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소설 한번 참 잘 쓴다.’
이는 칭찬이 아니다.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 놓는 사람을 조롱하는 핀잔이다. 우리 사회에서 소설가가 아닌 사람에게 소설을 잘 쓴다는 말은 9할의 확률로 조롱이다. 그런 조롱이 가랑비처럼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적셔서일까. 사람들은 사실 아닌 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자신의 말이 팩트에 부합하는지 검열하는 습관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그런 습관이 있고, 그 습관이 강박처럼 반복될 때엔 불쾌함과 더불어 상상력이 씨가 마르는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낀다.
프랑스의 한 작가는 ‘작가란 정신병을 앓는 사람이고, 그걸 합법적으로 책으로 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맥락을 모르는 이상, 그의 워딩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 이 사회에서 작가는 정말로 특이한 존재이긴 하다. 작가들이 하는 일은 허무맹랑한 소리를 늘어놓는 것뿐이다. 쌀 한 톨, 밀가루 한 봉지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도 대부분 작가를 좋아하고, 그 행동을 응원한다. 조금은 존경하기도 한다. 참 이상하다. 황당한 얘기라면 나도 꽤나 잘 할 수 있는데…….
물론 황당하다고만 해서 소설가라 불러주는 것은 아니다. 소설가에게 요구되는 또 하나의 능력은 진실함이다. 도덕적 고결성 따위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 줄의 진실한 문장’에 집착했던 해밍웨이처럼, 작가는 알게 모르게 소설 속에 진실을 담기를 원한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그게 그렇다.
소설가는 거짓말을 말하면서도 진실을 말해야 하는 직업이라 생각한다. 엄밀하게 얘기하면 거짓말을 말하면서도 거짓말의 한계에 있는 무언가를 말해야 한다. 첫 문장을 무엇으로든 시작해도 좋다. 남아공의 백인이 되어 보자. 조선의 궁녀가 되어 보자. 간첩이 되어 보고, 미국 대통령이 되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도 안 되는 거짓말 뒤에 또다른 거짓말을 만들자. 유명한 도덕 경구(?),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게 되고 작은 거짓말쟁이가 큰 거짓말쟁이가 되는 법이니 애초부터 거짓말은 하지 말거라~’ 소설에서는 통하지 않는 말이다. 갈수록 태산, 수습 못할 거짓말을 왕창 저질러도 사람들은 즐겁다고 박수를 쳐준다. 하지만 사람이 완전히 거짓말쟁이가 아닌 이상 소설가의 거짓말도 언젠가 밑천을 드러낸다. 그의 글에는 거짓이 아닌 것, 그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 아니 생각지도 않았기에 오히려 더욱 진실한 것이 나올 것이다. 한 문단, 두 문단 정도는 거짓말로 충분히 넘어갈 수도 있으리라. 뛰어난 거짓말쟁이면 50매 100매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500매 1000매를 완전한 거짓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결국 무한히 확장할 것만 같은 거짓의 영역도 더 이상 넓혀지지 않는 때가 온다. 그러면 거꾸로 한없이 침잠해야 한다. 평소 자신의 눈빛조차 닿지 않는, 심해 같은 자신의 안에서 조용히 숨쉬는 진실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소설이 인간의 삶을 조망하고 관통하는 예술이 되려면, 사회과학에서의 ‘반증가능성’처럼 그 ‘거짓 한계의 가능성’이 존재해야 한다. 모든 소설이 예술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결국 예술로 남은 소설은 그러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