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대통령은 없다.
2024년 12월 4일.
우리 꼬물이가 두 돌이 되었다.
여느 아침과 다를 바 없던 날이었다. 아침 8시쯤 되자, 꼬물이가 큰 소리로 엄마를 찾았다. 나는 꼬물이 소리에 놀라 잠에서 번쩍 깨어 한달음에 꼬물이에게 갔다. 엄마를 보자마자 꼬물이가 해맑게 웃으며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며, 꼬물이를 꼭 안고 온 얼굴에 뽀뽀를 퍼부었다.
"사랑해, 꼬물아. 오늘도 많이 많이 사랑해."
변함없이 모든 게 평화로운 아침, 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전 날 시댁에 들러 미리 꼬물이의 두 돌 생일 파티를 하고, 저녁 8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피곤해하는 꼬물이를 서둘러 재우고 집안일을 마치니, 저녁 10시가 넘었다. 몸이 너무 고단하여 얼른 자려는데, TV를 보던 남편이 나를 급하게 불렀다. 무슨 일인지 확인한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이 조금씩 굳어졌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북한 공산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
2024년 12월 3일 22시 30분, 윤석열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 룸에서 비상 계엄령을 선포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로 즐겁고 단란했던 내 하루의 끝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얼룩졌다.
도대체 왜!? 비상 계엄령이 45년 만에 다시 이 땅에 똬리를 트는가?
지금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유튜브를 통해 윤 대통령의 브리핑을 다시 보았다. 대통령의 말을 곱씹어 보니... 야당의 감사원장 및 검사 탄핵 소추 추진과 감액 예산안 단독 처리 등이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짓밟고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는 것이었다.
야당의 입법 독주로 국정이 마비된다면, 대통령은 비상 계엄령을 선포할 게 아니라 당장 야당 대표를 만나 설득하고 협의하여 국정을 정상화시키면 될 일이다.
45년 전, 비상 계엄령으로 인해 대한민국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1980년 5월, 광주 시민들은 계엄군의 총칼에 짓밟혔다.
국회에 헬기가 날아다니고, 장갑차가 서울에 입성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비상 계엄령을 해제하려는 국회의원들을 경찰이 가로막았고, 성난 시민들과 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로 들어서는 모습에 두려움은 분노로 변해있었다.
그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총을 든 군인들에게는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이 기어이 우리 국민들을 향해 총을 겨눌 것인가?"라며 소리치고 싶었고, 계엄령 해제를 위해 국회에 들어서던 국회의원들에게는 시원하게 앞길을 뚫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곤히 자는 아기를 혼자 두고 나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새벽 1시쯤 국회 본회의에서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계엄해제요구안이 의결되자, 끓어오르던 분노는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계엄해제 담화는 3시간 반이 지난 새벽 4시에나 나왔다. 마지막까지 그에게는 품위가 없었다. 지금 대한민국에 대통령은 없다. 나는 결국 새벽까지 잠을 설치고 아침에나 잠깐 눈을 붙였다.
꼬물이가 엄마, 아빠가 준비한 케이크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탱글한 아기의 볼에 뽀뽀를 하며 나는 나긋하게 말했다.
"우리 꼬물이는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어. 존재자체만으로도 우리 꼬물이는 특별해."
비상 계엄령 선포로 악몽이 될 뻔한 꼬물이의 두 돌 생일날, 나는 다짐했다. 우리 아기가 살아갈 세상에는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