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 야간 비행
몇 년 만에 제주에 갔다.
떠나기 전 날, 야근을 하고와서 더욱 귀찮은 마음을 안고 꾸역꾸역 짐을 쌌다. 다음날 잠깐 출근했다가 저녁 비행기를 위해 4시쯤 회사를 나섰는데 이때부터 기분이 조금씩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남들 일할 때 놀러가는건 확실한 행복인거야.
공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나와 같은 곳에 간다고 생각하니 집에 가고싶어졌지만 이왕 온거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비행기에 올랐다.
퇴근할 때는 낮이었는데 비행기 좌석에 앉았을 때는 완전한 저녁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 지나치게 들뜨는 마음을 어둠이 적당히 눌러준다는 게 야간 비행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이륙하기위해 맹렬하게 달리던 비행기가 어렵사리 발을 뗐다. 궤도에 오른 비행기는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기내 비상구 등이 딩-소리를 내며 무심히 꺼졌다.
기내의 모든 조명이 서서히 꺼져갈 때쯤엔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될 때를 떠올렸다. 깜깜해진 시야 속에서 짧은 순간 모두가 한껏 기대를 한다. 곧 보게 될 첫 장면은 어떤 장면일까. 어둠은 마음을 차분하게도 하지만 기대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다시 기내의 조명이 켜지고 비행기가 섬에 닿을 때 내가 처음으로 마주하게 될 장면은 어떤 장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