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오스모 벤스케 <시벨리우스 모음곡 & 말러 교향곡 4번> 리뷰
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온 세상은 꽁꽁 얼어붙고 있었다. 각종 자격 및 어학시험은 중단되고 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장소마저 폐쇄되었다. 우리네 부모님은 강제 주3~4일 근무를 하게 되었고, 미용사인 사촌 형은 재정난에 허덕였다. 이렇게 보니 취준생인 나는 가장 피해를 덜 입은, 복 받은 계층에 속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인류는 언제나 그랬듯 위기를 이겨내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현재의 지구, 즉 현재의 시공간에 부정당한 만큼 다른 차원의 세상을 찾아 나섰다. 바로, 온라인 세상 말이다.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좋게 말해) 대학 강의는 원격으로 운영되기 시작했고 신입생을 비롯한 학생들은 랜(lan)선 술 파티를 하는 등 새로운 문화를 생산했다. 드라이브 스루의 편리함을 이때서야 깨달았고, 택배 기사님은 현관 벨(bell)을 더이상 누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이 생각보다 위생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노-메이크-업 상태나 인후통이 왔을 때 쓰던 마스크를 필수적으로 걸치게 되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만 같았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온 세상은 막대한 타격을 받았지만, 특히나 오프라인(off-line)에서 진행되는 공연 및 전시 산업의 세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그만큼 빠른 태세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서 온라인 세상의 발견은 이들에게 드넓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였다.
서울시향 공연도 마찬가지로 ‘온라인 스테이지’를 만들었다. 문화생활이 어려워진 우리에게 (실황 공연보단 못하지만) 한 줄기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4달이 지났을까. 전국의 많은 의료진을 비롯한 너무나 감사한 분들의 노력으로 코로나19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고, 시장 경제가 서서히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노력이 많이 필요한 상태이다.)
그렇게 4달의 기다림 끝에 서울시향의 공연도 재개되었다. 물론 전 좌석 띄워 앉기를 철저히 지키면서 말이다. 확실히 많은 관심이 쏟아졌던 것 같다. 실제 공연장에 들어서니 한 언론사가 이와 같은 모습을 취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번 곡은 오스모 벤스케 감독의 ‘시벨리우스 모음곡’과 ‘말러 교향곡 제4번’이었다.
#시벨리우스 모음곡
해당 곡은 간단히 말하자면, 시벨리우스 본인의 ‘과도기’를 표현한 곡이라고 전해진다. 이때는 그에게 있어 창작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던 일종의 과도기이자 전환기였는데, 다분히 낭만적 색채를 띤 그의 낭만주의 스타일에 대한 고별사로 간주 된다고도 전해진다.
많은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진 않았지만, 이 곡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현악기를 직접 튕기는 연주 기법이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또한, 관악기가 곡의 주 흐름을 이끌긴 하지만 현악기와 관악기의 소위 ‘티카타카’하는 모습이 마치 ‘내가 이 곡의 주인공이야’하는 듯한 인상을 남겼다. 이 앙증맞은 싸움에 나도 모르게 발가락 리듬을 타고 있을 정도였다.
#말러 교향곡 제4번
코로나19 덕분에(?)라고 말해도 되는진 모르겠지만, 서울시향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연주 인원을 대폭 감축했다고 한다. 즉, 실내악 버전의 말러 교향곡을 듣게 된 것이다. 실제로 몇 안 되는 연주 단원이 무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흡사 각 분야의 고수들이 한 데 모여 연주합을 맞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곡은 말러 교향곡에서 가장 밝고 경쾌한 곡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히려 연주 단원이 적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시벨리우스 모음곡에 비해 타악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인원이 적은 만큼 타악기의 존재감은 빛을 냈다. 여담이지만, 트라이앵글을 저렇게 고급스럽고 웅장하게 칠 수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또렷이 든 생각은, 이 곡이 마치 코로나19로 잃어버린 우리의 봄을 되찾아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비록 연주 규모는 작더라도 이와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듯, 우리도 언젠가 코로나19를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은 것 같았다.
#에필로그
공연이 끝난 후, 여러 감정이 교차했던 것 같다. 문화생활에 목마른 나에게 시원한 물이 되기도 했고, 더 나아가 ‘그래도 인류는 이겨내고 있다’는 응원을 받은 것만 같았다. 물론 헤쳐나가거나 조심해야 할 길이 참 많이 남아있지만, 뭔지 모를 용기가 생겼다. 내 세상만 멈춘 줄 알고 부정적인 생각만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딛고 일어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고 보니
참, ‘이런 게 음악의 효과일까’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