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말 7초 하지와 소서 사이, 도로의 아지랑이가 꿀렁이고 하늘엔 먹구름 가득 비가 올 듯 말 듯 한 요즘이다. 여름은 무엇인가. 편의점 맥주를 불티나게 발주하고, 피리 부는 소년이 되어 해수욕장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존재. 누군가에겐 초록 외피속새빨간 수박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모기와 날파리일 수도 있다. 나의 여름은 청춘의 일기장. 그때라서 무모했고 용감했던 작은 기록 하나를 끄집어 볼까 한다.
10여 년 전 딱 이 맘 때쯤이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여름 방학을 맞이해 동기들과 계곡을 다녀왔다. 2학기 군입대를 앞두고 서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나를 위해 내 고향 포항으로 친구들이 와주었다. 남자 넷과 여자 둘. 그들은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달려 포항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부산에서 한가득 장을 보고 박스를 테이핑으로 칭칭 감아 그 짐을 이고 포항까지 온 것 아닌가. 포항은 경북에서 가장 큰 도시인데 대형마트조차 없는 논두렁 밭 시골처럼 생각했나 보다. 그런데 우리의 목적지는 터미널에서도 버스와 택시를 타고 1시간이나 더 깊게 들어가야 하는 산골짜기 계곡이었다. 심지어 부모님에게서 빌려 온 텐트까지 있어 모두의 손이 놀아나질 않았다. 오 마이 갓.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계곡은 깊고 맑았다. 그간의 고생은 잊어버린 채 어푸어푸 물놀이에 흠뻑 빠져있었는데 해질녘이 가까워지니 계곡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분명 취사가 가능한 곳이었는데 어두워질 때쯤엔 그 산골짜기 계곡엔 덩그러니 우리만 남게 된 것이 아닌가. 되돌아갈 체력도 의지도 수단도 아무것도 없었던 우리는 그저 부모님에게 빌려 온 텐트를 치고 버너 위에 냄비를 올려 저녁 식사 준비를 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까만 어둠이 주변을 정복했고 날파리 군단이 냄비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우리 중 누군가는 냄비 속 김치찌개를 한술 뜰 때 날파리를 세트로 먹은 이도 있으리라. 너무나 어두워 화장실을 갈 땐 전우조처럼 2인 1조로 움직였다. 불편하게 저녁을 먹고, 화장실을 다니고, 잠을 잤지만 제일 많이 웃고 행복했던, 그래서 지금도 종종 떠오르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여서 순수했고 무모했고 용감했던 시간이다. 특히 함께 했던 여자 둘에겐 지금도 경의를 표한다.
시간은 흐른다. 졸업을 했고 취업을 했고 그때의 누군가는 소식이 끊겼다. 두 다리 대신 움직일 네 바퀴의 차가 생겼고 헐렁했던 지갑이 제법 두툼해졌다. 그때 그런 여행은 억지가 아니고서야 이제 와선 상상할 수 없다. 그런데 왜일까. 그때의 계곡이, 그때의 김치찌개가, 그때의 무모했던 우리가, 그때의 청춘이 그리운 것은.. 무모함은 나쁘지만은 않다. 청춘은 무모하기 때문에 우리를 뛰게 만든다. 때론 길을 잃기도 하면서 수많은 갈래길을 지나온다. 오히려 무모함이야말로 청춘의 엔진이 아닐까.
여름이 왔다. 청춘의 일기장을 속속 꺼내보고 싶은 계절. 나의 일기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때를 기억하며 뜨거움으로 엔진을 예열한다. 왠지 이 일기장은 죽을 때까지 덮고 싶지 않다. 살아 숨 쉬는 날까지 긴 공백 속에서라도 간헐적으로 기록하고 싶다. 생명이 역동하는 계절. 나로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계절. 나의 청춘은 뜨거운 여름마다 앞으로도 회자되고 새로 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