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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티나 Feb 08. 2021

글 읽기에도 타이밍!

<사진가의 기억법>_ 김규형 에세이

지난 한 주간 나는 6권의 책을 읽었다. 거의 하루에 한 권 정도 읽은 셈인데, 여러 책들 가운데 유독 나를 힘들게 했던 책이 한 권 있다. 제목은 <사진가의 기억법>이라는 김규형 사진가의 에세이 책이다. 작고 가벼운 이 책은 작가 개인이 찍은 감성적인 사진과 함께 가장 일상적인 순간들을 아름답게 기록한 김규형이란 사람의 이야기이다.   


짧은 글에 담긴 작가만의 경험에 대한 사색은 언제 읽어도 가슴에 진하게 남을 법하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이 책이 잘 읽히지 않아, 들었다 놨다를 여러 번 반복했다. 사실, 들었다 놨다를 반복하며 나는 같은 글을 여러 번 읽었기 때문에 잘 읽히지 않았다기보다는, 이 책에 젖어 들어 짧은 글들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수도 있겠다. 


<사진가의 기억법>_ 김규형 에세이


한편으론 이 책이 싫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결국은 일주일 후에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었고, 마지막 에필로그를 읽고 책을 덮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책이 싫었던 게 아니라, 읽기에도 나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 나는 적당하지 않은 타이밍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고, 적당한 타이밍이 돼서야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지난 한 주는 내게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다. 한 번의 유산을 겪은 후, 임신 준비를 다시 시작하기까지 꽤 여러 달이 지났다. 숫자로 따지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체감상 몇 년이 흐른 것만 같았다.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다시 임신에 적합한 몸이 되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 그 자체가 괴로움이었다. 희망이란 낭만도 사색할 여유도 내겐 없었다. 


에세이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개인의 의견, 감정 등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글이기 때문에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유연한 문학 형식 중에 하나다.  그러다 보니 브런치에서도 서점에서도 에세이 글이나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나 또한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좋아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짧은 글 안에 누군가의 삶을 깊이 있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가의 기억법>_ 김규형 에세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고 해서 쉽게 읽히는 것만은 아니다. 짧게 적어 내려간 단 두 줄 혹은 세 줄의 글도 이를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선 때론 많은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찰나의 순간도 기록이 될 때엔 그것을 기록한 이의 응축된 삶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지쳤던 나는 기록으로 남긴 작가의 생각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니 눈으로만 읽어 내려간 책은 마음에 남지 않았다. 읽어도 읽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에세이를 시나 소설 등에 비해 낮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다. 브런치 글도 살펴보면 일기 형식의 글이 많다는 이유로 질이 낮다며 비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나는 그런 비판을 이해할 수 없다. 생활의 글엔 어려운 단어나 화려한 미사여구를 쓰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진정성이 가득 담긴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비문 이어도 상관없다. 나는 이야기 그 자체만으로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엔 다양한 음식이 있다. 예전엔 먹어보지도 않고 먹지 않기로 마음먹은 것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그중 몇몇은 어떤 계기로 좋아하게 됐다. 물론 시도조차 해볼 필요 없는 음식도 존재한다. 그 음식도 나를 그렇게 생각할지 모른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사진가의 기억법>_김규형 에세이 중


물론, 나의 이 짧은 소견도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들이므로..


<사진가의 기억법>이란 책은 다른 의미에서 기억에 남는 책이 될 것 같다. 나에게 책 읽기에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책인 동시에 글을 지속적으로 쓸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했다. 작가 스스로 프롤로그에 밝힌 것처럼, 아주 작은 우연으로 시작된 기록이 결국엔 온전한 책으로 완성되어 기특한 짓을 했으니. 누가 알랴? 브런치에 남겨둔 나의 사소한 기록들이 언젠가 책이 되어 빛을 발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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