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찾아오는 글병

에세이

by 희원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어 좋겠다”라는 이야기다.

그들은 내가 일할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이상적인 삶을 상상하지만,


사실 녹록하지 않다.

생계를 위해 끊임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거리가 끊겨서 쉬는 ‘강제적 휴식’이 아니라면

진짜로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 날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일이 없어서 쉰다는 것은 불안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잠깐 며칠은 여유로울 수 있어도, 당장 다음 달 수입이 걱정되기 마련이다.


그런가 하면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쉬지 않고 다가오는

또 다른 불안감이 있다.


가끔 찾아오는, 마치 병처럼 밀려오는

이를테면, ‘글병’.


이 병에 걸리면 마음속이 글로 가득 차고, 어쩐지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조급함에 시달린다. 머릿속에서 문장이

흘러나오는데,


이를 붙잡지 않으면 다시 떠돌이 글이 되어 흩어져버릴 것만 같다. 한마디로, 글을 쓰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갑자기 몰아쳐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삼켜버리는 것이다.


아, 진짜,

일해야 하는데.


쓴다고 이게 뭐

원하는 대로 출판이 된다는 보장도 없고.

늘 그랬듯.

출판이 된다고 글로 먹고 살 수도 없고.


아, 진짜,

일해야 하는데.


그런데도 자꾸만

쓰고 있다.


글병은 창작의 즐거움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압박감을 동반한다. 생활의 무게와 충돌하기도 하고, 막상 쓰려 하면, 만족스러운 글을 시간 내에 쓰기도 어렵다.


마음을 쥐어짤 뿐이다.

조바심을 일으킨다.


이런 시기가 오면 직장 생활에서도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면 규칙적인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러 번 이리저리 떠돌게 된 이유도

글병 탓일지 모른다. 그래,

초기에는 분명 그랬다.

그렇게 경제적으로 바짝 다잡아서 사회적 입지를 굳혀야 하는 골든타임을 글병으로 흘려 보냈다.


뭐라도 될 줄 알았지.

그래, 그런 생각마저 없이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게 착각이었든 충분히 승산이 있었든

어쨌든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이미.


한때 글병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겠다고 다짐도 했었지만, 일거리가 끊기거나, 불가피하게 쉬어야 할 때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그럴 때마다

책상 앞에 앉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게 뭐든. 그렇게 일기로 남을 것을 알면서도.

인간은 어찌도 이리 미련한지

때로는 그 미련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아쉬움과 무기력의 텃밭을 갈고 가끔은

내게 곡식을 선물한다. 먹고 없어지더라도

나는 그 곡식을 먹고 계속

산다. 살아갈 수 있다.


글병은 마치 억눌렸던 감정을 해방시키는 것과 비슷해서, 손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글은 일시적인 해방감을 준다.

그러나 이 해방감도 오래 지속되면

한편으로 두려움이 밀려온다. 너무 글에 빠져들다 보면

현실로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은 묘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그런 때마다 나는 한 문우가 떠오른다.

어떤 날엔가 그는 출근하던 중에 아무래도 창작의 호흡이 끊길 듯하여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연차를 내고 글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현실로 다시 돌아갔다. 적절히 팽팽하고, 끊어지기 전에 긴장을 푸는 법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불안함 속에서 글을 쓴다.

기쁘면서도 불안하다. 행복하면서도 불안하다. 불안한 때를 지나서 무기력해지기도 하다가 다시 불안해지는 때가 생긴다.

이 병은 또 언제 찾아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까? 결국,

나는 오늘도 내 글을 적어나가고 있다.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으면서도, 은연중에 무엇이라도 기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쓸 수밖에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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