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출판사를 꾸려가는 것에 대해

정원지기의 마음

by 이재희

출판계에 들어서기 전,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 때만 해도 파주에 오는 것이 그렇게 설렐 수가 없었다. 예술가들이 산다는 헤이리 마을을 걷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얻는 것 같았고, 인적 드문 출판도시를 기웃대는 것만으로도 평범한 독자를 넘어선 것만 같았다. 물론 멀리서 바라보던 그 일이 내 일이 되면 또 그리 장밋빛일 수만은 없다. 나는 더 이상 헤이리 마을을 즐겨 찾지 않게 되었고 출판도시의 건물을 호기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출판도시는 일터가 되었고, 이제는 관광객으로서 카페를 가기보단 직장인으로서 저렴하고 맛있는 밥집을 찾아 다닌다.



그래서일까, 익숙해진다는 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운전 면허를 따고 처음 몰던 마이카의 감각도, 처음 내려 먹은 홈 에스프레소의 고소한 맛도 결국 익숙해지고 지루해지게 되면 처음의 그 느낌은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나이 듦이고, 그것이 삶이라 나는 가끔 서글프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삶이기에 나는 안도한다. 한때 강렬한 감정을 줬던 것이 이제는 나, 그 자체가 되어 더 이상 마음을 뒤흔들지 못할 때, 나는 나의 피와 살이 된 그 일상에 감사한다. 출판의 모든 게 신비롭고 설레기만 했던 그때가 금방 저물게 된 것을, 그리고 이젠 명함이 아니라 지금껏 펴낸 책이 내가 출판인임을 보여준다는 사실이 더 없이 만족스럽다.



가끔 생각한다. 출판은 정원을 가꾸는 것과 비슷하다고. 작가들의 혼이 담긴 씨앗과 모종을 빌려와 정성스레 심고 아름답게 피워내 세상에 내보이는 것. 그래서 처음엔 정원을 마음대로 가꿀 수 있는 정원지기의 권한이 아찔할 만큼 좋았다. 하지만 정원지기의 일은 정원을 ‘보기 좋게’ 가꾸는 것이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꽃과 나무를 바라보고 향을 맡는 즐거움을 안겨야 함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은 펴내고 싶은 책과 독자들이 원하는 책의 균형에 대해, 그리고 그 교집합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다. 나는 이 정원을 잘 꾸미고 싶다. 마치 지금은 내 삶이 모두 여기에 달린 것만 같다. 많은 이들이 이 정원에 씨앗을 심고 싶도록, 많은 이들이 아름답게 핀 꽃을 보러 올 수 있도록,


이 정원을 꾸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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