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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넬로페 Apr 11. 2023

Cliché - Kid Milli 소감

이 앨범은 Kid Milli(이하 키드밀리)와 dress(이하 드레스)가 2021년도 4월 27일에 발매한 앨범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는 작년 최고의 힙합 앨범으로 이 앨범을 꼽고 싶다. 드레스는 YG의 테디가 설립한 'THEBLACKLABEL' 소속이었고, 현재는 스타쉽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는 프로듀서로 괜찮은 비트를 들려준다고 생각 중이었던 프로듀서였다. 그러나 클리셰에서 그가 보여준 능력은 엄청나게 뛰어났다.  개인적으로는 비트메이커 기반의 앨범을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Lil Moshpit의 'AAA'도 비트가 좋았다는 것에 반발하는 것은 아니지만 래퍼들이 더욱 돋보였고(물론 돋보이게 조절하는 것도 프로듀싱의 실력이다) 앨범의 메인이 비트라는 느낌은 딱히 없었다. 코드 쿤스트의 앨범도 비슷한 감상이었다. 다만 이토록 비트에 집중하게 되고 놀라움을 멈출 수 없었던 사운드는 XXX의 앨범들 이후로 오랜만이었다. 필자가 FRNK의 비트를 굉장히 선호하는 것도 맞지만, Cliché는 합작 앨범임에도 드레스의 비트가 키드밀리의 랩을 압도한다는 느낌도 간혹 받을 정도로 비트 퀄리티가 뛰어나다. 여태 발매했던 드레스의 작품에선 큰 느낌을 받지 못했지만, 실력을 숨겼던 건지(자의든 타의든) 갑자기 성장을 한 것인지 드레스의 단독 앨범 같은 인상도 줄 정도로 비트의 비중이 높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키드밀리의 랩이 별로다, 혹은 힙합 네티즌들의 표현에 따라 짜치다 혹은 구리다는 아니다. 다만 키드밀리의 랩은 일종의 '가불기' 상황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애초에 앨범 이름이 Cliché(이하 클리셰)인 이유는 키드밀리가 예전 스타일로 돌아감을 앨범 이름에서부터 암시함을 이야기한다. 정규 1집 'AI, THE PLAYLIST'를 시작으로 여러 EP 들과 2집 'BEIGE 0.5'까지 본인의 스타일을 변화시켜왔다. 키드밀리의 넓은 스펙트럼에 감탄하는 팬들도 있었으나 대다수의 팬과 대중들은 그의 독특하고 자유로운 플로우와 독보적인 박자 감각에서 호감을 느꼈기 때문에 불만을 표시해왔다. 키드밀리의 스타일 변화가 구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필자 또한 예전의 스타일 특히 그의 데뷔부터 쇼미더머니까지의 커리어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아쉽다는 느낌은 계속 받았다. '예전 스타일로 돌아와달라'라는 수많은 평가에 키드밀리는 클리셰에서 다시 한번 팬들이 그토록 부르짖던 예전 것을 하고야 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만들어진 이 앨범의 랩은 안타깝게도 키드밀리의 짜증 섞인 가사들과는 반대되게 '구관이 명관이다'라는 평가와 어울린다. 우리가 기대했던 키드밀리의 랩과 적당한 트랜디 함을 섞은 뒤 래퍼들의 명작이 나오는 구간인 '회의'에 대한 주제이다. 래퍼의 명반은 주로 분노 혹은 회의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앨범들이 주를 이루는데 이 앨범은 그 사이 어딘가에 주제를 주고 있다. 요약하면 돌아온 키드밀리의 적절한 랩, 참신하고 빛나는 드레스의 비트, ron(이하 론)의 피처링으로 만들어진 킬링 파트가 적절히 섞여 아주 괜찮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AI, THE PLAYLIST'를 여전히 키드밀리의 최고로 꼽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클리셰가 키드밀리의 인간적인 성장과, 실력적인 성장, 사운드와 프로듀싱의 완성까지 합쳐져 더욱 성장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트랙리스트

1. V I S I O N 2021 (Feat. ron)

2. Bittersweet (Feat. ron)

3. Challenge

4. Blow

5. Citrus

6. Face & Mask (Feat. ron)

7. Intro

8. Leave My Studio (Feat. 선우정아)

9. Cliché

10. Bankroll (Feat. Okasian)

11. Midnight Blue (Feat.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12. Outro


    이 외에 피지컬 앨범에만 수록된 13번 Downtowner와 14번 Interview.01이 있다. 이 앨범에 쟁점 중에 하나는 트랙 순서인데 피지컬 앨범에 수록된 순서와 음원 사이트에 공개된 트랙 순서가 다르다. 그 이유는 앨범의 특이한 제작 방식 때문에 생긴 것인데, 일반적인 앨범처럼 완성된 비트에 랩을 작사하는 것이 아닌 키드밀리가 아무 비트에 랩을 해서 드레스에게 넘기면 드레스가 트랙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앨범이다. 이 제작 방식이 앨범의 특이함을 만들어 낸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제작되어서 그런지 키드밀리와 드레스 사이에 원하는 트랙 순서가 달랐다고 한다. 따라서 음원 사이트에 공개된 순서는 음악적, 사운드적으로 유기성을 신경 쓴 순서이고, 피지컬 버전은 가사의 유기성을 신경 쓴 순서라고 한다.


피지컬 버전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Leave My Studio (Feat. 선우정아)

2. Face & Mask (Feat. ron)

3. Intro

4. Challenge

5. Bittersweet (Feat. ron)

6. Bankroll (Feat. Okasian)

7. V I S I O N 2021 (Feat. ron)

8. Cliché

9. Blow

10. Midnight Blue (Feat.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11. Outro

12. Citrus


    개인적으로 두 가지 순서 모두 선호하지만 평소에 아웃도어로 들을 땐 음원판의 순서로 듣는 편이고, 앨범을 전체 다 듣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여유로울 땐 피지컬 순서로 따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서 듣는다. 지난 리뷰에서 느낀 것은 앨범의 모든 곡의 후기를 작성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Flume의 앨범은 주로 사운드적인 것을 신경 쓰기 때문에 앨범의 템포 조절을 위해, 흔히 말하는 쉬어가는 트랙,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트랙, 앨범의 사운드적 연결을 위한 트랙들이 존재하고 이것들에 일일이 후기를 작성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클리셰에는 딱히 그런 트랙은 없으나, 할 이야기가 많은 트랙과 적은 트랙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에 할 이야기가 많은 트랙에 집중해 보고자 한다.


V I S I O N 2021 (Feat. ron)

https://youtu.be/GfmlCNFnpVc

    음원 공개 기준 트랙 리스트의 1번 곡이다. 인트로와 키드밀리의 랩을 준비하는 추임새부터 앨범의 성격이 느껴지는 곡이다. 개인적으론 드레스의 비트 성향이 코드 쿤스트의 감성적인(1집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임을 알린다) 비트와 FRNK의 무섭도록 유별난 스타일의 중간에 있는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조금 더 FRNK 쪽으로 기울어진 특이함과 새로움을 선사하는 성향인 것 같다. 모든 악기의 구성이 힙합에서 흔히 쓰이는 것들은 아니고, 돌아온 과거의 키드밀리의 랩이 적당히 섞여 앨범의 포문을 열어준다. 또한 이 앨범의 킬링 파트를 모두 맡고 있는 ron의 절묘한 피처링이 빛난다. 론은 이 앨범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는데, 얼마 전 발매된 'BEZNO'에서도 탁월한 피처링을 보여줘 요즘 굉장히 눈여겨보고 있는 보컬이다. 굉장히 보기 힘든 타입의 보컬과 찾기 힘든 비트가 절묘한 조화를 이뤄 새로운 느낌을 준다. 트랙의 전반부는 1집보다는 힘을 뺀 랩과 가사, 드레스의 특이한 비트에 기대를 하면서 듣다가 ron의 피처링부터는 새로운 경지로 넘어가는 느낌이다. 특히 그의 한글인지 영어인지 알기 힘든 신비로운 발음법과 보이스 컬러가 드레스 특유의 분위기를 더욱 듣기 좋게 만든다. 확실히 음원 사이트의 순서는 드레스가 사운드적 유기성을 신경 써서 정한 순서인 만큼 트랙 후반부는 다음 트랙에 대한 기대감을 충분히 일깨운 것 같다.


Bittersweet (Feat. ron)

https://youtu.be/Rl3uA5TG4zY

    이 트랙이 키드밀리가 그토록 외면하고, 팬들이 그토록 찾던 예전 스타일의 키드밀리와 잘 어울리는 트랙이지 않을까 싶다. 1집과는 다르지만 그것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비트와 키드밀리의 벌스는 첫 번째 트랙의 기대감을 충족 시키다 못해 그것을 넘은 것 같다. 중간중간 곁들인 피아노와 트랜디 한 비트가 일단 귀를 즐겁게 한다. 힙합이라기보단 퓨처 베이스에 가까운 비트를 힙합으로 데려오는 키드밀리의 랩은 여전히 스킬 풀하고 화려하다. 앨범의 가사적 유기성으로 볼 때 이 앨범은 랩 스타로서의 성공과 과시 그리고 그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과 회의, 그것에서 나오는 고민을 마주하고 종반부에 그의 개인적인 고백과 인간적인 면모로 끝나는 앨범의 서사에서 성공과 과시, 공허함과 회의 사이에 있는 트랙인데 주제와 상반되는 신나는 비트와 괜히 불안한 가사의 합이 정말 좋다고 느꼈다. 론은 이 트랙에서조차 트랙을 흔들어 놓는데 후반부의 벌스와 훅은 그의 정체성과 강점을 굉장히 잘 보여준 것 같았다. 개인적으론 키드밀리, 드레스 그리고 론의 3자 합작이라고 해도 괜찮을 만큼 론의 퍼포먼스가 파괴적이었다고 생각한다.


Challenge

https://youtu.be/XC1ZZvgIDcg

    드레스의 비트는 이 앨범에서 한 번씩 변주, 혹은 특이한 요소를 더 추가해 같은 비트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방식을 보여준다. 그중 이 트랙이 그 이중성이 아주 잘 드러나 기억에 남는 트랙이 아닌가 싶다. 앨범을 관통하는 스토리 중 랩 스타의 삶에 따라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이 쏟아지는 트랙으로, 그것들이 분노에 가깝게 표현되고 변화하는 감정을 비트로도 풀어낸 드레스의 비트 메이킹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키드밀리의 가사가 이 앨범이 나오기 전 그의 행보와 맞추어 보았을 때 굉장히 다가오게 된다. 키드밀리는 지속적으로 자신의 예전 스타일을 원하는 팬들과의 잡음, 그리고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과 예전 스타일의 차이로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요즘 굉장히 핫한 주제인 '싱잉 랩이 힙합인가?' 혹은 '싱잉 랩이 랩이긴 한 것인가?'와 '멈블 랩인 그냥 랩을 못하는 것.' 혹은 '멈블랩이 힙합을 망치고 있다.' 등과 같은 명제들 사이에서 고민하던 키드밀리의 감정이 잘 느껴지는 가사다. 키드밀리는 2집과 여러 EP 들에서 다양하고 퀄리티 있는 시도를 해왔는데 대다수의 반응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뤘고, 그 외에 개인적으로 랩 스타가 되자 보이는 풍경이 썩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 변해버린 주변인들에 대한 회의 섞인 분노가 굉장히 인상적이다. 분노에 회의가 섞여있다 보니 나도 같이 분노하게 되기보단 키드밀리에 대한 동정심이 생길 정도로 솔직한 트랙이다.


    이후에 이어지는 Blow와 Face & Mask에서도 다른 방식으로 비슷한 감정들을 토로한다. 이전의 키드밀리의 가사보다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더욱 솔직해졌다고 느꼈다. 특히 Face & Mask에선 지금의 팬데믹 사태와 그 사이에서의 자기의 삶을 풀어낸 가사를 갖고 있는데, 자칫하면 팬데믹 시기에나 공감되는 그저 그런 가사가 될 수도 있는 주제를 키드밀리의 내적 고뇌를 풀어내는 소재로 사용했다. 이는 트렌드에 따르는 가사와 클래식을 따르는 것 중간에 있는 가사로써,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Blow와 같은 트랙은 앨범의 중간중간에 들어가 유기성을 채워주는 윤활유 역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피지컬 앨범 순서와 음원 사이트의 순서의 차이로 약간 붕 뜬 느낌을 준다. Citrus와 사운드적 유기성은 주는 것 같으나, 오직 그뿐이라고 생각한다.


Citrus

https://youtu.be/ngr9kV1ReO8

    이 트랙이 아마 팬들이 말하는 바뀐 스타일을 말하는 것이리라. 흔히 싱잉 랩으로 일컬어지는 랩의 형태를 띠고 있고, 요즘 유행하는 장르와 랩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편안한 사운드와 반복되는 멜로디, 약간의 랩을 합친 노래로 Post Malone의 Circles와 비슷한 느낌 또한 준다. 필자는 이 트랙을 다분히 트렌드를 인식한 사운드와 개인적인 키드밀리의 Want로 추가된 트랙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익숙한 사운드와 딱히 특별함을 꼽기는 힘든 키드밀리의 사랑 가사와 키드밀리가 지속적으로 시도했던 싱잉 랩의 장르이기 때문이다. 작품적으로는 조금 아쉽고 앨범의 서사나 사운드와도 약간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데일리 트랙 리스트에 적당히 스며들어 돌려듣는 곡으로 적합하다. 장르나 랩을 떠나서 그저 그런 노래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Intro 

https://youtu.be/cNUip3RNTa8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트랙을 뽑자면 이것일 것이다. 사실 인트로 특성상 앨범의 시작을 담당함으로써 후에 이어질 트랙들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겨야 한다. 그러나 이 트랙은 그냥 단독 트랙으로 놓고 봐도 굉장히 고평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타이틀인 Bittersweet과 V I S I O N 2021과 같은 트랙에서 보여줄 참신한 사운드를 먼저 체험하게 되고, 가사적으로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앨범의 맛보기 수준이 아닌 흥분과 감동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인트로의 역할을 감히 넘었다. 안타깝게도 어느 순서로 듣든 이 인트로는 아쉽다. 그 이유는 이 트랙이 아닌 다음 트랙에 있다. 피지컬 앨범 순서로 보기에는 중간 Face&Mask와 Leave My Studio를 이어주기보단 오히려 앨범의 전 후반부를 선을 긋는 듯 갈라버리는 인상을 주고, 발매 순서로 보면 (필자의 편견일지 모르겠지만) 1번이 아닌 3번 트랙에 위치해서 Leave My Studio와 Face&Mask를 버려버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이는 전적으로 이 트랙이 너무 좋다는 문제에서 기인한다. 론이 이 앨범을 찢어버린 트랙들 중에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며, 키드밀리의 자칫 무미건조하다고 느껴지는 랩도 주제와 가사, 그리고 비트가 합쳐져 수많은 감정에 휩싸이게 한다. 드레스의 사운드 총괄 능력도 아이러니하게 인트로에서 가장 빛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차라리 조금 더 큰 볼륨으로 가져가서 하나의 작품적인 트랙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이동진 평론가의 영화 '캣츠'의 한 줄 평을 조금 뒤틀어 "왜 인트로였을까"로 요약하고 싶다.


    Leave My Studio는 평가를 내리기에 앞서 굉장히 특이한 트랙이며, Midnight Blue와 어떤 관계 일지 궁금해지는 트랙이다. 밴드셋으로 이루어진 음악이고, 키드밀리의 싱잉 랩이지만 평범한 랩의 비중이 꽤 있다. 또한 우리에게 흔히 알려진 보컬 '선우정아'가 피처링에 참여했다. 기대했던 대로 선우정아의 보컬은 탁월했다. 가사 측면에선 최대한 이 앨범의 내러티브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던 트랙이라고 느껴졌다. 주객전도의 느낌도 어느 정도 있기는 했다. 워낙 탁월한 보컬리스트이고, 트랙 내에서 파괴력이 강하다 보니 피처링과 곡 주인이 반전된 느낌도 이따금씩 받는다. 그 때문에 내러티브의 전달이 자꾸 희석되는 느낌이 들었다. 곡의 완성도나 전개에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없으나, 과연 이 트랙이 가진 포지션에 맞냐는 질문에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가사적 전달을 중요시한 피지컬 앨범 순서에선 인트로의 자리를 뺏고 1번 트랙의 자리를 차지했는데, 이 앨범의 핵심 내용을 전달하는 것에는 성공했을지 모르겠으나 그러한 주제 의식의 전달로 후에 올 대부분 트랙의 가사가 대부분 예상 범위 내로 들어오게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피지컬 앨범 순서에서도 이런데 실 발매 순서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더 이상 서술하지 않겠다. 앨범의 독특한 제작 방식을 탓하는 것인지, 해명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개별적의 곡 완성도보단 구성이 계속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이 트랙에서 가장 심하다고 느꼈다. 그것을 제외하고 개별적인 곡으로 봤을 때는 키드밀리의 음악 취향이 향하는 방향을 팬들에게 잘 설득할 수 있는 곡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에 비해 아쉬운 무특징의 랩과 탁월한 보컬의 대비가 주객전도의 느낌을 주는 것은 문제이다.


https://youtu.be/8834xmN-VoM

    흔히 타이틀곡, 외국에선 리드 싱글이라고 부르는 곡인 Cliché의 차례가 되었다. 아마 이 앨범과 동명을 가지게 된 이유도 키드밀리가 전달하고 싶은 모든 것이지 않을까. 한마디로 주제가 가장 잘 표현되었다. 랩 스타로서의 성공, 그에 따라오는 부정적인 것들과 앞으로의 행보까지 모든 게 담겼다. '예전 스타일'을 요구하는 팬들에 대한 메시지를 '예전 스타일'로 하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다가왔다. 필자는 랩 스타의 삶을 살아보긴커녕 스스로 가사를 써본 적 없는데, 드레스의 차갑게 변화하는 비트 변주와 키드밀리의 비난과 자조가 마구 뒤섞인 가사와 랩은 고독한 앨범 아트와도 잘 어울린다. 이러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 자체가 이 곡의 음악적인 성공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이 앨범의 킬링 포인트가 론인 것은 동의하지만 이 트랙엔 피처링 없이 홀로 트랙을 이어가는 것이 진정성을 더했다. 가끔 진지한 삶의 이야기에 트랙에 뜬금없는 피처링의 추가로 서사를 어그러뜨리는 시도를 목격하곤 하는데, 그런 점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대중과 예전무새 팬들에게 한마디 하는 것이 통쾌해지기까지 한다(필자 또한 예전무새까진 아니라도 예전 스타일이 더 좋다는 것에 동의하는 입장이었으나, 이 트랙을 몇 번 돌려들은 뒤 키드밀리에게 설득된 것 같다). 


    뒤에 따르는 Bankroll도 어느 정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클리셰에선 주변에 대한 실망과 자신과 다른 세상의 의견에 부딪혀 굴복한 모습을 보여주는 트랙이었으나, Bankroll은 정반대의 흐름으로 정석적인 힙합의 가사를 보여준다. 또 이러한 트랩적 가사를 주류로 끌어낸 오케이션의 피처링은 절묘하다. 물론 이 트랙의 비트, 아니 이 앨범 전체의 비트가 붐뱁이나 트랩 중 하나를 꼽기 힘든 오히려 어떤 장르라고 참 말하기 힘든 장르적 특성의 혼합을 보여주지만 오케이션은 이 바닥에서 구른 시간이 헛됨이 아닌 듯 트랙에서 날아다닌다. 본인의 표현대로 잘생긴 목소리가 트랙을 휘어잡는다. 피처링에 대한 극찬이 이어졌지만, 주객전도의 느낌은 없다. 키드밀리 특유의 편하게 하는 듯하지만 굉장히 스킬 풀하고 복잡한 랩이 눈에 띄며 괜찮은 훅과 합쳐져 머리에 잘 남는 트랙이었다. 또한 드레스의 비트도 빼놓을 수가 없는데, 선술 했던 장르적 혼합이 굉장히 잘 이루어진 듯하다. 락의 악기 구성으로 시작해, 오케이션의 피처링엔 급박하게 트랩으로 꺾었다가 청자 몰래 다시 원래 비트로 흐름을 바꾸는 복잡한 구성을 가지고 있는데 사운드적으로 억지스러운 부분 없이 굉장히 자연스럽다. 후반의 기타 솔로가 너무 좋아 조금 더 이어졌으면 하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사운드적 구성을 신나는 비트로 두 래퍼의 랩과 버무리니 굉장히 좋은 트랙이 나온 것 같다. 또한 이 트랙은 피지컬 앨범으로 들어도 신나는 곡들 사이에 배치되 앨범의 흥을 돋우어 순서적으로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필자는 음원 사이트 순서에서 의문을 품고 약간의 시비를 걸고 싶은데, 피지컬 순서는 사운드적으로는 아니더라도 가사적으로는 이어지고, 음원 사이트 순서에서도 이 트랙 이전까진 나름 사운드적으로 흐름이 괜찮다고 느껴졌는데 Bankroll의 등장은 뜬금없다 못해 몰입을 깬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후에 이어질 트랙들과도 납득이 안될 순서 배치라고 생각한다. 늘 피지컬 앨범 순서대로 듣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으나, 보통은 음원 사이트에 발매된 순서로 듣기 마련인데 억지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대중들이 키드밀리의 앨범을 돌려듣지 않고, 거기서 피지컬 순서로 따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들어 듣는 사람은 더 희귀할 텐데 조금만 더 음원 배치 순서를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https://youtu.be/vWuiSvJELEo


    Midnight Blue와 Outro는 늘 붙여서 같이 듣곤 한다. 일단 키드밀리에게 동정심이 들 정도로 솔직한 Outro와 완전히 반대 성향의 가사이지만 동정심이 들 정도로 사랑의 결핍을 암시하는 Midnight Blue는 비슷한 연민의 감정을 전달하며 사운드적으로도 잘 이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클리셰에서부터 가시적으로 암시해온 사랑의 결핍은 이 트랙에서 극에 달한다. 또한 그러한 감성을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이 포스트락으로 잘 풀어냈다. 키드밀리가 트랩에서 날아다니던 시절에는 이런 음악에 그의 목소리가 담길 줄은 상상도 못했으나, 그가 살아오면서 느껴진 회한이 앨범 전체에 물들자 이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이 앨범의 모든 서사는 마지막 두 곡을 설득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마음에 와닿는다. 다만 Midnight Blue에선 아직 흔히 말하는 속세에 물든 사랑의 형태를 보여주곤 하지만, Outro에서 느껴진 솔직함은 이 앨범의 총평에 영향을 줄 정도로 아름답게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솔직함은 이따끔 부담이 되어 리스너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있으나, 피지컬 순서 기준 처음부터 이어져오는 과한 과시(이 또한 회의. 고민 그리고 슬픔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이라고 판단된다)와 다양한 사랑에 대한 표현이 끝까지 이어져 오기 때문에 부담 없이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키드밀리의 트랙 중 이다지도 솔직한 트랙이 있었나 싶다. 그리고 키드밀리의 앨범에서 랩 스킬 때문에 어느 정도 희생되었던 스토리에 대한 부분에서 굉장히 발전했다고 느껴지는 두 트랙이었다. 또한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의 음악은 뜬금없이도 키드밀리의 앨범에서 감동이었다. 안다영의 보컬은 여전히 소름 끼칠 정도로 독특하며, 밴드 이름이 생각나듯이 귀에 맴돌아 떠나질 않는다. Midnight Blue에서 미리 눈치챘었던 그녀와 래퍼의 서사 전달의 콜라보는 창모의 'Underground Rockstar'에서도 파괴적이었다. 이 트랙뿐만 아니라 앨범 전체에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곳을 뽑으라면 단연 안다영의 보컬 이후 이어지는 앨범과 곡의 황혼이다. 또한 그렇게 이어간 감정선을 마무리하는 Outro 또한 감동을 자아내기엔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이 앨범은 누누이 말했듯 서사 즉, 스토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필자는 무조건 피지컬 앨범 순서로 듣기를 권장하는 바이다. 정식 발매 순서는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을 전달한다. 사운드적인 연결도 딱히 못 느껴지고 서사는 망가져버리기 때문에 앨범 전체를 듣기로 마음먹었다면 꼭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만들어서 들어보길 바란다. 스토리가 EP나 믹스테이프가 아닌 정규 앨범으로서 필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이 존재한다면 당연히 고평가의 요소가 된다. 다만 어쭙잖게 전달하려다 오히려 앨범의 몰입을 망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클리셰는 앨범을 지속적으로 돌려듣게 하는데 좋은 영향을 주었고, 이것이 큰 점수가 되어 이 앨범을 명반으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평론, 후기, 리뷰가 이 앨범에서 키드밀리의 퍼포먼스가 부족함을 지적하는데, 필자는 오히려 무미건조한 키드밀리의 랩이 이 앨범의 회의와 성공 이후의 공허함을 표현하는데 더 잘 어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선우정아, 오케이션,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그리고 론까지 황금 피처링 라인업 속에서 앨범이 빼앗길 수도 있었음에도, 충분히 집주인임은 보여주는 최소한의 랩 퍼포먼스는 채웠다고 생각한다. 다만 저런 평가에 완전히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키드밀리의 랩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음은 여러 작업물에서 느꼈으나, 그의 음악적인 완성도에 못 따라온 것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물론 클리셰라는 이름에 맞게 일부러 그러한 느낌을 연출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모든 트랙에서 굳이 그래야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이러한 것은 추측의 영역이니 제쳐두고, 단순히 그의 랩에만 집중하자면 솔직히 아쉬움은 있다. 이 앨범에서 키드밀리는 중심을 꽉 잡아주는 기둥의 느낌은 주지만 참신함, 새로움, 사운드적 즐거움은 드레스와 론의 피처링에서 온다. 앨범 전체를 주의 깊게 들을 때는 그의 서사가 집중되지만, 곡을 따로 듣거나 주의 깊게 듣지 못할 때는 서사와 함께 그의 랩도 희석되어 기억에 잘 안 남는 문제 또한 여기서 오는 것 같다. 우리가 키드밀리의 트리키한 랩에 익숙해진 것과, 이 앨범에서 그의 랩이 실제로 너무 무미건조한 점 두 가지가 합쳐져 키드밀리에 대한 아쉬움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충분히 가사적으로 발전했고 그것을 전달하는 내러티브 전달력이 뛰어나졌으며, 그의 랩 스킬이 제자리걸음이거나 퇴보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의 랩으로 저평가될 앨범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명반의 위치에 오를 잠재력은 충분히 있었으나 서사에 집중한 나머지 아쉬워진 랩, 뒤죽박죽인 앨범 순서 이 두 가지가 명반이 되기엔 모자람을 만들어 내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수작 이상 명반 미만의 명반 문지기 같아진 포지션은 앨범을 수정하더라도 정확하게 정해진 트랙 리스트와 랩적으로 더 새로운 시도를 적용했었다면 충분히 명반의 자리를 꿰찼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자타 공인 명반은 아니지만, 필자는 주제에 굉장히 공감했고 사운드적으로 너무 만족했기 때문에 명반이라는 기차가 있다면 꼬리 칸엔 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키드밀리는 'BEIGE 1' 앨범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앨범에 대한 기대감이 충분해지게 된 이유도 클리셰 덕분이다. 선공개 곡인 'BENZO'와 'Sariru'는 아직 앨범의 서사 등은 알 수 없지만 클리셰의 랩보다 더 자극적이고 화려하다는 것에 대한 암시는 된 듯하다. 그가 앞으로 낼 앨범들은 더욱 발전해 있길 바라며 글을 줄인다.


"명반에 오를 잠재력은 충분하나, 곡의 구성이라는 한가지 이유로 사운드와 서사 모두를 꼬아버린 아쉬움이 가득한 작품"


Kid Milli - Cliché. 7/1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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