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잘 쓰는 법

1. 단 책상에 앉아

by 박홍시

요즘은 글이 잘 안 나와요. 특히나 긴 글이 잘 안 나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긴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럴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걸 감안해도 글이 안 나와요. 예전에는 뭔가 할 이야기도 많고, 토로하고 싶은 감정, 글로 빼내고야 마는 생각, 누군가 보지 않더라도 남겨놓고 싶은 문구들이 마구 떠올랐는데 말이죠. 아무래도 제가 작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반증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동안 약간의 침울함과 생활을 함께 했습니다. 원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또 곧잘 써나갔는데 그게 잘 안되니까 할 줄 아는 것을 또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있었어요. 다시 글이 비 오듯 쏟아지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봤어요. 엄청 부끄러운 일이더군요. 뒤늦게 중2병이 와서 오글거리는 글들을 마구 싸버린 과거의 제가 원망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브런치 놈들은 글 재주도 없는 저를 대뜸 작가님이라며 등단시켜 버리는 바람에 중2병을 전 국민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스스로 박제를 해버렸어요.


하지만 계속 글을 읽어나가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과거에 굉장히 우울했구나."


대부분의 글이 우울함을 토로하고, 불안감을 배출하고, 공허함을 확장시킬 뿐이었어요. 저는 글을 쓴다기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을 토해내는 것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을 돌아보니 훨씬 제가 훨씬 안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물론 아직도 우울하고 불안하고 공허합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그 감정들이 참을 수 없이 차올라 몸에 있는 구멍이란 구멍으로 흘러나오던 최악의 시기는 지나간 것이었던 거죠. 돌이켜보니 왜 이렇게 힘들어했나 헛웃음이 나오기도 하고요.


이제 얼추 감을 잡았습니다. 지금부터 써내려 가는 글이 진짜 글이구나. 우울함의 몽정, 끓어오르는 불안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겁고 허연 김이 아니라 진짜 글이구나. 글이 안 나오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쓰레기가 안 나오는 거였어요.


열대야의 중심에서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놓고 즐기는 이 활자의 마력이란 참으로 달콤합니다. 감정에 쫓겨 쓰던 글과는 키보드 눌리는 느낌부터가 달라요. 저는 제가 할 줄 아는 것을 또 하나 잃었다고 좌절했고, 그 이후에야 본질을 알았습니다. 여러분들도 혹시나 예전에 하던 것들이 맘처럼 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세요. 그건 능력 하나를 잃은 것이 아니라, 이 글을 읽으시는 분 내면의 찌꺼기가 다 빠져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들고 나니 제가 예전에 썼던 글들도 귀여워 보이더라고요. 내면의 Toxic 함이 모두 빠져나가고 한동안 나오지 않던 글은 지금의 이 마음가짐과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앞으로의 저의 글을 위한 잠깐의 휴식기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혹시나 예전에 하던 것들이 맘처럼 되지 않는다고 해서 좌절하지 마세요. 더 큰 도약을 위해 잠깐 움츠리는 시간일 뿐일 수도 있습니다.


과거는 추억할 수 있고 미래는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힘든 것이겠죠. 하지만 모두 지나고 나면 아름다운 추억입니다. 예전 같지 못한 자신을 너무 타박하지 마세요. 그 조차 거대한 흐름의 일부이고 여러분이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길목 중 하나일 거예요.


요즘은 글이 잘 나옵니다. 브런치에 똥글이나 싸는 서버용량낭비유발자이자 작가호소인이지만, 최근에 얻은 깨달음 덕분에 글이 쑥쑥 잘 나와요. 저도 나름 성장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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