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어린이집에서

2025 12.24 (12m 2d)

by 슈앙

양갱이 태어나기 전까지 남편과 꽤 소박하고 알차게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같이 케이크 만들어서 일출 보러 가기도 하고 집에서 와인과 치즈로 간단히 보내는 정도였다. 둘 다 사람 북적이는 곳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은 데다 기념일을 잘 챙기는 스타일도 아니다. 게다가 나는 물건 늘리는 걸 싫어하고 큰 불편함을 못 느끼는 편이라 "선물 뭐 갖고 싶냐"라고 물으면 항상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제발 날 위해 뭘 사질 마"라며 남편을 면박 주기까지 했다. 집에서 조용하고 소박하게 담소 나누는 것으로 충분했고 우리는 매년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보냈다.


작년 크리스마스이브는 양갱이 낳고 이틀 뒤였다, 산후조리원 가지 않고 호기롭게 생후 2일차 신생아 데리고 집으로 왔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다시 하지 않을 선택이다. 당시는 한창 고군분투하던 때라 크리스마스고 뭐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3kg됴 안되는 신생아를 어떻게든 무사히 살려야 하는 것이 목표였다. 크리스마스는 그저 남의 생일일 뿐이었다.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고군분투 현장



올해는 양갱이와 우리 부부가 제정신으로 맞이한 첫 번째 크리스마스다. 하지만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다. 돌잔치 한바탕 치르고 나니 감기 몸살 걸리는 바람에 또 그냥 지나갈 판이었다.


그런데 감사하옵게도 어린이집에서 양갱이와 나를 초대해 줬다. 양갱이는 시간제보육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한 나절정도만 맡기고 있어서 정식 입소한 것은 아니다. 매번 잘 돌봐주셔서 감사한 마음에 과일을 몇 번 드렸더니 이렇게 우리도 챙겨주셨다. 잘 됐다 싶어 거절하지 않았다. 부모와 함께 하는 이벤트라 우선 9시에 맡기고 있다가 10시 반에 나도 함께 했다.


어린이집 크리스마스는 매우 알찼다. 10시 반에 모인 부모들은 15분 동안 다양한 에센스오일로 아로마 오일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런 뒤, 요정복을 입힌 아기와 함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다같이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만들었다. 잠깐 방에서 놀다가 중국집에서 시킨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먹었다. 12시 넘어 산타할아버지가 오셔서 선물을 나눠주고, 1시까지 일정을 마치면 다들 낮잠 타임에 들어가는 것이다. 양갱이는 11시 반부터 졸려하다가 12시엔 눈이 반쯤 감겨서 산타 할아버지는 못 보고 나왔다. 어차피 기억도 못 할 거 잠이 더 중요했다.

애보다 신난 엄마

정식 원아들은 총 8명이라 소규모 어린이집이었지만, 어른들까지 모이니 꽉 차고 북적북적했다. 아이들도 엄마 아빠가 와서 좋은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우다다다 뛰어다니고 엎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지난 결혼 생활 내내 사람 많고 시끄러운 데는 피해서 다녔는데 지금 그 한복펀에서 양갱이와 즐겁게 놀고 있는 내가 새삼스러웠다. 아이들 중에 못 걷는 애는 양갱이 뿐이라 양갱 이만 방 안에서 계속 있었다. 좀 안쓰러웠지만 다른 엄마들이 워낙 잘 놀아줘서 양갱이는 너무 즐거워했다.


처음으로 어린이집 엄마들과 정식 인사도 나눴다. 지난여름에 포도 나눔할 때 만났던 엄마들도 있었다. 오며 가며 마주치면서 인사를 나눈 터라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다들 양갱이보다 몇 개월씩 빠른 아이들이라 언제 젖병 뗐는지 등도 물어볼 수 있었다. 평소에도 알고 지내면 좋겠다. 어린이집에서 선물도 꽤 많이 챙겨줬다. 유아책이랑 점퍼, 목도리까지 한 짐이었다. 좋은 마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 주시는데 물건 늘리기 싫다고 어찌 말하나. 주는 대로 감사히 다 받아왔다. 안그래도 전집 사야 하나 고민 중인데 책을 주시니 요건 특히 더 감사하다.


그나저나 산타할아버지 못 본지 참 오래됐다. 내가 보고 싶다. 올해 몇 번 울었는데 선물 안 주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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