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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dust Feb 10. 2021

'파는 일'의 기쁨과 슬픔

광고회사 채용 공고 카피를 쓰다가

광고회사는 광고를 자급자족한다. 그래서 우리 회사 광고를 만드는 일이 꽤 자주 생긴다. 다른 광고주 제안 업무를 하면서 동시에 해야 하는 ‘덜’ 중요한 일이라 다들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들은 짧고 굵게, 단타로 끝내버리는 업무로 분류한다. 말이 쉽지, 회사에서 ‘짧고 굵게 끝내자’는 말이 제일 무섭다.


이번에는 기획/제작 직무를 뽑는 채용공고 포스터에 들어갈 문구를 쓰는 일이었다. 젊은 광고회사라는 인상을 주고 싶으니 최대한 재밌게(?)쓰라고 하길래 신조어를 활용하려 노력했다.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게 컨셉이니 ‘지독한 컨셉충’이 생각났다. 그래서 컨셉을 만들고 지독하게 밀고 나갈 줄 아는 ‘지독한 컨셉 장인을 찾는다’는 식의 문장을 썼더니 윗선에서 못 알아 들을 것 같다며 탈락. 두번째는 ‘3개국어 능력자를 찾는다’는 문장으로 시선을 끈 다음 ‘한국어, 아이디어, 광고하고싶어’라고 썼더니 이해하기가 조금 어려울 수 있다며 탈락했다. 결론적으로 마지막으로 써갔던 것이 팔려서 그것으로 공고를 만들게 되었다. 광고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로망만 심어주는 문장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팔이피플 찾습니다>
전략을 잘 파는, 아이디어를 잘 파는, 비주얼을 잘 파는
우리와 함께 잘 팔리는 광고를 만들어갈 팔이피플 찾습니다.


광고회사에서 가장 많이 쓰는 표현인 ‘팔다’와 신조어 ‘팔이피플’을 연결시켜 보았다. 이 일은 책상에 앉아서 고상하게 멋진 말을 끄적이는 것 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처절하게 내 문장과 아이디어를 팔아내는 부분이 더 큰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공고를 볼 사람들을 생각할 때 최소한 양심에 찔리는 문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금이야 마르고 닳도록 쓰는 말이지만 나도 처음엔 ‘판다’는 표현이 어색했다. 왜 ‘판다’고 하지? 사주는 사람이라도 있는건가? 했는데 정말 있었다. 팀의 대장이자 총 디렉터인 CD님은 아이디어를 ‘사주는’ 사람이다. 아이디어 회의에 한 번만 참석해봐도 대략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다들 연기는 기본, 노래를 하고 랩도 한다. 광고회사 제작팀은 그야말로 만능캐 아이돌 센터급의 능력치를 지녀야 하는 걸까. 모두가 자신이 공들여 만든 것을 팔기 위해 그것을 ‘사주는’ 사람에게 이렇게나 어필한다.

K팝스타 급 회의가 끝나고 나면 덜 긴장되고 더 재밌는 시간이 시작된다. 회의실 안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운 발언권을 갖기 때문에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이디어에 대해 드립을 쳤다가 깔깔 수다가 되기도 하고, 누군가는 갑자기 옛날 썰을 풀어놓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갑자기 진지하게 살을 붙여 가다 보면 어느새 하나의 안이 완성되곤 하는 과정들이 참 재밌다.


하지만 팔이가 서글퍼지는 순간들도 많다. 과로로 몸이 아파서, 손님들이 진상이라 등등. 생각할수록 정말 자영업자가 따로 없다. 이젠 정말 못해먹겠다고 (친구들 앞에서만) 선언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면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붙잡기라도 하듯 무언가 팔린다. 그러면 방금 전까지 울고있었어도 다시 웃게 된다.

어떤 장사든, 장사 하루이틀 할 게 아니면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던데 나는 가게 차릴 배짱은 안되나 보다. 안 팔리는 날이면 부질없이 스스로를 탓하는 데 에너지를 다 쓰곤 했다. 그러다 보니 2차 회의를 준비할 힘도 나지 않았다. 팔릴 때가 있으면 안 팔릴 때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아이러니하지만, 안 팔리는 날도 행복할 줄 알아야 계속해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파리 날리는 데 콧노래나 부르자는 게 아니라, 오늘은 왜 안 팔리는지 원인을 잠시 생각해보고 원인을 알았으면 더는 목매지 말고 장사 잘 되는 옆집에 가서 일손이라도 돕는다. 이것들이 가능해야 지치지 않고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는 것 같다.


진짜 장사를 시작한지 3개월 정도 된 오빠와 전화를 할 때면 엄마가 꼭 물어보는 것이 있다.


“빵집 아저씨, 오늘은 얼마나 팔았어?”

“음, 똔똔이야”

“어휴 다행이네~”


팔이피플에게 또 하나 중요한 건 똔똔, 본전을 다행히 여기는 것이 아닐까. 본전을 다행히 여기면 일희일비하는 것도 막을 수 있으니까. 최선을 다 했음에도 본전밖에 하지 못했을 때 겨우 최선 밖에 하지못했다며 자신을 원망하지 말고, 내가 얻게 된 ‘본전’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것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보자. 회의가 끝나고 팔린 것과 안 팔린 것들에 대한 각각의 피드백을 다시 생각해보면 다음에 준비할 때도 도움이 된다. 팔린 것은 왜 좋은 평을 받았는지 다음에 다른 과제에는 어떻게 적용시킬지, 그 때 기분은 얼마나 좋았는지도 곱씹어본다. 안 팔린 것은 왜 디벨롭 될 수 없는지, 과제에 왜 맞지 않는지 생각해본다. 지치지 않고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괜찮은 아이디어를 자주 들고 와서 K팝스타처럼 잘 뽐내는 녀석’쯤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 욕심이 너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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