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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부르기 위해 이유를 만들다

에세이

by 희원이

♬ 삼행시가 삼행시여서

삼- 행시는 이행시일 때도 있고, 행의 수가 연결되어 N행시라고도 불린다. 어쩌면 다행시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도 관습적인 표현인 삼행시가 좋았다. 삶과 발음이 닮은 삼이어서, 삶과

행- 복과, 아니, 어쩌면 행운일 수도 있을 이야기와

시- 가 있는 순간이 포착되기도 하여서





√ 이름을 부르기 위해 이유를 만들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언가를 쉽게 부르기 위해 애칭을 붙이곤 한다. 이때 정확한 정의나 엄격한 기준보다는, 그 순간의 감정과 편리함이 우선이다.

어떤 이름은 갑자기 마음속에서 툭 튀어나오는 이름처럼, 특별한 이유 없이 우리의 삶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본질과는 다른 방향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가끔은 적확하지 않은 이름이 훨씬 더 적절하게 느껴진다. 입에 붙은 표현이라 그럴 것이다.

그것이 맞지 않음에도 자꾸만 그리 부르는 것은

어렸을 적 친구들을 별명으로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또는 자전거에 애칭을 붙여주고 사람처럼 대하며 그것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과 같은 때도 있다.


그렇게 이름을 붙이는 행위를 통해

내 삶의 작은 기억을 만들고

관계를 형성하고

감정을 되새기게 해준다.


이런 이름 짓기가 적절했고 시간의 유대를 거쳤다면

이름에는 힘이 생긴다.

그것은 우리가 작은 순간들을 더 특별하게 느끼게 해주고,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행동에도 이유를 부여한다.

이유 없이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이유를 둘러대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이 과정이 독선으로 흐를 때도 있다. 많은 부패한 관료들과 세력이 결과를 강요하기 위해 가짜 근거를 바탕으로 허술한 이유로 둘러대기 때문이다. 이를 알면서도 억지로 수용해야 하는 사람들로서는 죽을 맛이고, 말도 안 되는 논리를 강압적으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것이 맞다고까지 외쳐야 한다.


하지만 이름을 짓는 것에서는 그런 위험성은 적은 편이다.

오히려 부조리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이유 만들기와 달리 이건 어쩌면 애틋한 관심과 관련된 이야기다.

그래서 때로는 결과와 이유의 위치를 바꾸어서 이유를 둘러대게 되는 것이다.

인생 자체가 그런 모순 위에 존재하지 않는가? 우리는 아무리 명확히 정의하려 해도 결국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속에서 살아간다. 그래서 이름을 붙이고, 애정을 담고,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낸다.


가장 극적인 예는 사랑이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감정이다. 때로는 이것이 전면적이고 강렬한 감정이어서, 그럴 때면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와 신화 같은 것을 만들기도 한다.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네가 특별하기 때문이야.”라는 말은, 어쩌면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하는 솔직한 애정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곧 사랑을 더 진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이름을 부르는 행위,

그 이름이어야 하는 선택,

그 이름일 수밖에 없다는 무리수,

그래서 결국에는 이유를 만들어내고,

그 과정을 통해 사랑이라는 신화를 우리 삶 속에 뿌리내리게 한다.


이름은 때로는 본질을 벗어나 있지만,

그 벗어남 덕분에 우리는 오히려

더 개인적으로 도저히 잊히기 어려운 진한 의미를 경험한다.


이름을 붙이고 이유를 만드는 행위는,

결국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그러니 가끔은 소중하다 느껴지는 이름을 간결하게 부르고 그 존재의 의미를 위해 만들어낸 이유를 믿자.

비논리적이더라도,

비본질적이더라도 괜찮다. 우리는 결국 의미를 찾아가서 기어이 품을 수 있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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