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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앙 Apr 23. 2024

전동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

남편이 결혼 후 못 하는 것 2

 기계 좋아하는 남편은 아마 OralB에서 전동 칫솔 나오자마자 샀을 것이다. 생활 용품 중에 전기 쓰는 게 있다면 그게 휴지라도 사용할 사람이다. 처음 남편 집에 놀러 갔을 때 벽과 바닥에 전깃줄이 거미줄처럼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 생생하다.


 전동 칫솔모 역시 3개월마다 바꿔야 하는 플라스틱 소모품인데 거기다 전기까지 쓰니 환경에 매우 저해되는 대표 용품이라고 생각했다. 충전기, 전용 케이스, 칫솔모 세트 등 전동 칫솔 하나 딸려 오는 물건이 너무 많다. 습한 화장실에 있으니 손잡이는 물때가 껴서 꼬질꼬질하다. 여행할 때 번거롭게 무거운 전동칫솔 챙겨가지 않 케이스는 사용할 일이 다. 혹시나 쓸 일 있을까 봐 버리지도 못한다. 건전지 사용가능해서 충전기 필요없으니 자리만 또 차지하는 물건 추가다.


  당장 대나무 칫솔로 바꾸자고 했다. 남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힘을 주지 않아도 편하게 이가 잘 닦인다며 전동 칫솔의 장점을 이것저것 나열했다. 나는 와닿지 않는 말이 길어지면 눈을 피하고 딴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그때도 그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눈치가 빠른 편은 남은 전동 칫솔모까지만 쓰고 대나무 칫솔로 바꾸겠다고 했다. 극적 타결!!


 수개월 뒤, 마지막 칫솔모를 전동 칫솔에 끼우며 남편은 '힝~ 하나 남았엉~'라며 곧 다가올 전동 칫솔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나는 그런 그의 마음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화장실 물건이 줄어드는 것에 흡족해하기 바빴다. '도대체 몇 개 물건이 줄어드는 거야~ :) 하나 둘 셋.. 아싸~~'


 전동 칫솔뿐이겠는가. 내가 퇴출한 남편 작은 전자 제품은 폼클렌징 거품기, 식빵 기계, 자동개폐기 휴지통, 자동 후추/소금 그라인더, 피지 흡입기 등등이다. 당장 생각나는 게 이 정도니 당근 판매 기록을 뒤지면 더 나올 것 같다. 혼하자마자 없애진 않았다. 남편이 열심히 검색해서 산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들과의 헤어짐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최소 몇 개월동안 그 플라스틱 기계들이 주는 편리함을 다시 한번 충분히 느끼고 이 플라스틱 기계를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유사품과 비교하며 결정한 너였는지에 대해 되짚는 시간을 가졌다.


 휴지통과 그라인더는 고장 날 때까지 썼다. 그러는 동안 나도 리함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휴지통은 건들지 않아도 센서만으로 입구가 열리니 위생적이고 후추/소금 그인더는 한 손으로 뒤집기만 하면 자동으로 갈아져 나오니 요리하기 수월해진다. 래도 기가 흐르는 기계인지라 물로 깨끗하게 씻을 수도 없고 녹이 스니 건강에 좋을 리가 없다. 남편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한 채 나만의 논리로 결국 하나씩 하나씩 처분해 나갔다.


 남편은 대나무 칫솔을 사용한 지 2년이 넘었다. 전기가 돌돌돌 닦아주는 편리함에서 벗어나 스스로 이를 닦는 칫솔질에 익숙해졌다. 휴지통은 직접 뚜껑을 열어야 하고, 후추랑 소금은 나무 그라인더에 넣어 두 손으로 봑봑 갈면서 요리한다. (참고로 발로 뚜껑 여는 휴지통은 죄다 플라스틱이라 그나마의 편리함도 포기했다.)


 활 속 은 전자 제품을 처분했지만.. 남편은 미니풍속기, 광택 그라인더기, 납땜기 등 왜 필요한지 알 수 없는 작은 전자 제품을 여전히 산다. 수납장 어딘가에 숨겨놓고 혼자 이렇게 생각하겠지..

"허락을 구하기보다 용서를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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