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행시 & 미니픽션
♬ 멀리 있어도 해는 잘 보이고
뭘- (멀)찍이 떨어져
해- 가 뜨는 쪽을 바라보았다. 멀리 있어도 해는 잘 보이고
야- 산에서 운동을 하며 보는 해는
할- 아버지가 떠오는 약수와 함께 기억난다.
지- 식인이었다는 할아버지의 책장에는 어려운 책이 꽂혀 있고
모- 름지기
르- (루)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기억은 없고
겠- 세마네 동산에 오르셨던 예수님에 관해서는 말씀하신 적이 있다.
지- 식은 지혜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을 하실 때는
만- 보기를 차고 불편한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고 계셨다.
√ 지혜의 발걸음
할아버지는 학식 있는 분이었다.
책장이 가득 찬 서재에는
어려운 제목의 책들이 빼곡했다.
강현은 할아버지에게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거나
"성공해야 한다"는 말을 하신 적을 들은
기억이 없다. 대신,
할아버지는 종종 성경 속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셨다.
"겟세마네 동산에 오르셨던 예수님을 생각해 보거라."
어린 강현으로서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할아버지의 눈빛은 늘 깊고 차분했다.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늘
만보기를 차고 계셨다. 다리가 불편하셨지만,
매일 억지로 움직이며 걸음을 채우셨다.
"지혜는 지식을 이기는 법이다,"
오래 공부해도 결국 지식으로는 제자리걸음일 뿐이라면서
힘겹게 걷는 연습을 하셨다.
가끔 할아버지를 모시고 새벽 운동을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야산을 오를 때면 특히 그랬다.
아침 운동길이었다.
해가 뜨는 동쪽을 바라보며 그는 멀찍이
걸음을 멈췄다. 야산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늘 약수터에 올라가
물 한 바가지를 퍼올리던 모습, 그리고 그런 표정 뒤로
늘 해가 떠오르던 모습이 겹쳤다.
산길의 끝, 약수터에 도착해 찬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그 순간,
할아버지가 늘 말하던 지혜가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지혜는 해처럼 멀리서도 빛을 발하며,
그저 바라보는 이에게 힘을 준다.
지식이 쌓는 것이라면, 지혜는 걸어가는 것이다.
불편한 다리를 끌고도 끝까지 걸으려는 마음,
그것이 지혜일지도 모른다. 꿈보다 해몽이라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믿는 순간 진실이 되는 부류의 이야기도 있는
법이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만보를 채우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걸음 하나에
의미를 담겠다는 마음으로.
할아버지를 가끔은
기억하겠다는
마음으로.
이생에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당신께 심심한
위로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