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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티나 Dec 24. 2020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때..

시댁에 가는 날이면, 우리 남편은 평소와 다르게 부지런해지고 나는 이상하게 게을러진다. 그 날이 오면, 우리 남편은 아침 식사도 거르고 서둘러 시댁에 갈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세월아 네월아 늦장 부리는 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주며 서둘러 준비시킨다.


우리 남편이 그러는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우리가 늦게 출발하여 점심시간을 넘겨 시댁에 도착하면, 시부모님들은 우리를 기다리시느라 식사를 제때 하실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잘 알면서도 그 날이 오면, 나는 게을러진다.


시댁에 가기로 한 날.  내가 한껏 예민해지고 게을러지는 이상한 날. 그 날이 또 찾아왔다.


나는 여느 때처럼 늦장을 부렸고, 남편은 얼른 준비하라며 나를 채근했다. 이 옷, 저 옷을 갈아입으며 나는 갑자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평소와 다르게 살이 더 쪄 보이고, 왠지 옷도 조금 작아진 것 같았다. 공들여 드라이한 머리 스타일도 갑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온갖 짜증을 부리다가 원래 출발하기로 한 시간을 훌쩍 넘겨 집을 나섰다.


서둘러 차를 모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나는 한 마디 했다.


"여보, 아무래도 내가 알레르기가 있나 봐요."

"알레르기라니? 무슨 알레르기?"

"그게.... 시댁 알레르기."


남편은 어이가 없는지 큰 소리로 웃었다. 살짝 곁눈질로 그의 표정을 보니 샐쭉하니 토라져 있었다. 그러다 문득 사랑하는 우리 남편에게 내가 너무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말은 그 사람의 얼굴이고 품성이라 했는데 내가 만들었던 말들은 아름답지 못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때였다.


미안한 마음에 남편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따뜻하게 잡아주었다. 그러자 남편이 말했다.


"손 잡아 주니깐 좋네요. 따뜻해."


그는 금세 환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 사이에 미안하다는 말은 필요 없을 때도 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2020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이 되자,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한 해가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게 싫었고, 마지막 남은 날들을 나름 즐겁게 떠나보내고 싶었다. 문제는 코로나였다. 여행을 할 수도 없고,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을 가기도 망설여졌다. 웬만하면 모이지 않는 게 미덕인 요즘, 나는 악덕을 저질렀다. 오래된 나의 유일한 친구 두 명을 집으로 초대한 것이었다.



양심의 가책을 크게 느끼면서도 먼 곳까지 와준 친구들이 고마웠고, 여자 셋이 모이는데 흔쾌히 함께 해준 우리 남편도 고마웠다. 그렇게 어렵게 4명이 우리 집에 모였다.


코로나 때문에 만남을 최대한 자제했더니, 이 날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지 3개월이나 훨씬 지난 후였다. 우아한 백수로 집에서 홀로 지낸 시간이 많았던 나는, 마음 맞는 친구들을 다시 보니 수다를 멈출 수가 없었다. 5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는 의자에서 엉덩이 한 번 떼지 않고 신나게 떠들었다. 그중에서도 대화 지분의 70% 이상은 내 차지였다. 나는 수다 삼매경을 넘어 무아지경에 이르렀다.


친구들을 보낼 때가 되니 너무 내 얘기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사람들과 소통함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경청인데, 나는 듣는 것에 매우 취약하다. 20대 때 영어 강사를 7년 정도 하면서 나는 매일 누군가의 말을 듣기만 했었다. 그 덕에 친구들을 만나면 집중을 잘 못하고, 방언 터지듯 내 말만 일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 친구들은 그걸 직업병이라 했다. 내 직업병 덕에 그들은 항상 듣기만 하는 고통을 꽤 오랜 시간 겪고 있다.


이상하게도 그 직업병은 내 친구들을 만날 때에만 나타난다. 영어 강사 시절엔 하루의 대부분을 영어만 써서 친구들을 만나면 한국말로 떠드는게 좋아서, 회사 다닐 땐 그지 같은 상사 욕을 눈치 보지 않고 실컷 할 수 있어서, 백수가 된 지금은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많아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그 변명도 다양했지만, 결론적으로 친구들과 함께한 그간의 시간 동안, 나는 거의 대부분 내 얘기만 했었던 것 같다.


문득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었다. 내 얘기만 하는 내가 너무 이기적이다. 이러다 언젠가 친구들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일었다. 내 인생에 그 두 명은 유일한 친구인데.......


친구들이 떠나고 어질러진 방을 치우다, 한 친구가 남겨놓고 간 크리스마스 카드가 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카드를 열었고, 나는 읽자마자 펑펑 울었다.


"우리는 너의 모습 이대로가 너무 좋아. 우리도 조금 있으면 25주년이야. 말이 되니? 인생의 반을 넘어, 이렇게 아름다운 관계를 지금까지 잘 유지할 수 있음이 감사한 거지. 날 친구로 믿고 함께 해줘서 항상 고맙다. 2021년엔 더 많이 웃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길 기도해. 너무 사랑한다네, 내 친구."


마음에 심은 관계의 씨앗은 내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지 간에 내 진심을 알고 언제나 활짝 펴있다.


이쯤 되니 우리 가족들이 생각난다. 전화를 걸어 엄마한테 주말에 친정에 가겠다고 얘기했다. 우리 엄마는 다짜고짜 화를 낸다. 지금이 때가 어느 때인데. 집에서 꼼짝 말고 친정엔 올 생각도 하지 말라 신다. 코로나로 어지러운 이때 괜히 이동해서 아프지 말라고.


우리 엄마는 섭섭하지도 않은가 보다. 연락도 자주 하지 않고 자주 찾아가지도 않는데. 그 덕에 내 마음의 짐은 덜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을 때,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다는 생각을 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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