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이와 망소이의 성은망씨인가요?

이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by 랄라라

고려시대의 일입니다. 거란과 여진과의 전쟁이 끝나고 다른 나라와의 전쟁이 없어지면서 문신들에 비해 무신들이 차별대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무신이었던 정중부와 이소응이 젊은 문신들에게 각각 수염이 불태워지고 뺨을 얻어맞는 일이 생겼습니다. 화가 난 무신들은 문신들을 죽이고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차별받던 무신들이 권력을 잡으면서 고려는 어떤 사회가 되었을까요? 차별대우를 받던 무신들이 문신과 무신들이 모두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었으면 가장 좋았겠지요? 하지만, 권력을 독차지하기 위해 무신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이는 일을 반복하였습니다. 또한 권력을 차지한 무신들은 함부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자신들의 세력을 더 크게 만들었고, 그 결과 백성들의 생활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 무렵의 일입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공주 명학소의 백성 망이, 망소이 등이 자기 무리를 모아 스스로를 산행병마사라 부르며 공주를 무너뜨렸다’라고 하였습니다.

명학소에서 소란 고려시대의 행정구역으로 국가가 필요한 특별한 물건(금, 은, 철 등과 같은 지하자원이나 종이, 기와 등의 수공업 생산품)을 납품하는 지역을 말합니다. 이 곳의 백성들은 다른 지역의 백성들에 비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불평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공주 명학소는 숯을 생산하여 국가에 납품하는 곳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많은 세금으로 힘들었던 이 지역의 백성들은 무신들이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생활이 더 힘들어졌습니다. 참을 수 없게 된 망이와 망소이가 사람들을 모아 공주를 공격해 차지하였으며, 정부가 보낸 군사들까지 물리치고 충주까지 점령하였습니다.

여기서 고려사에 나오는 망이와 망소이의 성은 무엇일까요? 이 궁금증은 ‘망’으로 시작하니 성씨가 ‘망’씨가 아닌가 하여 시작되었습니다.


우선 망씨가 있는지 우리나라의 성씨를 찾아보았습니다. 가장 최근의 <2015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 성씨는 총 5,582개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10개의 성씨가 차지하는 비율이 63,9%를 차지했습니다. ‘ㅁ ’으로 시작하는 성씨에는 특이한 성씨로 묘, 무본 등의 성씨가 있었으나 ‘망’씨는 없었습니다.

망이와 망소이의 한자를 보니 망이(亡伊)와 망소이(亡所伊)였습니다. 망(亡)은 ‘망할 망’자이며, 이(伊)는 ‘그이(그녀) 이’자입니다. 풀이를 해보면 망이는 망할 놈이라는 뜻이며, 망소이는 소 지역에 사는 망할 놈이라는 뜻이네요. 조선 후기까지 일반 백성들은 성씨를 가지지 않았다고 하니 당시를 기록할 때 이름을 그렇게 기록한 것은 당시 지배층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사>라는 책은 조선 전기에 편찬된 고려왕조의 역사책이며, 조선을 세운 사대부들의 역사의식을 담고 있다고 하니 당시 조선의 지배층 인식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살기 힘들어 그 해결책을 정부에 요구한 백성들은 ‘망할 놈’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또한 현재의 우리는 대부분 그 뜻을 알지 못한 채 그대로 배우고 사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 군사정권에 의해 ‘폭동’으로 불리던 사건이 ‘항쟁’이나 ‘민주화운동’로 다시 이름 지어지게 된 경우처럼 어떤 사건의 이름이나 개념은 그 사건을 이해하는 데 무척 중요한 것입니다. 교육의 최고 가치가 ‘민주주의 의식의 함양’이라고 할 때 망이와 망소이의 이름을 그대로 배우고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망이, 망소이의 난이 진압되지 않자 정부는 명학소를 일반 행정구역으로 바꾼다는 약속과 계속 군사들을 보내 반격합니다. 그러자 망이와 망소이는 항복을 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마무리가 된 줄 알았던 이 사건은 항복한 지 한 달 후 다시 일어납니다. 어찌 된 일인지는 <고려사>에 기록된 망이의 말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 고향을 현으로 승격시키고 수령까지 배치하여 백성들을 보살피게 하더니, 다시 군사를 되돌려 토벌하러 와서 우리 어머니와 처를 잡아 가두니 그건 무슨 까닭인가? 차라리 싸우다가 죽을지언정 끝까지 항복하지 않을 것이며 반드시 개경까지 가고야 말겠다”

정부가 배신을 한 것이지요. 망이, 망소이는 아산과 청주 지역을 점령하는 등 크게 세력을 넓혔지만 결국 붙잡혀 감옥에 갇히고 맙니다.


명학소로 생각되는 대전시 탄방동에 있는 남선공원에는 ‘명학소 민중봉기 기념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무신들과 부패한 지역 관리들의 욕심에 저항했던 백성들의 ‘생각과 실천’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망이와 망소이의 이름을 찾아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이름을 찾아준다는 것이 진짜 이름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알 수도 없고요. 이름을 찾아준다는 것은 왜 그렇게 이름을 붙여졌는지를 알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노력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서 민주주의에 소중한 삶을 바쳤던 많은 망이와 망소이를 기억하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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