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겉핥기 전문가가 수박을 쪼개 개 된 사연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싸지른 글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갑자기 어깨가 올라가며 '나 생각보다 글 잘 쓸지도? ㅋㅋㅋㅋ' 하는 생각에 잠깐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몇 분 있으니까 갑자기 팍 식더라고요. 갑자기 브런치를 탈퇴하고 숨고 싶고, 글이 부끄럽고, 이제 다시는 적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수익 신청을 했습니다(?). 참 양가적인 감정이네요.
저는 이런 걸 우매함의 봉우리라고 부릅니다. 저작권 개념이 희박해서 함부로 사진을 퍼오지는 않았으나 검색하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더닝-크루거 효과 그래프(우매함의 봉우리), 흔히 말하는 짤이 있습니다.
무언가 시작한 지 얼마 안됐는데 '어? 나 좀 잘하는데? 재능 있나?' 하며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반대로 실력자들은 '난 아직 멀었어, 대단한 사람들은 세상에 널렸는걸?' 하면서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중에서도 우매함의 봉우리란 가장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자신감이 뿜뿜 하지만 지식과 경험은 가장 부족한 초창기를 말합니다.
제가 ADHD가 있다 보니 하루에도 수많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접는데요, 그렇다 보니 우매함의 봉우리를 매일 같이 올라갔다 내려옵니다. 더군다나 요즘 세상은 워낙에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좋아졌고, 그 정보를 알기 쉽게 요약해 주는 AI도 종류 별로 대기를 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굉장히 심도가 깊은 분야임에도 우매함의 봉우리에 도달하기가 너무 쉬워졌어요.
그런데, 더닝 크루거 효과에서 우매함의 봉우리 다음은 절망의 계곡입니다. 조금 더 배우고, 난이도가 올라가면서 '나는 대체 아는 게 무엇인가.' 하면서 자신감이 꼬라박는 단계이지요. 저는 보통 이때 무언가를 때려치웁니다. 부끄럽기도 하고, 어려워지기도 하고, 노력은 하기 싫거든요.
하지만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몸에 좋은 게 입에 쓰다고 하던가요. 사실 우리에게 진짜 중요한 건 절망의 계곡이었습니다. 본인의 무지함을 깨닫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나긴 세월을 통해 쌓아 올린 지식의 무게를 온몸으로 느끼고 자신감을 잃어야만 더 나아갈 수 있는 거였어요. 우매함의 봉우리는 말 그대로 우매합니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알려진(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델포이 신전에 쓰여있는 문구라고 하더라고요) 너 자신을 알라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너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멍청이임을 알고 더욱 정진하라는 것이지요.
내가 어떤 분야가 마음에 들었다면 우매함의 봉우리에 안주하며 '캬~ 나 사실은 개쩔지도?!' 하면서 자위하지 말고 고통을 마주하고 스스로가 똥멍청이빡통임을 인정한 체 더욱 정진하면 그 분야에서 비로소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알아서 겸손해지는, 즉 익은 벼가 고개를 숙이는 현상이 발생하는 거였습니다. 우매함의 봉우리에서 산다고 해서 결코 마음속이 충만해지질 않아요. 자신도 무의식적으로는 아는 거예요. 여기에 있는 나는 사실 바보라는 것을.
약간은 변태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런 맥락에서 저는 요즘 고통을 즐기고 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취미가 점점 어려워지고 복잡해지고 버거워진다면 내가 제대로 하고 있고, 계속 이렇게 열심히 하면 비로소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원동력을 다시 얻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매함의 봉우리 위에서 공중제비 돌며 살던 예전과는 감정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우매함의 봉우리 위에서 안주하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줄 알고 허영심을 채우며 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잃어버린 시간, 기회, 돈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지금처럼 절망의 계곡에서 빠져나오려 허우적대는 지금이 더욱 행복합니다. 몸과 머리는 피로하지만, 마음은 편안하고 정신은 올곧으며 즐기는 취미와 하는 일이 재밌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봉우리 위에서 춤추는 분들은 힐끗힐끗 보이는 계곡으로 뛰어내리기가 참 무서우실 거예요. 하지만 뛰어내리셔야 합니다. 줄 없는 번지점프를 해야만 비로소 마음의 빈 구멍을 매울 수가 있더라고요.
이것저것 손은 대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건 없고, 시작하고 접기를 반복하시는 분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마음에 난 빈 구멍의 공허함을 채우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분들. 여러분이 하셔야 될 건 내가 재능 있는 분야를 찾아서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전문가가 되길 비는 게 아니라 눈 질끈 감고 줄 없이 하는 번지점프입니다.
모두들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 행복하고, 공허함을 채우고, 절망의 계곡을 지나고 나면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을 거예요. 다들 파이팅
ps. 낮에는 이렇게 긍정적인 글이 잘 나오는데 밤만 되면 우울증세가 심각해집니다. 이유 아시는 분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