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 결제 전 증상과 눌린 버튼에 관하여
간- 만에
결- 제를 했다.
한- 도를 초과할 때까지 소비욕을
발- 산할 때면 증상이 있기 마련이다.
음- 지에서부터
으- 스스한 기운이 몰려오고, 정체 모를
로- 비스트처럼 다가온 그림자가 끊임없이 빨려드는
깔- 때기 논리로, 반드시 사야 한다고 설득했다. 아무리 피하려 해도
끔- 찍스럽게도 모든 결론은 그것을 사야 한다는 것에 이르렀다. 한 지점으로 빨려드는 깔대기를 사용한 것처럼.
하- 고 많은 것 중에서 어째서 그 물건인가, 자문해도 소용 없고
게- 슴츠레한 눈빛은 희미해져만 갔다. 그래, 어떻게
주- 기도문을 외웠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여전히 외우고 있듯이
문- 제의 결제창에 카드번호가 정확히 입력된다.
하- 단에 넣을 CVC 번호까지 놀랍도록 정확하고
기- 를 쓰고 소비를 줄이려 저장된 번호를 모두 지웠건만
위- 선적 손가락은 끝내 자신의 만행을 모른 척한다.
하- 는 수 없는 마음으로
여- 윳돈 없음을 탓한다.
√ 툭, 새벽 현관 앞에서
새벽이 오면 초인종이 울린다. 잠결에도 익숙한 그 소리. 내가 결제 버튼을 눌렀다는 흔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에서는 쿠팡에서 배달이 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문을 열어보면 쿠팡의 로고가 새겨진 상자가 현관 앞에 조용히 놓여 있다. 가끔은 내가 무엇을 주문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생수인가, 비누인가, 아니면 어젯밤 무심코 눌렀던 어떤
'필요해 보이는' 물건일까?
현관문 앞에서 바로 들고 들어온 작은 상자. 앞집에서 문을 열 때 잠옷차림을 들키면 민망해서 재빨리 들어온다.
“뭐지? 어제 뭘 시켰더라.”
심한 경우에는 다시 쿠팡에 들어가 주문 내역을 살필 때도 있다. 그러고는 ‘아하!’ 뒤늦게 깨닫는다.
그때 익숙한 쿠팡 로고 포장에 감싸인 물건은 담담히 속삭였다.
"너는 나를 필요로 했잖아."
필요? 그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필요한 ‘것 같았다’. 어제 오후, 작은 창의 ‘결제 완료’ 버튼이 어쩌면 그를 설득했던 것 같다.
그리고 뒤늦은 후회를 할 새도 없이 새벽에 그 물건이 놓여 있다.
새벽 배송은 놀랍도록 빠르다. 단 몇 시간 만에 물건이 집 앞에 도착한다는 것은 내가 소비자로서 그만큼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상자를 손에 들 때마다 문득 떠오른다.
이 물건이 내 손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움직였을까?
물류 센터에서 물건을 분류하고, 트럭을 몰고 밤길을 달리는 사람들.
분기점마다 조용히 상자를 내려놓고 또다시 다음 배달을 향해 가는 그들의 움직임.
그 과정이 보이지는 않지만, 어렴풋이 느껴진다. 어떤 택배회사에서는 이른 아침에 물품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려주곤 했기 때문이다.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 혁신적인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하면, 곧장 따라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교대로 일하며 긴 시간을 버티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무거워진다.
친한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렇다.
그리고 그럼에도
그들의 수고를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결제 버튼을 누른다.
'내가 돈을 써야 그들도 돈을 번다.'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내가 이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소비를 지속할 때, 그들도 일자리를 유지하고 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믿으려 한다.
가끔은 문득 이런 상상을 한다.
새벽에 물건을 배달하는 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고, 더 많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어떨까.
상자를 열 때마다, 나는 이것이 필요했던 물건인지, 아니면 단순히 충동적인 소비였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물론, 그 질문의 답을 채우는 일은 흐지부지 끝나버린다. 아무도 그런 과제를 내게 내어 준 적도 없었다. 그러니
부질없는 질문이라 여길 때가 많다.
혹시 내 일에 관해서도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가 부질없다 여기고
짧게나마 스스로에게 웃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무엇인가?"라는 또 다른 질문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