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작소설
[목차]
◑ 구약의 말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 프롤로그
♬ 기이한 죽음
♬ 다시 돌아온 죽음
♬ 안팎의 고립
♬ 저주파의 교란
♬ 사교의 주술
♬ 탈출
♬ 격리
♬ 붕괴
♬ 피란
♬ 에필로그
* <안팎의 고립> 줄거리
윤요섭은 성문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을 밀어붙이며 사람들 속에서 빠져나가려 한다. 그러나 뒤따라오는 것은 죽은 말과 괴물 같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성문을 향해 달려온다. 먼저 성문을 빠져나간 사람들은 성문을 닫기 위해 애쓰지만, 조금만 기다려 달라면서 성문을 달려가던 자들은 닫힌 성문을 두드리며 절망적인 상황에 갇힌다. 과거 윤요섭이 구해준 권 과장과 눈이 마주쳤지만, 이제 둘은 서로 다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성 안에선 말들과 변이된 사람들이 도시를 온통 파괴하고 있었고, 도시 곳곳은 공포로 가득 찬다. 구원은 없고, 끝없는 생존 싸움이 이어진다.
#1
물살처럼 흘러들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윤요섭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성문을 향해 몸을 밀었다. 그 틈에서 누군가는 서로를 밀치며 넘어졌고, 또 다른 누군가는 허둥지둥 길을 찾으려 했다. 누구 하나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그저 살아남겠다는 본능에 몸이 반응할 뿐이었다. 죽음이 뒤에서 목덜미를 겨누고 있었다.
뒤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마치 녹슨 쇠붙이가 무겁게 땅을 끌고 가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가 처음엔 희미했으나 점점 더 선명해졌다. 윤요섭은 그 소리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성문을 향해 다가오는 그것들은, 죽은 말들이었다. 이 말들은 이미 죽음을 맞았어야 했을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광기 어린 기세로 내달리고 있었다. 이들의 눈은 혈관이 터져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덩치 큰 몸에는 깊은 상처들이 곳곳에 나 있었다. 살점이 여기저기 찢겨 나간 자리에서 피와 고름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고통을 느끼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들의 움직임은 더 거칠고, 더 폭력적으로 변해 갔다.
이빨을 드러낸 채, 말들의 목덜미와 가슴에서는 쉼 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검붉은 피가 지면에 떨어져, 말들이 지나갈 때마다 그들의 발굽이 그 피를 끌어당겨 바닥을 물들였다. 윤요섭은 그 모습을 보고 숨을 억지로 삼켰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귀에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끝이 아니었다. 말들 사이에, 사람으로 보였던 것들이 있었다. 윤요섭은 순간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떨쳐냈다.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의 피부는 회색으로 바뀌어 있었고, 신체는 비정상적으로 뒤틀려 있었다. 팔은 너무 길게 늘어져 손이 땅을 긁으며 움직였고, 척추는 기괴하게 휘어 있었다. 그들의 눈은 사람의 눈이라고 할 수 없었다. 마치 짐승처럼 번뜩이는 그 눈은 아무런 이성도,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채 그저 굶주린 본능만이 깃들어 있었다.
그들은 길게 자란 손톱으로 땅을 긁어대며, 성문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땅에 그어진 자국이 더욱 선명해졌고, 그 소리마저도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의 공포를 부추겼다. 철저히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발소리는 성벽 안을 가득 채웠고, 윤요섭의 귀에는 그 소리가 마치 죽음의 발자국처럼 느껴졌다.
윤요섭은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그들이 점점 가까워져 오면서 주변 공기는 더욱 차가워지고, 그의 폐는 숨을 쉬지 못한 채 마치 무거운 돌을 얹어둔 듯 답답하게 막혀 있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닫아! 문을 닫아!”
성 밖으로 먼저 빠져나간 자들이 성문을 붙잡고 닫기 시작했다. 거대한 성문이 천천히 닫히며, 마지막 희망의 문턱을 가로막았다. 성 안에 남은 이들의 얼굴에는 절망이 서렸지만,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미 눈앞에 들이닥친 죽음 앞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문이 열려 있는 한, 그 광포한 괴물들이 성문을 뚫고 나올 게 뻔했다.
"더 열어야 해! 아직 남아 있어!"
성 안쪽에서 누군가 절규했지만, 그 소리는 바깥의 대다수에게 닿지 않았다. 아니, 설사 들렸다 하더라도 그들은 이미 귀를 닫고 있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본능적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살아남는 것, 그뿐이었다.
윤요섭의 시야가 혼란스러운 군중 속을 스치다가 한 지점에서 멈췄다. 닫히는 성문 틈으로 잠깐 보였던 성문 바깥쪽에 서 있던 한 남자, 권 과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시간이 멈춘 듯 주위의 혼란이 잦아들고, 오직 그와의 시선만이 날카롭게 이어졌다. 권의 얼굴은 흙먼지와 피에 얼룩져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눈빛 속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교차했다. 서로가 마주 본 그 순간, 두 사람은 알았다. 이미 선택은 이루어졌고,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권 과장은 문을 다시 열자고 외치지도 않았다. 입술이 떨렸지만,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그의 표정은 포기한 자의 얼굴처럼 무거웠다. 성문을 열어서 다른 사람도 구해야 한다고 요구할 권리는 그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도 윤요섭도 알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문을 다시 여는 것은 불가능했다.
권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그 역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있었고,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애절한 마음이 담겨 있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그는 그저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묵묵히 서 있었다. 윤요섭은 그 순간 자신이 권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와 똑같은 결정을 했으리라 짐작했다. 죽음의 문턱 앞에서 가족을 두고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윤요섭의 마음 한구석에는 섭섭함이 스며들었다. 자신이 그를 이끌고 오면서 목숨을 구해주었던 기억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그때 죽음을 무릅쓰고 말과 싸웠던 순간들이 떠오르며, 권을 살렸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 덕에 그가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니, 그에게 뭔가 아쉬움 같은 감정이 올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감정에 휩싸일 시간이 없었다.
‘그럴 만도 하지...’
윤요섭은 자신의 마음을 달래려 했지만, 그 위안은 썩 달갑지 않았다. 권은 가족도 아니고, 절친한 친구도 아니었다. 그저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일 뿐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권이 성문 바깥에서 다른 사람들처럼 문이 닫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해 보였다. 누구나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상황에서, 권도 자신의 목숨과 가족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윤요섭의 가슴 한구석에는 자꾸만 아쉬움이 남았다.
문득 그날의 기억이 윤요섭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권과 함께 도망치던 그날, 죽은 말들이 덮쳐오던 순간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때 윤요섭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죽음을 무릅쓰고 권을 구해내기 위해 죽은 말들과 혈투를 벌였다. 그는 목숨을 걸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말의 목덜미를 공격했고, 그 덕에 권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그 순간 권의 눈에는 살아남기 위한 간절함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그 눈빛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만큼은 윤요섭도 무언가를 지켜냈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했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권의 눈빛도, 그때 느꼈던 동료애도. 이제는 성문을 사이에 둔 서로 다른 입장일 뿐이었다. 권은 문 밖에서 안전을 찾았고, 윤요섭은 성문 안에서 또다시 죽음과 싸워야 했다. 구해준 권의 목숨이 이제는 윤요섭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씁쓸했다. 그를 구했지만, 결국 권은 윤요섭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씁쓸한 감상에 잠길 여유도 없었다. 다시금 들려오는 그 괴물들의 발소리가 윤요섭을 현실로 끌어냈다. 저 멀리서, 말들과 뒤틀린 사람들의 무리가 미친 듯이 성문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윤요섭은 급히 주변을 살폈다. 도망칠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몸을 이리저리 틀며 벗어날 수 있는 통로를 찾았다. 하지만 이미 다른 쪽에서도 죽은 말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피할 곳은 없었다. 절망감이 다시금 그를 짓눌렀다. 성문이 닫히기 전까지는 시간이 없었고, 지금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할 때였다.
"젠장..."
윤요섭은 이를 악물고 무기를 단단히 쥐었다.
"닫아! 닫아!"
성문을 지키던 사람들의 절박한 외침이 성 안에서 메아리쳤다. 성문이 천천히, 그러나 묵직하게 닫혀 가며 마지막 남은 희망의 틈이 서서히 좁아졌다. 그 순간 성문 안에 남은 자들의 절규와 울부짖음이 뒤섞였다. 탈출하지 못한 자들은 공포에 휩싸여 서로를 붙잡고 비명을 질렀고, 일부는 주저앉아 그 자리에 멍하니 있었다. 땅에는 넘어져 굴러다니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그들 중 일부는 이미 죽음과 싸우고 있었다.
죽은 말들이 쏜살같이 성문 쪽으로 몰려들었다. 피로 물든 덩치 큰 말들은 성문을 향해 무지막지하게 뛰어들었고, 그들 사이에서 괴물로 변해버린 사람들 역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이들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다. 피로 범벅이 된 손으로 사람들을 잡아채고, 날카로운 이빨로 사냥감의 살점을 찢어발기며 성문 안에 남은 자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다. 그들은 그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가족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그저 살점과 피를 갈망하는 괴물일 뿐이었다.
비명이 성벽 안을 가득 채웠다. 누군가는 죽은 말들과 치열한 혈투를 벌였다. 칼과 창이 말의 몸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지만, 말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더 사납게 날뛰었다.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고, 싸우는 이들의 얼굴이 피칠갑되었다. 창에 찔린 말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틀 때마다 땅은 피로 젖어 들었다. 그 사이, 다른 누군가는 가족이었을 괴물에게 사정없이 찢기고 있었다. 그들의 비명이 귀를 찢을 듯 울려 퍼졌지만, 그 누구도 구해줄 수 없었다.
윤요섭은 성문을 등지고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피와 흙이 묻어 있었고, 숨은 가빠졌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문이 닫혔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는 이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성문 밖으로 겨우 빠져나간 자들은 어쩌면 안도했을 것이다. 그들은 살아남았고, 성문은 닫혔다. 성 안에 남은 자들에게는 이제 또 다른 전투가 시작된 셈이었다. 그들에겐 더 이상 도망칠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윤요섭은 마지막 결투를 준비하며 주변을 살폈다. 그는 이제 오로지 눈앞에 달려드는 괴물들과 죽은 말들에 집중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무기를 더 단단히 쥐었다. 발밑의 흙과 피가 섞인 질퍽한 땅이 윤요섭의 몸을 무겁게 잡아당겼지만, 그럴 때일수록 몸을 곧게 세웠다. 이제 그의 앞에는 피할 수 없는 결투만이 남아 있었다.
#2
이틀 전만 해도 이런 상황이 올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도시는 전염병의 공포로 긴장하고 있었고, 초자연적인 저주라는 말까지 돌았지만, 단 이틀 만에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치안이 마비될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도시 곳곳에서는 연기가 치솟았고, 곳곳에서 약탈과 폭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끔찍한 것은 말 그대로의 ‘괴물’들이 도시를 집어삼키는 상황은 애초에 상상 밖의 일이었다.
처음에는 말들이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현상이 도시를 휩쓸었을 때, 윤요섭도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이상한 사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사고들에 불과했다. 그는 그저 오토바이를 타고 구약동 곳곳을 오가며 배달을 이어갔다. 그때 그의 걱정은 오로지 말들의 추락으로 인한 교통사고였다. 죽은 말이 떨어지거나 쓰러지면서 생길 사고를 피하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며 도로를 주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그러니 그 말들이 다시 일어나 거리를 활보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처음에는 말들이 어색하게, 마비된 사지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비틀거리며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요섭은 말문이 막혔다.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 어려운 기괴한 장면이었다. 정말로 소문대로 말들은 부서진 듯한 관절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네 발로 걷던 모습에서 두 발로 서서 걷고 있었다. 윤요섭은 죽어가던 말들이 어느새 되살아나 기괴한 모습으로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여차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도망칠 요량이었다. 말들이 느릿하게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으므로 갑자기 네 발로 전력 질주하듯 자신을 쫓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의 몸은 휘청거리며 흔들렸고, 불안정하게 균형을 잡았다.
말들의 눈은 인간의 눈과는 다른, 깊고도 어두운 번뜩임을 지니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똑바로 응시하며, 깊은 적의와 광기를 담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는 흉측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소리는 말의 울음소리와 인간의 말이 섞인 듯한 기괴한 소리로,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사람들의 피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죽여버리겠다!"
그들의 목구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것은 비명과도 같았다. 말이 쉰 목소리로 저주를 퍼부었다. 목이 짧은 인간처럼 으르렁거리는 말의 입가에는 피와 거품이 흘러내렸다. 말들은 비틀거리며 두 발로 걸어 다녔다. 그들의 움직임은 매끄럽지 않았고, 속이 비틀린 인형처럼 뒤틀렸다. 그들은 고통스러워 보였으나 그 고통이 오히려 공격성을 더 자극하는 듯했다. 어느 순간 한 마리의 말이 사람 무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입에서는 끈적한 거품이 흘러내렸고, 말은 두려움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그들은 몸집이 다른 말을 피해서 걷는 대신, 비틀거리며 뚜벅뚜벅 다가가 기싸움이라도 하듯 자신의 머리를 치켜들고는 곧 싸움이라도 할 것처럼 상대와 마주했다. 가까이서 보면 말의 눈동자는 인간의 감정이 깃든 듯 일그러져 있을 것 같았다.
그 이상한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는 동안, 머릿속엔 ‘이게 대체 뭔가?’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떠돌았다. 처음엔 그저 믿기지 않는 일종의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황당함이 경악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말들이 비틀거리며 움직이던 그 느린 발걸음이 갑자기 빠르게 변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마치 잠에서 깨어난 맹수처럼 폭발적이었고, 윤요섭은 그들이 느리게 움직일 때만 해도 그저 기괴함에 취해있던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현실이란 사실을 깨달은 순간, 윤요섭은 오싹한 공포에 휘말렸다.
윤요섭이 목격한 순간은 너무도 생생했다. 거리를 가로지르던 말 한 마리가 갑자기 미친 듯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 말은 몸이 뒤틀리고, 발굽이 쾅쾅 울릴 때마다 바닥에 충격을 가했다.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그 입에서 검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가까이서 보니, 그 말의 몸은 이미 상처투성이였고, 뼈가 드러날 정도로 살점이 찢겨져 있었다. 그 상태에서도 그 말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또 다른 말들, 그들 역시 죽음에서 돌아온 듯 기괴하게 몸을 비틀며 요섭이 있던 방향으로 달려왔다.
그 말들이 움직일 때마다 공기가 차갑게 변하는 듯했다. 윤요섭은 그 순간이 너무도 비현실적이어서, 잠깐 동안 몸이 굳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말들의 발굽이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와 함께, 그는 이게 단순한 기괴함이 아니라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한 여인이 뒤돌아 도망치려던 순간, 말이 갑자기 방향을 틀어 그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 말은 두 발로 뚜벅뚜벅 다가가더니, 입을 크게 벌리고 그녀의 목덜미를 향해 뛰어들었다. 여인은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고, 말의 거대한 이빨이 그녀의 머리에 박혔다. 피가 튀면서 그녀의 비명이 거리를 가로질렀다. 말은 그녀의 머리를 물어뜯으며 고개를 마구 흔들었고, 울부짖음과 함께 검붉은 피가 사방으로 튀어 나왔다. 말은 여인을 물어뜯고, 잔혹하게 살점을 씹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경악한 채 뒷걸음질 쳤다.
"이래도 나를 보고 비웃느냐?"
말은 인간의 언어로 욕설을 퍼부었다. 눈빛에는 마치 무언가에 대한 복수심이 서려 있는 듯했다. 그러더니 이내 사람들을 향해 돌진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말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사람들을 물어뜯기 시작하자, 그 고통과 두려움에 더 많은 비명이 뒤섞였다. 누군가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소리마저 말들의 저주로 묻혀버렸다. 그 순간 또 다른 말이 저쪽에서 두 발로 걸어와, "죽어라! 이 더러운 것들아!"라고 쉰 소리로 소리쳤다. 그 말은 사람의 말과 같았으나 어딘가 미묘하게 왜곡된 말이었다. 그 말의 혀는 갈라져 있었고, 입에서 피고름이 흘렀다.
그 광경을 본 다른 말들도 점차 광기에 휩싸이며 점점 더 격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통제 불능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밀치고, 거리에 흩어진 물건들을 맹렬하게 부수며 아무렇게나 돌진했다. 두 발로 마치 인간처럼 서서 거리를 누비고 있었지만, 그들의 행동은 완전히 짐승에 가까웠다. 그들의 본능은 이성을 잃은 야수의 광포함과 다름없었고, 폭력과 파괴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어느 한 마리는 벽을 부수며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벽돌들이 산산조각 나며 허물어지자, 그 말은 벽 너머로 고개를 들이밀며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그 소리는 짐승의 울음과도 같았지만, 어딘가 뒤틀린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말은 주변의 무리를 향해 날카로운 울부짖음을 내뱉으며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그 울부짖음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도시에 메아리쳤고, 그 소리 사이로 불길한 침묵을 깨는 인간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함께 섞였다. 그 소리들은 점점 혼란의 한가운데로 흩어졌다.
한 남자가 몽둥이를 들고 용감하게 말들을 향해 나섰다. 그는 두려움을 억누르며 말들을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지만, 그의 동작은 그들에겐 너무 느렸다. 한 마리가 기민하게 그의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순식간에 돌진해 그의 가슴을 강하게 발로 찼다. 충격에 남자의 몸은 공중으로 날아갔고, 그는 바닥에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은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몸이 바닥에 충격을 받기 전에, 말의 무게감이 그를 덮쳤다.
말은 그의 위로 올라탔고, 그날 밤의 어둠 속에서 말의 흉측한 눈빛이 반짝였다. 그 눈은 인간이 아닌, 순전히 살점을 물어뜯고자 하는 원시적인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 말의 입이 벌어졌고, 곧바로 남자의 목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날카로운 이빨이 남자의 살을 파고들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공포에 얼어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숨을 멈춘 채, 두려움에 질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이미 인간이 아닌 괴물들이 도시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이었다.
거리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말들이 길바닥을 마구 헤집고, 그들 사이로 건물들이 엉망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이 혼란 속에서 성경의 도읍은 더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말들의 광기와 인간들의 절망, 그 뒤엉킨 공포로 도시의 건물과 거리는 점차 본래의 모습을 잃어갔고, 성경의 도읍은 생명 없는 유령 도시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말들은 지치지도 않고 길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두 발로 걷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인간처럼 보이지만, 그 기괴한 움직임은 도무지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들의 다리는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고,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힘겹게 균형을 잡는 듯했지만, 그들은 그 상태로도 기어코 파괴를 일삼았다. 벽을 넘어 뛰어들고, 창문을 부수고, 건물 사이를 뚫고 나가면서 말들은 멈추지 않았다. 그 기이하고 비틀린 걸음걸이는 더욱 공포스럽게 다가왔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피와 잔해가 남겨졌다.
성경의 도읍은 이제 더 이상 인간의 도시가 아니었다. 과거의 평화롭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말들이 점령한 거리에는 오로지 파괴와 광기만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발굽이 길을 내리칠 때마다 땅이 울렸고, 도시는 끊임없이 부서지고 있었다.
거리는 말들의 기괴한 울음과 사람들의 절규가 뒤섞여, 점점 더 지옥으로 변해갔다. 말들은 웃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웃음은 뒤틀린 광기에서 비롯된 소리였다. 그 웃음소리는 거리를 가득 메웠고, 사람들은 그 공포스러운 소리에 몸을 떨었다. 피비린내는 공기를 가득 메우고, 코를 찌르는 그 냄새는 저 멀리서도 느껴질 만큼 강렬했다. 사람들은 도망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쳤지만, 그 누구도 무너지는 도시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고, 거리를 누비는 말들의 발굽 아래에서 부서진 것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그 소리는 차갑고 잔인하게 울렸다. 말들의 발길질에 피하고자 했던 자들은, 그들의 강력한 다리 한 번에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를 저주와 같은 비명이 성경의 도읍을 메웠다. 말들의 눈에 비친 불빛은 짐승의 본능을 드러내며, 그들은 멈추지 않고 도시를 집어삼켰다.
피와 잔해로 뒤덮인 거리 위, 도시는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제 이곳은 인간이 설 수 없는 아수라장이었고,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말들에게 물린 사람들은 처음에는 극심한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의 상처는 순식간에 검붉게 변하며 썩어들어 갔고, 찢어진 살점에서 증기가 피어올랐다. 비명은 점점 더 높아졌고, 마치 몸이 갈라지고 부서지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놀라움과 공포에 얼어붙었다.
이내, 그 고통의 비명은 점점 더 기괴한 소리로 바뀌었다.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그들은 말의 울음과도 같은 소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인간의 목소리와 섞여 있었지만, 점차 말의 울부짖음이 우위를 점했다. 그들의 눈동자는 마치 뒤집힌 듯 하얗게 변하고, 이성을 잃은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몸부림쳤다. 입에서는 하얀 거품이 피어오르며, 몸 전체가 경련을 일으켰다. 그들 속에서 벌어지는 변화는 인간이 아닌 전혀 다른 생물로 변해가는 속성 과정처럼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그들은 조용해졌다. 잠시의 정적이 흘렀다. 모든 이들이 숨을 멈추고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을 때, 그들은 다시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의 몸짓은 삐걱거리며 비틀거렸고, 머리는 기묘한 각도로 돌아갔다. 입에서는 저주 섞인 말이 흘러나왔다. 말의 울부짖음과 인간의 목소리가 뒤섞인, 고통과 분노가 뒤엉킨 그 소리는 듣는 이들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달려들었다. 눈이 돌아간 채 비명을 지르는 그들은 더 이상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온몸으로 돌진하며 이빨을 드러냈고, 순식간에 사람들의 살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피가 뿜어져 나오는 가운데, 물린 사람들도 이내 동일한 광기에 빠져들며 또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서로를 물어뜯고, 비명을 지르며, 손과 발을 휘두르는 이 혼돈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공포에 질려갔다. 더 이상 적과 아군의 구분이 없었다. 누구든, 한 순간만 방심해도, 곧바로 자신이 공격자가 될지 희생자가 될지 알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어딘가로 도망치려 했지만, 그 광란의 소용돌이는 이미 그들의 발걸음을 잡아먹고 있었다. 말들에게 물린 자들의 기괴한 웃음과 울음, 인간의 것과 동물의 것이 섞인 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