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의 친구라는 허름한 사내
월드컵 경기날 술집에서 옆자리의 사내가 말을 걸어온다. 메시의 친구라며.
2022년은 카타르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해였다. 작은 술집에 설치된 TV에는 아르헨티나 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가 방영되고 있었다. 동식은 다찌석에 앉아 치킨 가라아게와 맥주를 시키며 경기를 보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전반 초반부터 일방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몰아치고 있었다. 슈팅이 골문을 스쳐갈 때마다 손님들의 “오, 와” 식의 감탄사가 이어졌다. 지구촌 축제 다웠다.
“메시가 이번이 마지막 월드컵이라더만, Last dance라나 뭐래나.”
“그래도 브라질만 못하지. 메시는 이제 지는 별이고 네이마르는 뜨는 별이고.”
이번 대회 우승팀을 예측하는가 하면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등의 월드컵 얘기들만 들려왔다. 동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경기에 시선을 떼지 않고 유리잔에 맥주를 가득 부은 뒤 연거푸 마실 따름이었다. 축구를 보고 있는 건지 그저 시선 둘 곳이 필요했던 건지. 그때, 바로 옆에 앉은 허름한 차림의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언뜻 보기엔 동식과 동년배인 것처럼 보였다.
“저기, 리오넬 메시가 내 친구예요.”
“네?”
“아, 내가 아주 어릴 적 아르헨티나에 축구 유학을 다녀왔거든. 그때 메시랑 같이 볼을 찼어요.”
사내는 대뜸 TV 속에 저 메시가 자기 친구라고 말했다. 동식은 웬 미친 사람인가 싶었지만 한번 속아보자는 생각으로 질문을 던졌다.
“메시랑은 어떻게 친해지게 되셨는데요?”
사내는 주먹을 입에 댄 뒤 헛기침을 한번 하고선 말했다.
“메시가 새싹부터 기술은 좋았지만 요령이 없었죠. 그 요령을 내가 좀 알려줬어요.”
동식은 무슨 개소리를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내뱉나 싶었지만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수비수는 단순히 다리만 뻗지 않거든, 몸을 들이밀며 파울을 하고서라도 볼을 뺏는단 말이에요. 메시는 특히나 키가 작고 왜소했기 때문에 덩치 큰 또래 애들은 작은 소년이 자신을 농락하는 걸 참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소년 메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어요.”
제법 그럴듯한 설정에 동식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사내는 자기 앞에 놓인 빈 소주잔을 소주로 가득 채운 뒤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요즘은 축구 유학을 유럽으로 많이 가지만 그때는 유럽도 생소했고, 마라도나를 좋아했던 우리 아버지는 아르헨티나로 절 보냈죠.”
회상에 잠긴 듯 사내는 잠깐 뜸을 들이고 말을 이어갔다.
“그때는 인종차별이 더 심할 때라, 아르헨티나에서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날 무시했지. 하지만 나도 성격이 어렸을 때부터 지랄 맞은편이라 무시한다 싶으면 덤벼 들었죠. 어릴 때 일찍 키가 큰 덕에 몸싸움은 잘했거든요. 꽤.”
“메시는 동갑내기였어요. 매우 수줍은 친구였고, 동양인이라고 해서 날 무시하지도 않았죠. 그래서 내가 메시에게 들이댔어요. 친구 하자고. 네가 갖지 못한 부분을 내가 채워주겠다고.”
웃음기 없이 내뱉는 사내의 말속에서 동식은 진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건 사내인데 동식의 목도 타는 듯하여 자신의 빈 맥줏잔을 채우고선 꿀꺽 삼켰다. TV 속 월드컵 경기는 1대 0으로 아르헨티나가 리드하고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무난하게 승리할 것 같았다.
“90년 대에 황선홍 선수가 계곡에서 물회오리 슛 연습했다는 기사 본 적 있죠? 우리 어릴 적은 지금처럼 과학적이진 않았어요. 그래서 메시랑 한국식 특훈을 같이 했죠.”
“어떤 훈련을 시켰는데요?”
“커다란 나무에 몸통 박치기 500번, 풀파워로.”
동식은 입 안에 머금은 맥주를 뿜을 뻔했다. 메시랑 친구라는 게 진짜일 수도 있겠다고 믿을 뻔한 자신에게 ‘등신아, 등신아’ 나무라며 겉으로는 옅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뭐, 이 얘기를 몇몇에게 들려주면 코웃음 치더라고요. 판단은 본인 몫이지만 사실이랍니다. 물론 나 덕분에 지금의 메시가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때 메시에겐 내가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때는...”
사내는 말을 흐렸다. 아르헨티나의 경기는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사내는 얼마 남지 않은 소주를 잔에 가득 채웠다. 동식은 적막을 깨고자 사내에게 물었다.
“메시가 엄청나게 성공한 축구 선수가 됐는데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는 스페인으로 떠났고, 나도 큰 부상을 당해 축구를 접어야 했어요. 지금처럼 sns도 발달하지 않았을 때라 아주 자연스럽게 멀어졌죠. 지금 메시에겐 나는 그저 어릴 적 잠시 머물렀던 동양인 아무개겠죠?”
“솔직히 배 아팠던 적은 없으세요?”
사내는 막잔을 비우며 냉소인지 실소인지 모를 웃음을 짓고선 말했다.
“너무 크게 성공해서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니까 뭐랄까 경외심이랄까.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메시는 그런 것 같아요. 추억 속 예쁜 동화. 정작 배가 아파오는 순간은..”
사내는 말을 더 잇지 않고 의자에 걸쳐놓았던 외투를 챙기고선 동식에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를 떠났다. 경기는 종료를 앞두고 있었고 사우디가 역전해 2대 1로 이기고 있었다.
‘축구공은 둥글다. 인생도 둥글다.’
동식은 불현듯 떠오른 이 인생 진리를 되뇌었다.
‘앞으로도 주변 누군가는 승진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겠지. 나는 눈앞에서 올려다보기만 하겠지.’
‘눈앞에 보이지만 않으면 아무렇지 않을 텐데..’
경기는 사우디의 역전승으로 끝났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털썩 앉아 망연자실한 채로 얼싸안는 사우디 선수들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동식은 계산을 하고 술집을 나왔다. 동식의 폰에 진동이 울렸다. 인스타그램의 DM이였다. 한 때는 친했지만 얼굴 안 본 지 몇 년이 된 여자 후배의 연락이었다. 한 때는 졸졸졸 나를 잘 따랐던 후배였다. 지금은 인스타그램 스토리나 게시글로 소식을 알고 지낼 뿐이었다. 그녀의 최근 게시글엔 새로 산 BMW를 세차하는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오빠 잘 지내지? 다름 아니라, 나 이번에 결혼해.”
‘축하해’ 한마디를 동식은 쉽게 보낼 수 없었다. 왠지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