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자율학습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에세이: 외국어영역

by 희원이

종이 울리면 거짓말처럼 정돈된 교실에서는 모두가 조용해졌다.

저녁시간에 이르러서야 이제야 비로소 하루의 2라운드가 시작된다는 느낌 정도는 있었다.

학교 창밖으로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며 밤의 냄새가 감돌았다.

교실의 불빛은 멀리 탁 트인 운동장 너머로 나아가고 있었다.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나름대로 운율을 갖추고,

훗날 추억이 될 것이라 강변하고 있었다. 당연히

믿을 수 없었다. 아무거나 추억으로 가져다 붙이는

보이스피싱 같은 속삭임이여!


저녁이 되면 학교에서의 정규 수업은 끝났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제시한 안내문에 적힌 대로 ‘자발적으로’ 강제 자율학습이라는 것에 ‘찬성’을 하고는,

어쨌든 입시 지옥을 탈출하기 위해 지옥의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아직 집으로 발길을 옮기려면 멀었고,

심지어 학교에서 주도적인 자율학습 프로그램과 보강 프로그램을 가동하던 때여서 자유롭게 학원을 가기도 어려웠다.

독서실을 가려고 해도 9시쯤은 되어야 가능했다.


밤 9시가 되면 마지막 진정한 자율학습의 선택이 가능했다.

10시 40분까지 마무리 공부를 하고 귀가할 것인지, 미리 갈 것인지.

물론 이때 간 친구들은

근처 학원에서 보강을 하거나

집에 가서 과외를 하거나,

독서실에 가서 자정을 넘겨서야 귀가하는 것이긴 했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집으로 곧장 귀가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개는 9시 이후에

놀 것도 마땅치 않았고,

놀아봤자 독서실 근처를 배회했다.

그런 뒤에야

집에 돌아오면 밤 11시나 새벽 1시쯤 되었다.


나는 보통 10시 40분까지 남아서 공부한 뒤 귀가했으므로,

집에 도착하면 11시쯤 되는 반복적인 흐름을 유지했다.


방안의 불을 켜면 책상 위에는 풀다 만 문제집과 교과서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고, 창문 너머에는 도시의 불빛이 점처럼 반짝였다.

내일도 똑같은 하루가 찾아올 것이었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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