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서 고생하세요? 上

허송세월 저 너머에 흐르고 있던 ‘색다른 시간’

by 승혁

이 글을 읽기 전, 유념해둘 사항이 있다.

글을 쓰고 있는 현재의 시각은 새벽 2시가 넘어가는 깊고 감성적인 시점임을 잊지 말자.




‘취업 준비하고 있어요’라는 말이 부끄러울 만큼 가시적으로 얻는 소득은 없었다. 장장 8개월 동안 해왔던 놀이(스스로 떳떳한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값진 시간을 버리며 보냈던 일종의 놀이라고 칭하자.)를 고백하자면 3번의 면접 기회와 4번의 자격증 시험, (이상 모두 불합격), 흘러가는 시대에 겨우 발맞춘 개인 SNS 채널 운영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한 시간을 상기해보면 참으로 암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를 흔히 ‘수박 겉핥기’식 공부법이라고 말하는데, 단호하게 말하건대 필자는 수박을 핥아보기는커녕 수박을 들지도 못한 꼴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주 먼 옛날 어느 과학자가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발견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허송세월하며 보낸 시간의 저 너머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조금 색다른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필자는 성인이 된 이후부터 취준생이라는 존재가 되기 전까지 정말 ‘쉬지 않고’ 달려왔다. 물론, 그 시간에 상응하는 피, 땀, 눈물의 양은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개인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적어도 마음 놓고 쉬었던 시간은 별로 없었다.



등록금과 방세를 벌기 위해 방학에는 공장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꿈을 찾아 학보사 기자를 비롯해 여러 대외활동을 경험했다. 그런 와중에 틈틈이 연애도 하며 시간의 빈틈을 아주 행복하고 단단하게 채워 나갔다. 심지어 군인 신분일 때도 병사 자율위원회를 비롯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며 분명히 많은 후임들에게 꽤 ‘골치 아픈’ 선임으로 남았을 것이다.



말이 잠깐 다른 곳으로 샜는데, 그래서 방금 언급한 ‘색다른 시간’이 무엇이냐. 간략히 먼저 말하면, ‘주위 사람들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것이다. 직접 만나서든, SNS상에서든, 하다못해 바뀌어버린 프로필 사진을 보고서라도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토킹의 수준은 아니니 오해 말자.) 즉, 많은 이들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진득하게 경청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살다 보면 모든 일의 중심에 ‘나’가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단순히 말해서) 우리는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움직이다’라는 말은 신체적으로 움직인다는 의미 밖에도 정신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도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즉, 우리는 매 순간을 끊임없이 보고, 느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낀 것들이 또 다른 어떠한 결과물로서 우리 앞에 놓이게 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수만 가지의 감정이든, 월급이든, 그 외의 어떠한 것이든 말이다.



만약 필자의 말이 조금 난해했다면, 잠시 위에 언급했던 작용·반작용의 법칙에 의거해 생각해보면 된다. 어떤 사물을 움직이기 위해선 그것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을 주었을 땐 그에 상응하는 다른 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방금 말한 ‘색다른 시간’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세상의 주체가 ‘나’가 아닌 시점에 살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이의 시간을 관찰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꽤 오랜 시간 동안 적지 않은 이들을 지켜봤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이런 말을 전했다.



“사람은 왜 태어나서 기쁨과 증오와 사랑 등 많은 감정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너무 일을 만들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효율성은 제로(zero)인.”



굉장히 심오한 물음이었다. 인생이라는 깊은 바다의 단전에서 힘껏 끌어올린 질문이랄까. 인생을 한 번 이상 살아보지 않은 존재인지라 쉽사리 답을 할 수는 없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한 번 스스로 답을 내려보길 권장한다.) 꽤 긴 시간 고민해본 결과, (친구를 만나러 가는 지하철에서. 필자는 수도권에 사는지라 서울까지 기본적으로 1시간 이상이 걸린다.) 결론적으로 필자가 내린 답은 저 위에 있다.




우리는 ‘움직이기’ 때문이다.



- 다음 글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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