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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운 Oct 11. 2022

시절인연

나는 이토록 아무것도 아닌데 이 사랑의 모양은 시리도록 아픈 걸까. 원래는 혼자였다. 잠깐 머물다 간 것뿐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너지는 걸까. 밤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밤은 깊어질수록 옅어진다. 아침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두운 마음도 똑같을까. 나를 진심으로 빌려주었다. 그 사람을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마음 같은 깊은 밤에는 내가 없다. 다만 그 사람을 찾는 사람만이 있다. 발음되는 모든 것들에 그 사람이 보인다. 쏟아지는 빗방울 한 줄기마다 그 사람이 보인다. 무수하다. 그렇게 무수히 파괴된다. 내 곁은 모양이 없다. 그 모양이 그대로 사라졌다. 작은 단어가 더 작게 보이고 큰 문장이 해체된다. 따뜻한 차에는 새벽이 담겨있고 나는 새벽을 마신다. 나는 증명해내도 괜찮을 것이고 그렇지 못해도 살아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 좋아하는 게 무슨 사랑이겠어요.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게 사랑이지요.’ (이성복/무한화서)


보이지 않기에 더 명확해진다. 나는 그곳에 내 시간을 던진다. 사랑도 인생도 사람도 똑같다. 이제 막 긴 꿈에서 깬 것이다. 빛을 지피고 그 궤도에 올라선다. 이내 곧 맺어질 시절인연처럼. 나는 점점 더 담담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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