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 한온다움을 완성하는 1년의 여정

– 관찰하고, 질문하고, 연결하는 실무자의 인사이트 기록

by 서은재



영감노트: 일상에서 건져 올린 HR의 조각들

- 관찰하고, 질문하고, 연결하는 실무자의 인사이트 기록

『영감노트』는 일상 속에서 인사(HR)의 본질과 방향을 고민해보는 칼럼 시리즈입니다.
바쁜 실무 속에서도 잠시 멈춰 생각해보는 이 기록들이, 누군가에게 작은 인사이트로 닿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제 글에 대한 다른 생각이나 시선도 언제든 환영합니다.



1m 수수께끼가 열어준 생각의 방향들

인턴들의 창의성과 참신함을 보고 싶어 준비한 수수께끼이기에 팀별로 3분 동안 토론한 뒤 발표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3분 뒤, A4 한 장을 가득 채운 아이디어들이 모이자 강의실은 작은 아이디어 경연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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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팀은 ‘장소’를 바꾸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우주처럼 중력과 환경이 다른 곳, 잔잔한 위, 푹신한 침대 위처럼 충격이 완화되는 장소를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키즈카페 미끄럼틀처럼 완만한 경사면 을 활용해 충격을 분산시키자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또 다른 팀은 ‘조건’을 비틀었습니다. 삶은 달걀이라면 약간 금이 가더라도 “완전히 깨졌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고, “1m 경사로를 따라 굴려 내려가는 것도 위→아래 이동이라는 의미에서 떨어뜨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왔습니다.


조금 더 공학적으로 접근한 팀도 있었습니다. 달걀을 밀폐된 컨테이너 안에 넣어 함께 떨어뜨리면 같은 속도로 낙하해 상대적인 충격이 줄어든다는 설명, 표면을 실리콘이나 젤라틴으로 감싸 충격을 흡수하는 방법, 작은 낙하산을 달아 천천히 떨어뜨리자는 아이디어까지 다양한 접근이 쏟아졌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와 ‘아래’의 정의를 거꾸로 바라본 팀이었습니다. 이 팀은 “낙하한다는 것은 보통 위에서 아래로 이동한다는 뜻이지만, 우리가 위와 아래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그 방향을 ‘아래’라고 정의하면, 달걀을 옆으로 굴리는 것도 달걀의 입장에서는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또 한 팀은 자신의 개인사에서 답을 가져왔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양계장을 운영해 닭을 가까이서 지켜봤다는 인턴은, “닭이 높은 곳에서 내려와도 다리를 다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며, 결국 알을 가장 잘 지키는 방법은 “알을 낳을 수 있는 닭에게 맡기는 것”이라는 독특한 답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정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강의실에는 계속해서 웃음과 감탄이 번갈아 퍼졌습니다. 각자의 전공, 경험, 성향에 따라 사고의 방향이 전부 달랐고, 그만큼 해석의 스펙트럼도 넓어졌습니다. 이 수수께끼를 준비하면서 기대했던 장면이 그대로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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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를 마무리하며 마지막 질문을 한 번 더 던졌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있어, 절대로 떨어뜨리지 않고 지켜내야 할 달걀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품은 채, 다음 활동으로 넘어가기 위해 우리는 영상을 한 편 함께 시청했습니다.






각자의 ‘달걀’을 말해주는 사람들, 수상 소감 속 한 줄 인생

영상 속에는 배우들의 수상 소감이 이어졌습니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하다가 뒤늦게 주목받은 시간,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 끝까지 곁을 지켜준 가족과 동료에 대한 감사, 혹은 아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후배들에게 건네는 응원까지, 짧은 말 속에 각자의 인생이 응축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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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동안 활동한 것보다, 작년 1년 동안 더 많이 활동한 것 같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저처럼 빛을 못 보고 활동하고 있는 후배들과 동생들에게
기름 같은 형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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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그런데 그분들 모두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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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배우는 자신의 방향성이 늘 ‘타인’에게 가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정작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을 떠올리며,
이제는 자신을 더 사랑하고 아껴주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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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배우는, 연애 시절에 했던 약속을 34년 만에 지키게 되었다며,
다음 생에도 같은 사람과 함께 살고 싶다는 고백을 수줍게 꺼내 놓았습니다.



수상 소감은 길지 않지만, 결국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압축하는 말입니다.

“나는 무엇을 끝까지 붙들고 여기까지 왔는가”

“내 삶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영상이 끝난 뒤, 저는 인턴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습니다.

“방금 보신 수상 소감은, 각자가 평생 지켜온 ‘자기만의 달걀’을 들려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여러분 차례입니다. 여러분 삶의 이야기를 한번 꺼내볼까요.”






나의 라이프 라인 그리기, 장면·감정·배움으로 다시 읽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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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이프 라인 그리기’의 진행 방법은 간단합니다. x축을 시간으로, y축을 감정의 높낮이로 삼아 인생에서 기억나는 삶의 굴곡과 전환점을 곡선으로 그려보는 활동입니다.


저는 “좋았던 순간만 떠올릴 필요는 없다”고 안내했습니다. 가장 힘들었지만 성장했던 순간, 그 시기를 지나오며 지금 돌아보면 나를 크게 바꿔 놓은 전환점들을 최소 다섯 개 이상 떠올려 보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각자 종이를 한 장씩 들고, 마음이 가는 필기구를 집어 들었습니다. 어떤 인턴은 학창 시절의 방황과 선택을, 어떤 인턴은 입시와 재수, 군 복무, 휴학과 복학의 시간을, 또 어떤 인턴은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업을 준비하던 시기, 혼자 자취를 시작하며 “이제 정말 나 혼자 서야 하는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을 그래프 위에 찍어 나갔습니다.


곡선 위의 점 하나하나에는 구체적인 장면이 붙었습니다. 계속 울면서 학교에 가던 날들, 캠핑을 떠나고 싶었지만 표를 구하지 못해 방 안에만 머물던 어느 여름, 팀장을 맡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봤지만 결과가 기대와 어긋났던 프로젝트, “내가 선택한 길이 맞는가”를 수없이 되물으며 견뎌야 했던 밤들까지.


각자의 라이프 라인을 완성한 뒤에는 조별로 돌아가며 1분씩 자신의 그래프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그 전환점들을 ‘장면, 감정, 배움’이라는 세 가지 언어로 정리해 발표하도록 안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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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장면은 무엇이었는지,

그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 경험에서 나는 무엇을 배웠는지.


누군가는 담담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풀어냈고, 누군가는 예기치 않게 목이 매어 말을 잠시 멈추어야 했습니다.


그래프는 종이 위에 있지만, 이야기가 오갈수록 강의실 안의 공기는 사뭇 달라졌습니다. 처음 강의실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이들은 ‘같은 교육을 듣는 인턴 집단’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전환점과 상처, 선택과 버팀을 들여다보고 나니, 한 명 한 명이 이미 자기만의 라이프 라인을 통과해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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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의 마지막은 한 줄 리플렉션이었습니다. “내 인생 전환점에서 얻은 가장 큰 배움은 무엇이었는가.” 그 한 줄은 길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까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스스로 증명하는 문장처럼 느껴졌습니다.

달걀을 어떻게 떨어뜨릴지에서 시작한 모듈은, 결국 “나는 어떤 달걀을 지키며 살아온 사람인가”를 묻는 시간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한온의 1년 온보딩이 바라보는 사람

한온의 1년 온보딩을 설계하며 제가 가장 먼저 세운 기준은 이것이었습니다. 신입사원을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인재”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것. 이미 각자의 라이프 라인을 통과해 여기까지 도착한 한 사람으로 존중하는 것.


달걀을 1m에서 깨뜨리지 않는 방법을 묻는 작은 수수께끼는, 어쩌면 그런 온보딩을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 안에서만 답을 찾으려 하지 말 것.
시선을 조금 더 멀리 두고, 여정을 조금 더 길게 볼 것.
그리고 그 여정을 지켜갈, 자기만의 달걀을 잊지 말 것.


그렇게 제가 준비한 첫번째 챕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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