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 <말러 교향곡 ‘부활’> 리뷰
취린이(‘취업준비+어린이’를 뜻하는 은어) 생활 3개월 차. 똑같은 일상과 전혀 내 목표와 전혀 상관없는 공부들에 치여 매일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전공은 광고홍보학인데 내 손은 컴퓨터 액세스(Access) 처리에 급급했고 ‘내부 스키마’, ‘프로토콜’ 등과 같은 컴퓨터 언어로 내 안의 또 다른 나와 소통하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날은 ‘역사를 알지 못한 자, 3대가 멸하리라’와 같은 속언이 생각나 부랴부랴 한국사를 공부하기도 했다. 영어 회화에 능통하진 않았지만, 외국에 다녀온 것처럼 ‘유 노(You know)’ 같은 추임새를 넣으며 영어 회화시험에 도전하기도 했다.
또한, 인터넷을 보다 보면 ‘독학 1주 격파 어떻게?’와 같은, 어쩌면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때때로 ‘혹시 나도?’ 하는 생각에 흘긋 준비한 지식으로 하룻강아지처럼 덤벼보기도 했지만 될 리가 있나. 단칼에 낙방. 계속 이러한 게으른 패턴들이 반복되자 이 게으름마저도 결국 질려버린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방구석에서 똑같은 일상을 보내던 와중, 문득 ‘내가 재미있게 배웠던 일을 취린이 생활에 접목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고 서울시립교향악단 서포터즈가 눈에 들어왔다.
사실, 클래식보다는 힙합과 대중가요에 친숙한 나였다. 하지만 대학 시절 어느 전공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자고로 마케터의 아이디어와 원동력은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라며 무엇이든지 해보라고 조언해주셨다. 이 말을 뼈에 새기며 살아온 나로서는 서포터즈 지원에 뒤를 돌아볼 이유는 찾기 어려웠다. 최종 합격. 오랜만에 가슴이 뛰었다.
단순히 이와 같은 이유로만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평소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 추세로 보아 단순 텍스트로만 이목을 끄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시대가 되었고, 상대적으로 나의 취미이자 장점은 빛바랜 낡은 수첩에 불과했다. 그런데, 클래식과 관련된 홍보, 마케팅은 대부분 ‘리뷰’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클래식은 우리가 듣는 대중가요처럼 멜로디와 가사도 중요하지만, 이 곡의 역사와 작곡가, 악단과 지휘자, 악장, 그리고 음 하나하나의 간격 또한 굉장한 의미를 품고 있었다. 그 의미를 서술하고 그때 느끼는 감정을 교환하는 것이 클래식 팬(?)에게는 굉장한 정보가 되고 결국 표를 사면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나에게 딱 들어맞는 옷을 찾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편안하게, 그리고 온전히 나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서포터즈를 시작하며, (정말로 이번 생은 클래식이 처음인지라) 생소하지만 신비한 세계가 나에게 펼쳐졌다. 첫 공연은 ‘오스모 벤스케’ 감독님의 ‘말러 교향곡 2번’이었다. 협주곡, 관현악, 등등 이런 개념에 대해서 거의 무지한 나의 결정은 ‘일단 보자’였다.
롯데콘서트홀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보긴 했지만, 먼저 그 규모에 압도당했다. 붉은 좌석들이 한 무대를 둘러싸고 있었고, 그런 붉은 좌석보다도 눈에 띄는 무대가 퍽 인상적이었다. 족히 100여 명의 악단이 앉을 수 있는 공간에 밝지만 은은한 조명이 내리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고급스러움과 우아함보다도 왠지 모르게 치열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콜로세움에서 투우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왜일까? 공연을 보고 나니 그 해답을 조금 찾은 것 같았다.
악단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바이올린부터 비올라, 하프, 플롯 등 음악 교과서에서나 접했던 화려한 악기가 시선을 꽉 채웠다. 타악기를 연주하시는 분이 흑인이어서 굉장히 놀라기도 했고, 멀리서 보았는데도 생각보다 큰 악기들을 보며 다시 한번 압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웅장하고, 심지어 감격스러웠던 것은 합창단이 등장했을 때이다.
남성과 여성 합창단은 세션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이들이 들어서자 비로소 한 무대가 완성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이윽고, 등장하는 오스모 벤스케 감독님. 이미 클래식계에서는 아주 유명한 분이시라 이를 알고 있는 청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환영 인사를 대신했다. 뜨거운 박수가 조용히 가라앉고 거대한 서막을 알리는 적막이 찾아오자, 작정이라도 한 듯 오스모 벤스케 감독님은 신들린 지휘에 몸을 맡기었다. 그의 열정에 보답하듯 악단은 일제히 그의 부름에 응했고 열기는 더욱 거세졌다.
말러의 ‘부활 교향곡’은 베토벤 교향곡 9번으로부터 영감을 얻었고 프로이트가 살던 시대에 작곡되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오케스트라와 합창을 위해 쓰인 이 교향곡은 그저 압도적이었고, 유심히 지켜볼 만한 것은 연주를 할 때마다 음악 전체가 ‘특별한 사건’으로 다뤄진다는 것이다. 곡을 잠시 설명하자면, 말러 교향곡은 한 남자가 친구의 무덤 앞에서 비통함에 젖은 채 하늘을 향해 분노의 주먹을 휘두르고 이 세상 끝, 그리고 그 너머로 자신을 데려갈 여행에 첫발을 디딘다는 내용이다. 이것이 바로 구스타프 말러의 ‘부활 교향곡’이며, 교향악 전통을 관통하는 기나긴 시즌 여행을 시작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오스모 벤스케 감독님은 이 거인과도 같은 작품에 일생의 경험과 영감을 불러올 것이라고 밝혔다.
후반부 오스모 벤스케 감독님의 지휘 아래 울려 퍼지는 합창단의 목소리를 악기보다도 아름다운 선율과 화음을 들려주었다. 격정적이고 또 섬세했다. 음악이 끝나자 기립 박수와 환호 소리를 끊길 줄을 모르고 울려 퍼졌다. 그제야 공연 내내 긴장했던 내 몸이 사르르 풀릴 정도로 압도적인 무대였다. 힙합과 대중가요만 듣던 나는 그 음악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단단하지만 섬세한 감정을 확실히 느꼈다. 아직까지도 나에게 클래식은 생소한 장르이지만 조금은 알 것만 같은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홀을 빠져나왔다.
앞으로 총 6번의 정기 공연이 남아있고, 그때마다 이렇게 감정의 노트(Note)로 다시 찾아오려고 한다. 이번 생은 클래식이 처음이라 이런 경험을 선사해준 서울시립교향악단에게 무수한 감사를 보내는 바이다.
사진출처: 개인 소장 사진, 서울시향 홈페이지, Lisa-Marie Mazzucco, Joel La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