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에 '주제넘은 서점'을 발견하다!
2023년 6월 6일 제주 여행 1일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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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따라 제주 넘은 이야기 ① (brunch.co.kr)
이전 글 말미에 ‘돌발적이고 즉흥적이며, 흥분되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며 타자질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정말 당황스럽게도 그 바람(?)이 단 1시간 만에 실제로 이뤄졌다.
지금은 전혀 예상치 못한 해프닝에 서둘러 두 번째 카페에 자리를 잡은 시점이다. 장소를 먼저 설명하자면, 이곳은 ‘포레스트’라는 애월읍의 카페인데 조금 전 점심을 먹은 곳(*소길역)에서 영수증을 가져가면 무려 반값(50%)을 할인해 준다고 하여 냉큼 왔다. (바닐라 라테를 단돈 2,000원가량에 먹고 글 쓰는 공간까지 얻다니.) 솔직하게 한낱 동네 카페 느낌일 줄 알고,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야외 공간도 있을 만큼 큰 규모를 자랑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화이트와 우드 톤의 카페가 더욱 아름다웠을 것 같다. 제주의 8할은 역시 날씨다.
스타벅스에서 남은 음료를 한 입에 쪽 빨아먹은 다음 차에 탔다. 지극히 J 성향인지라, 꽤 마음이 불편했다. 다음 행선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니, 이럴 수가. 침착하게 네이버를 켰다. 검색창에 뻔하게 ‘애월 가볼 만한 곳’이라고 두들기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야심 차게 생각해 낸 검색 키워드는 절망스럽게도 이랬다. ‘애월 비 오는 날 가볼 만한 곳’.
글을 쓰는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는 최악의 검색이었지만, 주욱 스크롤을 내리다 보니 눈에 들어온 한 곳이 있었다. 바로 ‘더럭 분교’였다. 현재는 더럭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뀐 것 같은데, 관광객들에게 사진 스폿으로 퍽 유명한 곳인 것 같았다. 서서히 비가 그쳐가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머릿속에선 ‘무지갯빛 분교 정원에 앉아 여유롭게 글 한 편을 써 보는 게 어때?’라는 생각이 계속 날 유혹했다. 그리고 ‘더럭’이라는, 무엇인가 시골스럽고 정겨운 느낌의 단어도 발길을 이끄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차를 몰고 간 더럭 분교의 교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실제 아이들이 수업을 받고 있는 시간(대략 16시 이전까지)에는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던 것이다. 공휴일이어서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문은 결국 열리지 않았다. 깜빡이는 비상등 소리처럼 적잖이 조급하고 당황했지만, 이왕 온 거, 주변이라도 걷자 싶어 차에서 내렸다. 그렇게 나는 예상치 못하게 ‘주제넘은 곳’을 발견하게 됐다.
기억력이 좋은 혹자는 해당 연재 시리즈의 글 제목이 기억날 터다. ‘발길 따라 제주 넘은 이야기’. 딱히 주제는 없지만 시시콜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제주 넘은’이라는 워딩을 떠올렸는데, 소름 돋게도 첫 글을 올린 직후에 발걸음이 닿은 곳이 바로 이곳, ‘주제넘은 서점’이었다.
딸랑-.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주인으로 보이는 40대의 마른 체격의 남자가 책을 읽고 있었다. “저, 잠시만 둘러봐도 괜찮을까요?” 조심스레 묻자, 그는 “그럼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 볼 때와 다르게 서점 공간은 굉장히 협소했다.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분명 성인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찰 2평 남짓한 공간이었을 터다. 그러나 협소한 공간과는 다르게 책들은 주제별로 정교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보통 여느 서점의 경우, 책 분류는 ‘소설’, ‘자기 계발’, ‘수험서’ 등처럼 책의 성격과 유형대로 진열 돼있기 마련인데, 이곳 서점은 ‘의미 있는’, ‘달리기’, ‘혼자만의 시간’과 같은 형용사 혹은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책이 분류되어 있었다.
천천히 서점을 둘러봤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공간 자체가 크지 않아 내 구경은 얼마 가지 못하고 시선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슬슬 나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책을 읽던 그가 톡톡 내 어깨를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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