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1일 차. <부모를 관찰하려는 이유>
「기록 1일 차」
시간: 2020/02/16 09:30 p.m
장소: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고 있음.
내용: 이하 서술
자연 다큐멘터리는 생물의 잉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노력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들의 모성애와 부성애는 가끔 우리에게 진한 교훈과 감동을 주기도 한다.
아내의 영양분을 위해 먹잇감이 되는 사마귀부터 자라나는 새끼의 영양분이 되는 가시고기까지, 이 세상 모든 자연 생물은 ‘당연하게’ 새끼를 위해 자신의 일생을 바친다.
한때는 남부럽지 않은 힘찬 지느러미로 강을 올랐고 혹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사랑의 노래를 불렀다. 때론 사나운 눈빛으로 위협자를 제압하기도 하고 자식을 위해 밤낮으로 사냥을 나서기도 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모습을 따뜻한 거실에서, 카메라가 담아낸 LED 화면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때론 동정과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 많은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일생을 ‘기꺼이’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일생이라는 긴 시간 속에서 이와 같은 자연의 섭리를 ‘당연히’ 받아들일 때가 많다. TV 속 다큐멘터리를 볼 때와는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도덕책에서 배우는 생명의 고귀함은 잘 알면서, 반려동물에게는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언어를 쓰면서, SNS에 부모님 생일파티 사진은 꼭 올리면서, 우리는 ‘평소’에 부모님을 잘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연 생물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추억할 수 있다는 것.
사마귀와 가시고기가 자신을 위해 ‘기꺼이 ’ 희생한 부모를 평생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갈까? 아니다. 이들은 본능을 위해서, 번식을 위해서 살아갈 것이다.
당시에는 죽을 만큼 힘들었던 일이 시간이 흐르고 나면 자랑스러운 극복담으로 추억되듯 우리는 지난날을 단순히 ‘기억’한다기보다는 열심히 ‘추억’하는 편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은 우릴 기다려주지 않고, 그 흘러가는 시간 속에 후회, 기쁨, 죄책감 등의 공간이 끊임없이 서로 뒤엉킨다. 이러한 시공간의 결합이 우리에게는 ‘추억’으로 남는 것이다.
부모님을 관찰하고 싶어 졌다.
왜라고 묻는다면 언제 있을지 모르는 이별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해야 할까.
차곡차곡 데이터가 쌓이다 보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유의미한 자료가 만들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 정확하게는 훗날 예정된 부모와의 이별을 ‘추억’할 하나의 작은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다.
한때 큰 꿈과 야망을 품고 세상에 도전한 그들이었고, 우리와 같은 눈부신 청춘이 있었고, 또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이뿐인가. 온갖 수모와 상황을 지혜롭게 이겨내며 세상의 굳은살도 마다하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을 관찰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이들을 관찰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들은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인생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당신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훗날 부모님을 ‘기억’하려는 것인가, ‘추억’하려는 것인가?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훗날 그들을 ‘추억’ 하기 위해,
인생의 반환점,
이들이 겪는 다양한 변수들을 보며
이전 세상에는 없었던 보고서를 기록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