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외국어영역
♬ 건조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서울대학교만이 지상 목표
고등학생 시절, 그 건조하고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아무런 의욕 없이 하루하루를
반복하며 살고 있었다.
아침이면
알람 소리와 어머니의 재촉 속에서
억지로
눈을 떴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 그 사이의 거리는
매일 같은 건물과 표지판, 반복되는 도로의 풍경으로 채워졌다.
학교 정문을 지나치면 언제나 익숙한 분위기,
교실의 고요함을 깨는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소음,
그리고 각자의 책상에 엎드려 선잠에 빠져 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그래도 우리 학교는 외국어고등학교다 보니
다른 학교에 비해 상당히 차분한 편이라 했다. 심지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1반에서 떨어진 필통 소리가 복도에 울려서는
10반에서도 들린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시험이 가까워올수록 굳이 야간 자율학습 감독 선생님이 필요 없을 정도였다.
모의 수능 때도 감독관 없이 자율 시험이 가능했다.
당시 반마다 에어컨을 설치하지는 못했고, 지하 강당에 마련된 공동 자습실에는 에어컨이 있어서 여름 등에는 그곳에 자리를 선점하는 게 주요한 관심사였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2주 전부터는 쉬는 시간에 밥을 먹고, 점심시간이나 야간 자율 시작 전에 자리를 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졌다. 4교시나 7교시 선생님이 늦게 수업을 끝내면 원성이 자자했다. 그곳으로 향하려는 욕구가 그만큼 컸다.
그곳만큼은 여름이나 겨울이나 공부하기에 최적의 실내 온도였고, 온통 공부하려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반에서도 자리 맡기 경쟁에 승리한 아이들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교실 안은 언제나 비슷했다. 벽에는 ‘교훈’이 붙어 있었지만,
그 교훈은 일상의 지혜를 알려준다기보다는
서울대학교로 가기 위한 미덕을 알자는 것쯤으로 해석되기는 했다.
그러니 “매일 함께 행복하자”라는 식의 진짜배기 교훈은
어쩐지 피상적으로 들리던 시절이었다.
서울대를 가야 행복할 것 같았고, 서울대를 모두가 함께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대한민국 입시생만큼의 정원으로 서울대를 만들면 좋겠다는
공상을 한 적은 있다.
“그러면 학원 선생님들은 다 망하지.”
학원에서 수업을 들을 때면 졸린 채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학원 선생님 생계나 걱정하는 마음씨 느슨한 학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