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6 (14m 9d)
오늘은 아무런 준비 없이 맞이한 결혼기념일. 양갱이 낳고 첫 결혼기념일엔 지나고 나서야 알았는데 그래도 이번엔 미리 알아채긴 했다.
나만.
본인의 먹는 것과 자는 것엔 sensitive 하지만 기념일만큼은 전혀 세심하지 않은 남편은 또 잊었다. 미리 언지했는데도 오늘 오전에 다시 얘기해줘야 했다. 육아에 신경 쓰기도 벅차 이런 일로 감정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점심은 밖에서 먹고 꽃을 사달라고 명확하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수원 외곽이라 그럴듯한 레스토랑이 없는 동네지만 그나마라도 분위기를 조금 내볼 수 있는 파스타집에 갔다. 하지만 분위기는 무슨.. 양갱이 밥 먹이느라 시그니처 파스타가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이유식 시작한 후론 양갱이 먹이느라 항상 식은 밥을 먹는다. 한 시간 기다린 맛집에 간들 음미할 여유가 없다. 남편은 따뜻한 상태에서 먹지만 중간에 나랑 교대하니 먹다 말게 된다. 그러다 양갱이가 다 먹고 몸을 비틀기 시작하면 막판에 잔반 처리하듯 허겁지겁 해치운다. 그동안 나는 바닥에 흘린 이유식을 엎드려 치운다. 덩치 큰 남편이 배를 접고 등을 말아 떨어진 밥풀을 줍는 것보단 체구 작은 내가 수구리는 게 덜 이상해 보인다. 우린 배고픈 상태에서 먹기 시작했지만 배가 찼는지 느껴볼 새가 없다.
예전에 양갱이가 6개월 즈음이었던가. 아직은 여유 있게 식사를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인도음식점에 갔었는데 옆 테이블에서 돌쯤 된 아기와 아기 엄마, 할머니가 식사하고 있었다. 바닥에는 이유식 거리가 떨어져 난장판이었다. 처음엔 너무 심하게 지저분해서 놀랐고 그다음엔 다른 어떤 테이블 바닥보다도 깔끔하게 뒤처리해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밖에서까지 자기주도식하다니 좀 아니지 않나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 보니 그냥 떠먹이기만 해도 이렇게 밥풀이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양갱이가 요즘 잘 먹는다. 이유식이건 간식이건 다 잘 먹어서 식은 밥 먹고 떨어진 밥풀을 주워도 속상하지 않다. 언제 또 밥태기가 올지 모르니 지금 많이 먹여서 배를 키워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꽃집에 들렀다. 굳이 같이 가서 직접 꽃을 고르란다. 꽃 받는 사람이 꽃 고르는 건 아니지 않나? 같이 갔지만 나는 또 굳이 남편에게 골라달라고 했다. 수학 강사인 남편에게 결혼기념일은 꽃과 외식을 공식처럼 외우라고 가르쳤다. 다음 결혼기념일 문제는 틀리지 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