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이 없던 시절

에세이: 외국어영역

by 희원이

당시에는 급식 시스템이 아니라 도시락을 싸오던 때였다.

점심뿐 아니라 저녁시간에도 도시락을 싸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따뜻한 밥을 먹고 싶은 수요 덕분에 여러 도시락 업체에서 삼삼오오 계약을 맺고 납품을 하던 때였다.

교실 앞에는 각 당번들이 돌아가면서 도시락을 교실 앞에 놓아두었다. 우유는 학교에서 배달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트레이 위에 쌓이는 먹고 남은 잔반과 포장 재료는 때때로 흥미롭지 않았고,

밥을 씹는 동안 들리는 웃음소리와 농담은 그저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희미했다.

내 경우에는 학교 근처에 살았기 때문에 어머니가 따듯한 저녁 도시락을 싸다 주시곤 했다.

따뜻한 반찬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자기 도시락을 먹다 말고 내 주변에 모여서 하나둘 반찬을 집어가고 자기들 반찬을 나누어주기도 했다.

누군가는 대학 입시 이야기로 들뜬 듯했지만, 나는 그 대화에 끼어들기보다는 한쪽 구석에 앉아 음식을 우물거리곤 했다. 내겐 그저 반복되는 하루였고, 새로운 것은 없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이미 몸은 노곤해졌다. 일부는 농구를 하기 위해 운동장으로 나가 있는 동안에 책상에 누워 쪽잠을 청하곤 했다. 당시에 농구가 인기 많았다. 축구보다.

서울대보다 인기 많지는 않았다. 서울대는 모든 취향을 흡수하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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