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3.9 (14m 15d)
5년 전쯤, 에콰도르 여행 중에 위도 0 적도를 밟으러 갔다. 그곳에 세워진 적도탑(미타드 델 문도)에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갑자기 덜컹거리더니 엘리베이터가 서버렸고 15분 동안 갇혔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났었다. 다행히 혼자가 아니었다. 페루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페루 가족 중에 작은 딸이 ‘아미’였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굉장히 반가워했다. 난 BTS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여하튼, 그 15분 동안 갇힌 이후로 고소공포증이 생겨버렸다. 그 이후로 엘리베이터 탈 때마다 긴장하게 되었다. 특히 바깥이 보이는 엘리베이터에서는 감히 밖을 내다보지 못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었다. 경미한 트라우마일 뿐이라 생각했다.
양갱이 가지기 전, 일본에서 관람차를 탔다. 타자마자 긴장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안전바만 꼭 쥐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놀랐다. 손에 땀이 났다.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다. 나는 스카이다이빙도 하고 경비행기도 타고 높이에 대한 겁은 없었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경험하는 것을 좋아해서 부모님은 제발 어디 가서 객기 좀 부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실 정도였다. 이런 내가 지금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관람차를 못 타다니 충격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어린이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을 무서워서 못 탄다는 것이다.
이제 양갱이가 걷기 시작하면서 동네 놀이터에서 놀러 갔다. 당연히 미끄럼틀 타러 올라갔다. 요즘 놀이터는 너무 안전해서 문제라는 쇼츠를 본 적이 있다. 동네 놀이터에 있는 미끄럼틀도 세상 안전한 모양이다. 모난데 하나 없이 둥글둥글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원통이라 밖으로 떨어질 위험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 안전한 미끄럼틀마저도 겁이 나서 못 타겠더라. 옆에서 보고 있던 엄마가 양갱이 안고 미끄럼틀 타주었다. 그렇게 양갱이는 다른 엄마 품에서 첫 미끄럼틀을 탔다.
나도 해주고 싶었지만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양갱이는 미끄럼틀 탄 기억이 좋았는지, 미끄럼틀 타는 흉내를 냈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며칠 뒤, 다시 놀이터로 갔다. 양갱이와 용기 내서 미끄럼틀 탔다. ‘으악!’ 소리 내고 싶었지만, 양갱이가 내 비명에 놀랄까 봐 외소리만 내고 말았다. 그래도 몇 번 타니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반복 학습으로 치유가 되는 수준이라니 다행이었다. (생각만 해도 지금도 두근거린다)
옆에 조금 더 높고 원통형이 아닌 나선형 미끄럼틀이 있었다. 양갱이가 타고 싶어라 했다. 왠지 밖으로 나가떨어질 거 같아 위험해 보였다. 주춤하던 찰나에 한 7살짜리 애가 못 타고 망설이는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거 무섭니? 네가 한 번 타볼래? 네가 타면 나도 탈 수 있을 거 같아’ 7살짜리 여자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내 앞을 지나 쑤욱~하고 타고 내려갔다. 7살짜리 애도 타는데, 위험하지 않겠지?라는 생각에 다시 용기 냈다. 겨우 해냈지만, 또 한 번 더 탈 용기는 내지 못하고 처음에 탔던 둥근 미끄럼틀만 계속 탔다.
매일 놀이터 미끄럼틀은 타지 못 할 거 같아 장난감 도서관에서 미끄럼틀을 빌렸다. 양갱이가 정말 좋아했다. 처음에는 내려오면서 머리 쿵하더니 점점 허리에 힘을 주는 법을 깨쳐 허리 세운 채 미끄럼틀 탔다. 하루이틀 열심히 연습하더니 이제 혼자 올라가서 혼자 내려온다. 미끄럼틀 위에서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양갱아~ 너는 엄마처럼 쓸데없는 트라우마에 갇혀 있지 말고 재미나고 멋진 놀이기구 많이 타자~ 음.. 우선 같이 타야 할 텐데.. 걱정이다. 놀이기구 함께 타는 건 남편의 할 일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