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바보' 소리 듣기는 어렵다
과거 인기 TV 프로그램 <무한도전> <1박2일> 등의 인기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건대, 위 언급한 프로그램에는 소위 말하는 '바보'들이 참 많았다. 상황과 맥락에 전혀 맞지 않는 엉뚱한 언행은 폭소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아니, 어쩌면 멍청한 이들을 보면서 상대적으로 자존감을 챙겼을 수도 있다.
당시 많은 매체에서는, (필자를 포함해), 정준하·김종민 등의 연예인을 ‘바보’라고 떠들어댔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정말 바보여서 그런 행동을 보였던 것일까? 공교롭지만 정답은 ‘Yes’다. 그러나 단순히 지능이나 행동 양식이 뒤떨어진다는 소리는 아니다.
최근 국민 예능 공백기에 환멸을 느끼던 필자는 지난날의 '바보'들을 회상하다가, 문득 뜻하지 않은 교훈을 얻었다. 심지어 그 '바보'들에 대한 남 모를 존경심까지 느꼈다. 이유인즉슨 그때는 보이지 않던 그들만의 때 묻지 않은, 미치도록 순수하고 전문적인 영토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 글은 자신이 귀중한 바보임을 모르는 이 땅의 천생 바보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며칠 전, 우연히 듣게 된 말이 있다. “바보 소리 듣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굉장히 듣기 어려운 말이었다. 예컨대 90년대만 해도 적금을 비롯한 모든 저축 형태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성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행동 강령 중 하나였다. 반면 당시 주식과 가상 화폐를 거래하는 사람들은 세상 물정 모르는 '바보'였다. 그러나, 현 상황과 비교해 보아라. 돈이 돈을 만드는 시대에서 저축이 웬 말인가.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이켜 '바보' 소리를 들으러 가고 싶지 않은가?
뒤집어 생각해보면 '바보'라는 말은 보통 사람들이 하지 않는 행동이나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는 일을 했을 때 듣곤 했다. 조금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바보는 어느 특정 분야에 소신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필자는 바보가 되기로 결심(?)했다.
어릴 적 밖에서 바보 소리를 듣고 오면 방구석에서 펑펑 울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둘러보건대 어쩌면 우리는 사회에서 '바보'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있지는 않았던가. 급변하는 사회 흐름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우리네 자화상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마찬가지로 이렇게 27년을 살아온 필자에게 직장은 재미도, 보람도 느낄 수 없는 지옥의 놀이터다. 자그마한 실수에도 가슴이 철렁하고, 이러한 '바보'같은 실수에 스스로 선 넘은 자책을 가행하기도 한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최근 가장 많이 되뇐 생각은 '난 정말 머리가 안 좋나'였다.
필자는 본격적으로 바보가 되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중이다. 필자의 직업 특성상, 결과물에 대한 냉철한 비평과 셀 수 없는 피드백이 쏟아진다. 이러한 미사일들이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전쟁터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바보'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쿨(?)하고 간단한 방법이다. 단, 우리가 흔히 쓰는 바보라는 뉘앙스에서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다.
한 번은 결과물에 대해 이런 평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니,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가 있어야 논리적인 근거가 되죠"
아주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바보'같이 해당 자료집의 데이터를 일일이 손가락으로 셌다. 한 문장을 위해 정확히 두 시간을 소요했다. 그제야 비로소 사수는 흡족하다는 미소를 보였다.
그 순간 알았다. 어떤 일에 대해서 바보가 돼야 살아남을 수 있구나.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지난날에는 스펀지 같이 학습능력이 탁월한 인재들에게 주로 기회가 주어졌다면, 이제는 ‘꿈꾸는 현명한 바보’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고 생각한다.
꿈꾸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바보처럼 꿈꾸고, 바보처럼 상상하고, 바보처럼 모험해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바보 존(ZONE)’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반드시 '바보 존'을 찾아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뚝심 있게 바보로 살아야 한다.
이 글을 다 읽고 나서도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냐고 묻는다면, 정말 축하한다.
당신은 이미 바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