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우리를 '집순이'라고 부르지 말 것
사회적 거리두기에 최적화된 인간 부류가 있다면, 그 곳엔 반드시 내가 속해 있을 것이다. 코로나19 유행 전에는 소위 ‘집순이’로 불리며 게으름의 표본으로 분류 되던 집단이지만, 이제는 새롭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니라 ‘홈 사피엔스(Home Sapiens)’라든가, ‘팬데믹 최적화인’, ‘거리두기 명인’이라든가, 좀 더 시대에 맞게 진화된 그룹인 것을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와 같은 부류는 잘 나돌지 않고, 집에 며칠을 머물러도 답답함을 모르며,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홀로 시간을 잘 보내기 때문에, 전염률을 낮추면서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팬데믹 시대의 역군들이라고 할 수 있다.
팬데믹의 급물살을 타고 집 꾸미기의 시대가 도래했다. 개인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미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은 급등했지만, 지난 2년 간의 코시국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 집’의 올해 상반기 결제 추정금액이 4,673억으로 전년 대비 62% 상승하여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강제적인 집콕이 이어지면서 ‘홈 사피엔스’는 물론이고 외향적인 ‘호모 사피엔스’들 조차도 오래 머물 수 밖에 없어진 ‘집’이라는 공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만의 방이 있었다. 그 시절엔 인테리어라고 할 만한 시도는 딱히 없었지만, 방 구조 바꾸는 걸 즐겼던 기억은 있다. 방에 작은 베란다가 있었는데, 그 곳에 침대를 배치해서 캠핑 무드로 밤하늘의 낭만을 즐긴다던가 하는 소소한 것들이었다. 그러다 스무 살에 꽤 이른 독립을 했다. 첫 입학 등록금 이후부터는 경제적인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완전한 독립이었다. 고작 대학생인 나의 능력으로 얻을 수 있는 방은 닭장같이 작고 답답했다. 그러나 볼품없고 좁아터진 방이라도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었으므로 특별했다. 침대, 책상, 작은 냉장고를 배치하면 사람 하나 누울 빈 공간이 겨우 나오는 평수였지만, 침대 머리맡 벽에는 붉은 꽃이 그려진 블랙 시트지를 바르고, 주방 벽엔 밝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나만의 느낌을 덧칠하려고 애썼다. 돌이켜보면 80년대 영화에 나오는 모텔처럼 촌스럽고 어설펐지만 당시엔 나의 최선이었고 즐거웠다.
그렇게 몇 번의 이사와 인테리어 시행착오를 거치며 사회인이 되었고, 조금씩 내 공간의 규모도 커지고, 인테리어 감각도 나아졌다. 독립 7년 만에 경리단길의 작은 주택으로 이사했다. 분리형 원룸으로 혼자 살기에 딱 좋은 사이즈의 집이었다. 그 집에서 취향이란 것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한쪽 벽을 핑크색 페인트로 칠하고, 금빛 별이 총총 박힌 짙은 감색 암막 커튼도 달았다. 커다란 나무 책장엔 좋아하는 서적들로 꽉 채우고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을 설치했으며, 종종 캔버스에 그림도 그리며 위스키와 시가도 즐겼다.
가장 오래 거주한 그 곳에 살며 다닌 직장에서 지금의 반려자를 만났고, 몇 년 후 함께 창업했다. 회사의 규모가 커져서 사무실을 옮길 때마다 거의 내가 인테리어를 담당했다. 클라이언트의 레스토랑 인테리어에도 관여하는 경험치를 쌓으면서 전문가와의 인맥도 생겼다. 이후에도 집과 사무실의 이사와 이전을 거치면서, 부수고 고치고 만드는 경험이 쌓이자 공간을 보는 관점과 자신감이 달라졌다. 많은 걸 갖췄어도 자유도가 낮은 공간에는 오히려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어딘가 부족해도 잠재력이 월등한 공간에 더 끌렸다. 나의 구상대로 달라질 모습을 예상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재미있었다.
다시 ‘홈 사피엔스’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들은 최신 트렌드인 ‘레이어드 홈(Layered-Homes)’ 인테리어에 최적화된 사람들이다. 최근 D 아파트의 ‘집이 무엇이든 되어야 하는 시대’라는 광고 카피처럼, 단순 주거에서 일과 여가 등 새로운 기능이 겹쳐진 공간으로 진화한 집을 ‘레이어드 홈’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우리 집도 그러한데, 리클라이너 소파에 앉아 빔프로젝터로 극장처럼 영화를 즐기고, 벽난로에 불을 피워 떡과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근교에 놀러 온 기분을 내기도 한다.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으로 음악을 감상하고 칵테일을 마시며 재즈바에 온 것 같은 무드를 내기도 하고, 거실 한 쪽 벽면은 스트링 모듈러 시스템과 두 대의 PC를 설치해서 재택근무를 위한 홈 오피스 겸 PC방을 만들었다. 방 하나는 홈 짐(Home gym)으로 만들어 외출 없이도 웬만한 운동이 가능하게 기구를 갖춰놨다. ‘레이어드 홈’이란 개념을 알기도 전에 우리 집은 이렇게 공간을 구성했는데, 그 이유는 집에서 많은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본능이 ‘홈 사피엔스’의 공통적 성향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팬데믹과 함께 두드러지는 경향이 되자 ’레이어드 홈’이라는 단어로 정의 됐을 뿐이다.
작년에 번아웃이 심각하게 왔다는 걸 깨닫고, 쉬어가기로 결심했었다. 얼마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집에만 있었더니 ‘홈 사피엔스’의 행복을 조금씩 찾아갔다. 음악 듣고 책 읽고 청소하고 일주일에 한 두 번 운동하고, 동네 산책하는 게 일상의 전부였지만 좋았다. 마치 은퇴하고 여생을 보내는 동안(童顔)의 할머니처럼 두어 달 지내보니, 나만이 느낄 수 있는 소소한 내적 변화를 경험했다.
우선 시간을 두고 물건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장바구니에 재빨리 담아 욕구를 해소하거나, 수집욕을 채우는 신속한 소비,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훑어보기 바빴던 쇼핑 패턴이 사라졌다. 눈에 들어온 소품이나 가구가 있다면 전과 달리 그야말로 두고두고 살폈다. 들었다가 놓았다가, 사진으로 다시 봤다가, 집에 배치한 상상도 골똘히 했다가, 확신이 들 때까지 마음에 쥐고 조몰락거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생각해서 집안에 들인 물건은 질리지도 버리지도 않았다. 또 한 가지 변화는 전처럼 자극적이고 새로운 핫플레이스를 찾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좋았던 곳을 다시 방문해서 익숙한 편안함을 즐기는 것을 더 큰 행복으로 여기게 되었다.
나 좋을대로 우리 집을 꾸미는 것 만큼 좋은 자아 성찰법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페인트 컬러를 고를 때 그 수많은 컬러 칩 중 눈에 들어오는 컬러는 한정적이다. 그럼 비로소 알게 된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색감에 대해서. 바닥 소재를 고를 때도 타일을 깔지, 원목을 깔지, 강화마루를 깔지, 고민하다 보면 내 발이 좋아하는 감촉에 대해 알게 된다. 의자를 들일 때도 보기에 예쁜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오래 앉아있어도 편안한 디자인을 추구하는지, 오리지널 디자인 보다 가성비를 더 따지는지 알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을 잘 구축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과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진정 내가 좋아해서 선택했는가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 검열은 필요하다. 타인의 시선이나 유행을 의식한 선택이라면 자신에 대한 탐구가 아닌 소비의 희열을 탐닉한 것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
‘호모 사피엔스’가 ‘슬기로운 사람’이라면, ‘홈 사피엔스’는 ‘집에서 자신에 대해 탐구하는 슬기로운 사람’이다. 이 척박하고 혼란한 전염병의 시대를 잘 이겨내려면, 당분간은 호모 사피엔스보다는 홈 사피엔스로 살아가는 것이, 이 난리를 한시라도 빨리 끝내는 방법이 아닐지, 홈 사피엔스의 한 사람으로서 조심스레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