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2 (12m 0d)
어제 돌잔치했다. 색동저고리 돌복을 입은 양갱이는 무척이나 귀여웠다. 돌잡이는 축구공이었다. 운동선수될 거 같진 않고 운동 좋아해서 건강했으면 좋겠다. 양갱이는 첫 번째 생일 파티 내내 잘 웃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다. 모든 사람들이 본인을 바라보고 손뼉 쳐주는 광경이 신기한 듯 재밌어라 했다. 순조롭게 잘 끝났다.
돌잔치는 집에서 했다. 양갱이 7개월쯤부터 여기저기 눈알 빠지게 알아보다가 집에서 하기로 하면서 모든 검색을 관두니 홀가분해서 좋았다. 최대한 미룰 수 있게 되었다. 괜찮은 곳은 3개월 전에 미리 예약해 놔야 하기 때문에 최소한 9개월에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다. 장소뿐 아니라 돌복, 돌상업체, 스냅사진, 부모 한복이랑 메이크업까지 예약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기에 집에서 하기로 하자마자 폰을 냅다 던졌다.
결혼식도 코로나 때문이기도 했지만, 직계가족끼리만 모여 레스토랑 룸에서 단촐하게 치렀었다. 돌잔치를 나의 결혼식보다 크게 할 생각은 없었다. 심지어 더 작게 시댁과 친정 따로 하기로 했다. 사돈끼리 워낙 만날 일이 없다 보니, 앉을자리도 협소한 집에서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기 위해 그냥 따로 하기로 했다. 알아보니 그렇게 하는 집도 여럿 있다더라.
집에서 하는 돌잔치인 만큼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특별하고 재밌게 하고 싶었다. 나의 결혼식처럼 말이다. 돌상대여조차 하지 않고 하나하나 내가 직접 꾸며보기로 했다.
1. 배경 장식
여름에 쓰던 삼베 이불을 벽에 걸었다. 남편은 잘못하면 거지 같을 수 있다고 우려했지만, 생각보다 고급졌다. 병풍 대신 한시와 첫돌을 직접 써서 걸었다. 한시는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라는 노래 가사 일부를 한시로 지었다. chat gpt와 네이버 검색의 도움을 얻었지만, 대학시절 명심보감 한 권을 외우면서 익힌 한문을 기반으로 직접 지었다. 남편은 어릴 때부터 서예를 오랫동안 배운 덕분에 꽤나 잘 썼다. 먹이랑 붓이 몇 년째 쓰지도 않고 자리만 차지해서 버리고 싶었는데, 이제 버리자는 말 하기 힘들어졌다. 목화는 아버님이 횡성에서 키우셨던 것을 가져와서 가지치기하니 제법 멋있어졌다. 가지치기하면서 나온 목화씨는 당근으로 무려 4명에게 나눔 했다.
2. 돌상
식탁보는 커튼, 테이블 러너는 목도리, 촛대는 크리스털 와인잔, 그릇은 국그릇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접시를 얹었다. 꽃은 동네 꽃집에서 꽃만 사 와서 도자기 그릇에 대충 꽂았다. 강한 생명력을 뜻하는 미나리는 결혼식 때 썼던 청실홍실로 묶었다. 과일은 현대백화점까지 가서 저탄소 친환경으로만 샀다. 작은 형님이 사주신 케이크와 돌잡이까지 놔두니 식탁이 꽉 찼다.
3. 돌복
당근에서 샀다. 전통 색동저고리를 입히고 싶었는데 우리 동네에서 나오지 않아 서울 여기저기를 뒤졌다. 마침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이 나와 염창동 사는 친구한테 부탁해서 샀다. 8만 원 정도 하는데 중고 돌복치곤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대여하는 곳은 5만 원이 넘고 친정 쪽 돌잔치와 곧 있을 설날까지 입힌다는 생각으로 사버렸다. 더럽혀질까 전전긍긍할 필요 없이 편하게 입힐 수 있어서 사길 잘했다 싶었다.
4. 식순
결혼식은 몇 번 가봐서 알지만, 돌잔치는 갈 일이 거의 없어서 어떤 식순으로 진행하는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냥 돌잡이 하고 사진 찍으면 되지 않나 하다가 아버님께 ‘첫돌‘을 써달라고 해서 벽에 거는 이벤트를 식순에 넣기로 했다. 그런데 남편이 미리 아버님에 말씀드려놓지 않는 바람에 남편이 썼다. 아버님이 안 쓰신 걸로 봐선 친정 돌잔치에도 우리 아빤 안 쓰실 거 같다. 돌잔치를 크게 하면 사회자가 있기도 했지만 집에서 하는 돌잔치라 간단하게 끝내려 했는데 사진촬영기사님이 간단히 진행해 주셨다. 덕분에 다들 생일축하 노래도 부르고 박수도 치고 마지막 인사까지 깔끔했다.
5. 스냅촬영
다른 건 몰라도 사진은 잘 남기고 싶었다. 그래서 스냅촬영을 예약했다. ‘마이준스냅’! 마이준스냅은 4년 전 결혼식을 찍어주셨던 업체이다. 결혼식을 룸에서 하는 바람에 가족사진 촬영할 장소가 없었는데 가구를 직접 옮겨서 자리를 마련해 주셨었다. 나중에 결혼식 사진을 보면 언제 여기 계셨었지 할 만큼 다양한 각도에서 찍어주셔서 인상 깊었었다. 이런 인연으로 이번에도 부탁드렸는데, 돌잔치 진행을 해주시랴 양갱이 시선 잡으랴 스냅사진 찍으시랴 역시나 알차게 해 주셨다. 가장 감사한 건 양갱이가 복건(돌복 모자)을 돌잔치 내내 쓰게 했다는 것이다. 2주 동안 매일 연습하다 중간에 포기했었는데, 떡뻥 하나 손에 쥐여주면 끝나는 거였다니.. 촬영기사님께 무한 감사드린다. 복건으로 돌잔치가 더욱 완벽해졌다.
6. 식사
식사는 외식. 집에서 차려 먹기로 했다가 돌잔치가 다가오면서 점점 이건 아니다 싶었다. 집에서 잔칫상 차리면 아무리 사서 먹는다 해도 나와 남편은 종종걸음 치느라 전혀 파티를 즐길 수 없을 거 같았다. 거의 막판에 외식으로 변경했는데, 하고 보니 집에서 먹었으면 큰일 날뻔했다. 돌잔치만으로도 우리 둘 다 떡실신이 되어 버렸다.
7. 부모 옷과 메이크업
부모까지 한복 입으면 아기가 튀지 않겠다는 생각에 우리는 집에 있는 옷으로 깔끔하게 입기로 했다. 실은 메이크업이 문제였다. 화장 안 한지 오래인 데다 화장품을 다 버려서 아무것도 없었다. 스냅촬영을 하니 안 할 순 없었다. 지인들에게 빌리려 했는데, 내 지인들마저 메이크업을 하지 않으니.. 참 유유상종이다. 결국 올리브영에서 최소한으로 샀다. 어차피 친정 돌잔치 때도 쓰긴 하겠지만, 그 뒤로 얼마나 쓸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까워서라도 약속을 잡아야 하나.
8. 웰컴기프트
다른 데 비용을 아끼고 웰컴 기프트에 돈을 좀 썼다. 현대백화점에서 산 올리브오일과 발사믹식초. 손님이 많지도 않아서도 있지만, 양갱이 키우면서 받은 것에 비하면 한참 약소할 따름이다.
또다시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우리만의 잔치를 치렀다. 그나저나 그렇게 힘들게 준비한 건 아닌데, 왜 이렇게 녹초가 되었을까. 손님들이 가시고 나서 우리 셋은 뻗어 5시 반까지 잤다. 덕분에 양갱이는 10시 되어서야 밤잠에 들었다. 나는 목이 붓고 몸이 으슬으슬한 데다 출산 때 아팠던 사타구니가 다시 아프기까지 하다. 오늘이 정작 양갱이 생일인데 어린이집에 맡기고 쉬었다.
작년 오늘 나는 양갱이를 낳고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 모유수유하겠다며 모자 동실하면서 생고생하던 때가 생각난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대도 모자 동실과 모유수유 똑같이 할 거 같다. 더 열심히. ㅎㅎ 아직 정신 못 차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