일 수록 더 매력적이며, 오히려 반복을 하면 할수록 중독성을 가지게 된다.
이런 놀이의 요소를 가장 잘 갖춘 것이 가위바위보이다.
아이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는 것을 보면 그 단순한 놀이를 질리지 않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의 놀이가 가져야 할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래서 가위바위보만으로 지치지 않고 논다. 또한 다양한 상황에 적용된다. 줄을 설 때도, 놀이를 시작하기 전 순서를 정할 때도, 음식을 고를 때도 말이다. 가위바위보는 그 자체가 놀이며, 놀이의 시작이 되기도 하고, 놀이의 완성이기도 하다.
두 번째가 주사위 놀이다.
주사위 놀이는 한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요소가 가위바위보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증가한다. 2명이 주사위 한 번을 던진다고 생각하면 36가지의 경우가 나오며 3명이 한 번씩 던진다면 216가지의 경우의 수가 생긴다. 2명이 주사위 놀이를 하며 20번 정도의 주사위를 던지고, 놀이판 특정 지역에 한 두 가지의 명령어(1번 쉬기, 1번 더 주사위 굴리기, 두 칸 앞으로, 다섯 칸 뒤로 등)만 넣어도 그 경우는 수는 수백만 가지, 수천만 가지로 증가한다. 그래서 단순한 놀이 같지만 질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여기 뱀주사위놀이가 있다. 아래 뱀주사위놀이를 아는 사람은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다.
이 놀이는 군사정권 시절 마분지에 인쇄해 20원이나 30원에 팔던 놀이다. 주사위라던가 게임 말 등은 없이 놀이판만 팔았다. 주사위가 없으면 육각형의 연필을 굴려 놀이를 하기도 했고, 종이로 주사위를 만들어 굴리기도 했다. 이 놀이를 수백 번, 수천번은 했지만 이 놀이의 그림을 자세히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교사가 되고 나서 이 놀이판의 그림이 주는 상징성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앞으로 전진은 주로 착한 일이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운동이나 공부를 열심히 한다거나, 할아버지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행동, 산에 나무를 심는 등의 행동은 '고속도로'를 타고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그 시대의 가치를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군사정권의 '반공이념'이 철저할 때라 가장 큰 전진은 간첩신고로 무려 52칸을 상승할 수 있다. 알게 모르게 공부나 선행보다 훨씬 더 큰 가치는 '반공'이라는 것을 알게 모르게 심어주고 있다. 또한 체육으로 성공한 사람은 4칸 전진(8-->12)과 이공계열로 직장을 얻는 것은 10칸 전진(76-->86)에 비해 농업이나 축산업은 각각 18칸과 20칸의 전진을 하며, 책상에 앉아 공부를 하는 인문계열은 24칸의 전진(32-->56)이 되는 것으로 보아 농축산업을 장려하고 이공계열보다 인문계열을 중시한 당시의 인식을 알 수 있다.
그럼 후진하는 페널티를 보이는 행동은 무엇일까? 나무에 오르기(떨어져서 다친다), 빙판에서 스케이트 타기(얼음이 깨져 물에 빠진다), 다른 사람 때리기, 낙서하기 등 도덕교과서 같은 교훈을 가득가득 담고 있다. 그중 돋보이게 떨어지는 것은 불장난으로 무려 28칸을 하락한다. 나무 심기를 강조한 시대상을 반영한다. 공부를 하지 않고 잠자는 아이와 무기를 만들어 폭발을 일으켜서 다치게 되는 행동도 22칸을 떨어뜨린다.(28-->6, 72-->50) 하지만 당연 가장 큰 후진은 66번에서 14번으로 떨어지는 42칸의 하락이다. 42칸의 하락은 재밌게도 성희롱이다. 놀이판의 전반적인 메시지와는 다소 맞지 않지만, 이 놀이판을 만든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이 놀이판은 군사정권이 강조하는 '반공'과 '계몽'을 '놀이'라는 것과 결합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놀이판은 기원전 200년 인도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되는 ‘뱀과 사다리(snake and ladders)’가 원형이다. 20세기 초에 대량 인쇄가 가능해지면 ‘미끄럼틀과 사다리’로 이름으로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게임치고는 이름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으로 뱀이 미끄럼틀로 바뀌게 되었는데, 이 놀이판에서는 군사정권의 큰 업적이라 불리는'고속도로'를 강조하기 위해 사다리 대신 고속도로를 표시하였다.
전 세계가 놀았던-놀고있는 놀이, 주사위놀이
이전 글에서 쌍륙놀이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승경도나 승람도 놀이도 주사위놀이이다. 단지 승경도나 승람도 놀이는 움직이는 말에 역할을 정했다는 점이 조금 더 게임적 요소를 집어넣은 것이다. 승경도는 조선시대 양반가에서 놀던 놀이로 시작을 '한량, 유생, 문과급제, 무과 급제, 은일(과거시험은 보지 않고 공부만 하는 사람으로 특채)'의 캐릭터로 시작하여 그 캐릭터 성향에 맞게 진급하여 영의정이나 봉조하 등의 명예직으로 퇴직하는 놀이이다. 이 놀이는 수백 개의 관직을 놀이로 익힐 수 있으며, 높은 관직으로 갈수록 귀양이나 사약을 받는 등의 페널티를 주어 벼슬이 높을수록 몸과 마음을 바르게 가지라는 교훈을 주기도 한다. 한편 승람도 놀이는 우리나라의 경치 좋은 명승지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시인, 유학자, 스님, 기생 등의 캐릭터로 시작되고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고장의 지리를 파악하게 하는 것이다. 재밌는 점은 그 캐릭터별로 장소에 따른 장점과 페널티를 주어 역사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한다. 예를 들면, ‘한량’이 진주 촉석루에 도착하면 특권을 얻어 다른 신분들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데 이것은 임진왜란 때 한량들이 의병을 모아 왜군을 무찌른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승람도놀이/승경도놀이
동서양, 옛날과 현대, 종이판이나 입체, 온라인을 막론하고 이 놀이는 계속 유효하게 진행되고 있다.
19세기 인도의 놀이판/현재의 입체 놀이판/온라인 놀이
조선을 가지고 놀다, 일본의 회쌍륙놀이
경술국치 후 얼마 되지 않는 1911년 1월 11일, 일본에서는 어느 신문사의 부록으로 '조선 쌍륙놀이' 즉 조선 주사위 놀이가 나온다. 이 놀이에는 조선은 미개한 나라이며 삼국시대부터 일본에 조공을 바친 속국이라는 것이 각 놀이판에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 을사늑약을 강제한 이토 히로부미를 영웅으로, 경술국치를 강제한 데라우치 마사타케에서 놀이가 끝난다. 조선을 정복 대상으로, 평화보다는 전쟁으로 인한 정복에 정당성을 부여한 놀이이다. 놀이를 통한 역사교육이며, 군국적 세뇌교육이다.
참고로 일본은 당시 고등학생들에 대해 예산을 지원하여 수학여행을 조선과 만주로 보냈다. 조선이라는 식민지에 아이들을 보내어 '강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주고, 만주로 가서 앞으로 지배할 나라에 대한 미래(?)를 제시한 것이다.
놀이는 사람은 똑똑하게도, 바보로도 만든다.
놀이가 교육과 합쳐지면 강력한 세뇌 도구가 된다. 왜냐하면 재밌기 때문에 놀이가 담고 있는 철학을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놀이의 반복성과 중독성은 놀이가 담고 있는 철학을 놀이를 하는 아이들에게 알게 모르게 녹아들게 한다.
그래서, 함께 역사모임을 하는 한 선생님은 '반공이념'을 중시하는 시대상이 반영된 놀이판을 오래 전에 '평화와 통일'이 녹아있는 놀이판으로 바꾸어서 아이들과 놀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