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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츠네 Mar 05. 2023

작가미상

작가로서의 활동을 꿈꾸고 브런치를 시작한지 어언 2년인데, 브런치 북 하나를 내놓으니 글쓰기의 동기부여 자체가 떨어졌었다. 그래서인지 브런치에 접속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고 어느새 유령앱이 되어 있었다. 왜일까? 우선, 나는 공무원이다. 보수는 크지 않지만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안정적인 직업이다. 내 친구들도 9할이 공무원이다. 대학교 전공 자체가 행정학과였기에 직렬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거진 공무원이다. 그래서 나도 공무원이다, 자연스럽게도. 안정성에 기대여서였을까.


공무원의 삶은 대게 교과서처럼 흘러간다. 적당한 나이에 공무원끼리 만나 백년가약을 맺고 딩크족보다는 자식을 낳으며 그리고 육아휴직도 적절히 쓰며 가정으로서 일원이 되어간다. 나의 존재를 잊고 가족의 안정성에 편입되고자 하는 친구들이 많다. 하루가 똑같이 굴러가는 햄스터지만 같이 굴러갈 수 있는 햄스터만 있다면 괜찮다는 마음. '그래도 괜찮은 걸까'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에와서야 함께 챗바퀴를 굴려갈 수 있다는 동반자가 있다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축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라도 대체될 수 있는 기계의 부품이 되고 싶진 않아서 그래서 작가로서의 꿈을 열망했다. 스스로 벽에 부딪히며 한계에 맞설 수 있는 싸움이기에 제법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만의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라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다. 혼자이기에 긴 축의 시간의 연장 선상에서 희미해지는 열망들 그리고 주변에 함께 있을 때의 행복을 엿보면서 점차 불안해져 갔다. 나 괜찮은 걸까?


최근에 한 사람을 만났다. 연인 관계까지 이어지지도 않았지만 한 사람을 이렇게 좋아할 수도 있구나라는 감정을 느꼈다. 작년에 이별을 겪고도 이런 감정은 아니었는데, 시간의 깊이와는 별개로 빠져드는 것이 사람 마음인가보다. 나는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나로서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누군가에게 기대어서 또는 직업에 기대어서만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 걸까. 안정성이 주는 안일함이 나를 의존적으로 이끌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사랑을 의식적으로 갈구하는 것은 아닐까.


작년에 부산시에서 주관하는 청년 책만들기 수업을 들었다. 15명의 동기생 중에서 5명 정도가 자신의 책을 출간했고 어떤 이는 강연까지 다니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내가 바라던 삶이 그런 것이었는데 선수를 빼앗긴 느낌이랄까. 하지만 분통하기에는 내가 노력하고자 한 바가 전혀 없다. 올 한해는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 역주행하는 윤하의 사건의 지평선처럼 내 삶의 지평선을 넓혀갈 수 있는 한해를 보내고 싶다. 그래서 지금의 이 공허함도 스스로 빈 곳을 채워갈 수 있길 소망한다.


사랑, 서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사건임을 나날이 깨닫는다.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을 소망한다. 웃게 해주고 싶고 잘 웃어주는 당신. 나의 삶을 열심히 살다보면 당신도 웃고 나도 웃고 있는 그런 순간이 자연스럽게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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