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정말 온 세상이 멈춘 걸까?
이번 시험도 어김없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2020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당찬 포부와 함께 '취업 준비'라는 머리띠를 꽉 졸라맸건만 결국 삐걱거리는 첫걸음이 되고 말았다.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 불청객은 생각보다 우리들의 일상을 잔뜩 헤집어 놓았다.
솔직히 말하면 취준생 입장에서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국가 경제의 큰 틀이 흔들리고 당장 우리네 아버지마저 직장에 당분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찾아왔어도 그저 앉아서만 묵묵히 학업에 정진하면 됐었다. 언론에서는 IMF 이상의 경제 위기가 찾아왔다고 하지만, 극한의 생계 지점까지 내몰리거나 오늘 당장 저녁 식사를 걱정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내 앞에 웬 타임머신이 떡하니 나타났다. 당장이라도 출발할 것만 같은 타임머신은 윙윙 소리를 내며 작동하고 있었고, 딱히 급할 일도 없는 취준생은 타임머신에 발을 들였다. 내부에 들어서자 두 개의 버튼이 보였다. 하나는 '내 시간 멈추기', 다른 하나는 '세상 모든 시간 멈추기' 버튼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취준생인 만큼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충족해야 하니 모든 세상의 시간을 멈춰, 그동안 실력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두 번째 버튼을 눌렀고 눈을 뜨기 힘든 큰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누구보다도 냉정하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정말 온 세상이 멈춰버린 걸까?”
괜스레 '시간을 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왜냐하면 취준생의 시간은 마치 멈춰있는 듯, 하지만 꽤 빠르게 흘러가는 타임머신과도 같은데, 이번 사태로 인해 각종 시험이 중단되고 학원조차 편히 등원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서 각종 '핑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조밀히 계획된 일정에 틈이 생겨 만들어진 이 자잘한 공백기를 스스로 합리화하게 된 것이다. 오늘 하루쯤은 마음껏 놀아도 세상은 멈춰있었다. 시험이 연기되거나 채용 일정이 밀려도 마음은 편안했다. 또, 실제로 아무 사람 없는 거리를 걷거나 공원에 앉아있을 때면 알 수 없는 좋은 기분을 느낀 적도 있었다. 왜? 무엇인가를 더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니까. 하지만 어느 영화에서도 말했듯 타임머신은 언제나 그에 해당하는 반동을 수반한다.
타임머신은 결국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절대적이지 않은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당장 멈춰버린 이 시간이 끝날 시점을 상상하자, 날카로운 아찔함이 불현듯 나를 엄습했다. '시간을 번 것'이 아니라, 단지 게을러 '시간을 버렸다는' 깨달음을 터득한 순간 손에 땀이 났다. 아, 뭔가 잘못됐다.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졌고, 그 역할을 냉정히 수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깨닫지 못한 채 모든 세상의 시간을 잠시 멈춰버리고, 혼자만의 시간여행을 즐겼다. 아니, 즐긴 것이라고 착각했다. 세상은 확실히 멈춰있었지만 나는 그동안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고 이를 품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멀리 배척했던 것이다. 멈춰버린 세상으로부터 나는 또 도피한 것이다. 그 순간, 다시 타임머신이 다시 뜨겁게 작동했고 금빛 섬광이 번쩍였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 꿈이었구나.”
길고 길었던 이번 여행을 통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취준생의 타임머신에는 ‘멈춰있지만 멈춰있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규칙이 존재했다. 나는 이런 가혹한 규칙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번 공백기 속에서 계속 부정해 왔던 것이다. ‘세상은 나 하나 없어도 문제없이 돌아가고, 회사 또한 나 말고도 역량 있는 인재들이 그 빈자리를 꽉꽉 채우는데 도대체 나의 시간은 언제 오는 걸까?‘라고 불평하며 말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시간은 상대적인 개념인지라 위 물음에 대한 정답도 아마 '마주한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지 않을까. 애써 부정하지 않으려는 것, 묵묵히 받아들이고 걸어가는 것. 즉, 취준생에게 시간을 돌리거나 멈춰버리는 타임머신 따위 필요 없는 것이다.
요즘따라 '뭐하고 지내?'라는 평범한 질문이 결례인 것처럼 느껴진 게 어느덧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자연스레 친구들과의 연락이 뜸해지고 문득 보고 싶은 친구에게 섣불리 연락하지 못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으며, 설사 연락을 했더라도 이전처럼 '술 먹을래?', '소개팅할래?'와 같은 소소한 대화를 이어갈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를 비롯한 우리들의 대화는 면접 형식이 되어버렸다. 서로의 근황을 묻긴 하지만 꼭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 굉장히 바쁜 듯한, 그야말로 번지르르한 대답을 서로 내놓는다. 마치 누가 먼저 타임머신을 타고 빠르게 시간을 보냈냐며 경쟁하듯이.
참, 다른 시험도 또 연기됐단다.
설마 꿈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